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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요 Sep 08. 2021

피노(Blood No)

  축축하고 끈적끈적한 여름밤이 오면 나는야 좋아라. 왱왱

토실토실 먹음직스런 뽀얀 살이 나는야 좋아라. 왱왱

짝~짜작! 한 박자 느려 결국 나를 놓치고 마는 헛 박수가 나는야 좋아라. 왱왱

그들의 노래는 한참이나 왱왱댔다.


   빛이 엄습하지 못하는 후미진 곳. 켜켜이 쌓인 먼지더께와 음식쓰레기 냄새의 묘한 어우러짐이 있는 이곳은 베란다 구석. 전속력으로 날아 공중곡예를 돌고 비틀비틀 추락하는 척하다 다시 나는 한 마리의 모기.

   “! 피노. 너도  입에 묻은   핥을래? 금방 뽑아낸 뜨끈뜨끈하고 신선한 1등급 사람 피야.”

  피노는 고개를 가로 젓는다. 재빠른 날갯짓으로 높이 더 높이 천장 끝까지 날아오른다. 피노는 입을 꾹 다문 채 비행한다.

   “피노는 참 돌연변이야. 모기면서도 모기가 아닌… 발성법도 안 해, 사람 피가 제일 맛있는데 사람 피는 마시지도 않아. 대체 무슨 낙으로 사는지. ”

   “맞아. 그러니까 몸이 저렇게 비실비실한 거라고. 사람 피를 마셔야 건강해지지.”

   피노가 유충일 때 엄마모기가 먹여주던 사람 피 맛. 한번 빨아 먹었는데 텁텁하고 토할 것만 같았다. 사람들에게 가려움을 주며 얻는 쾌감이 싫었다. 피노는 사람을 좋아했다. 솔직히 사람피를 안 먹으면 버티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피 중에서도 사람 피가 가장 영양학적으로도 우수해서 모든 모기들이 선호하지만….

   “피노! 모기 어른들 걱정하시는 거 뻔히 알면서도 왜 모른척해?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넌 단지 모기일 뿐이야. 사람들은 널 적으로 밖에 생각 안한다고.”

   “알아. 안다고. 그래도 난 사람이 좋은걸 어떡해? 사람을 해치고 싶진 않아.”

   “오… 피노. 어쩜 좋니? 너의 이 기구한 운명을. 사람이 좋다니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야? 사람은 단지 우리의 먹잇감일 뿐이라고.”

   피오케는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두려워하는 건 오로지 모기 하나뿐이라고 했다. 그렇기에 모기는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했다. 피노는 피식 웃음이 났지만 꾹 참았다. 물론 이해하자면 이해할 수 있다. 곤충은 자신보다 작고 약한 것을 먹이로 삼는다. 그런데 모기와 사람이라… 그것도 완전히 잡아먹는 먹잇감이 아니라 사람의 신체 중 보안이 허술한 구역에서 피를 뽑아서 마시면 된다.

   “피노!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먹잇감이 사람 정도는 돼야 어디 가서 이야기보따리라도 풀어 놓지. 안 그래?”

  피오케의 열정 가득한 눈빛 때문이었으리라. 피노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여 준다.

   “피보다 더 짜릿한 그 맛! 순간이 영원하길 갈구하게 되는 향기로움. 아 맞다! 피노, 나랑 같이 그 곳에 가보자! 넌 사람 피도 안 마시는데 그 맛이라도 봐야 살맛나지 않겠어?”

   피노는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피오케의 등쌀에 못 이겨 따라 나섰다. 어느 정도 날갯짓이 버거울 무렵 무채색 지붕들이 즐비한 동네에 눈에 확 띄는 빨간 지붕 집에 다다랐다. 둘은 열린 창문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서 형광등불이 꺼지기만을 기다렸다. 피노가 지쳐 꾸벅꾸벅 잠을 들려는 찰나였다.

   “취~이잉~”

   갑자기 기분이 몽롱해지면서 헤벌쭉 웃음이 난다. 이토록 세상이 아름다웠던가? 온몸 구석구석에 촉촉한 힘이 스며드는 느낌이다. 불끈불끈 솟아나는 알 수 없는 힘!

   “피노! 이제 더는 향을 맡지 마! 더 맡다간 죽어!”

죽는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든 피노. 피오케는 기진맥진한 피노를 부축해 밖으로 겨우겨우 나왔다. 피노는 아직도 비몽사몽해서 지금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간다. 그렇지만 황홀했던 순간은 절절히 기억할 수 있다. 순간이 영원하길 바라는 기분. 정말 거짓말이 아니었다.

하루가 지나지도 않았는데 피노는 벌써부터 그 향기가 그리웠다. 아니 향기가 고팠다는 말이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오로지 향기생각 뿐이다. 피노는 하루 종일을 몽롱하게 보냈다.

   “피오케! 도저히 못 참겠어. 빨간 지붕 집에 한번만 더 가 보자!”

  “오늘은 안 되는데… 어린이집 아이들 포동포동한 팔뚝 피를 가득 뽑아 충전할거야. 쩝쩝. 벌써부터 군침 넘어간다. 너도 같이 갈래? 싫다고? 그럼 빨간 지붕 집은 다음에 가자!”

   지금 이 순간 피노에겐 다음이란 없었다. 피노는 홀로 빨간 지붕 집을 향했다. 피노에게서 예전 모습은 점점 사라져간다. 차분하고 매사 긍정적이던 피노는 온데간데없고 과격해지고 극단적인 피노만 남았을 뿐이다. 피노는 빨간 지붕 집의 묘한 향기에 취해 곤드레만드레하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바깥으로 대피했다. 맡지 않으면 그 향기가 그리워 몸부림칠 정도지만 맡고나면 몸도 마음도 공허해졌다.

   “피노… 너 많이 변했어.”

   피오케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피노를 이렇게 만든 게 자신 때문인 것 같아 자책을 했다. 말수가 많았던 피노는 하루 종일 입도 뻥끗 안했다.

그러던 어느 날 피노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나 있잖아… 음, 사람 손에 죽고 싶어. 사람 아닌 다른 것에 의해 죽긴 싫어. 어차피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예측불허 삶이잖아. 어차피 죽을 거라면 내가 많이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죽고 싶어.”

   그 뒤로 피노는 먹지도 않고 집에 돌아오지도 않고 빨간 지붕 집에 머물렀다. 피노의 날개는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가뿐히 비행했던 거리도 이제는 버겁다.

그렇게 무더웠던 여름도 한풀 두풀 꺾이고 끝자락에 다다랐다. 늦여름은 초가을에게 바통터치를 해주고 서서히 뒷걸음쳤다. 가을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높고 푸르다.

   

   “엄마, 엄마! 뉴스 좀 봐봐.”

아이는 설거지하는 엄마 앞치마를 잡아끌어 TV 앞에 앉힌다.

   “요즘 때 아닌 가을 모기가 극성입니다. 각 가정에서는 특별히 위생관리 철저히 하시기 바랍니다. 외출 후 귀가 시 꼭 손부터 씻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뉴스 화면에는 어린이집 아이들 뽀얀 팔뚝이 벌겋게 부어올라 연방 긁고 있다. 엄마는 허둥지둥 모기살충제를 찾는다.

   “취~이잉~ 취~이잉~”

이리 저리 피하는 모기 한 마리를 쫙! 소리와 함께 잡는 엄마의 두 손바닥.

   “야, 요놈 잡았다. 지금 때가 어느 땐데 천지분간 못하고 돌아다녀 돌아다니긴. 어라? 근데 피 한 방울 안 나오네. 우리 가족 피 다 빨아먹고 살았을 텐데 희한한 모기 다 봤네.”

   이렇게 피노는 휴지에 쌓여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한 마리의 모기가 아까부터 왱왱대며 쓰레기통 주위를 빙빙 돈다.

   “그렇게 사람 좋아하더니… 사람 손에 죽고 싶다 하더니… 소원 푸니까 좋냐? 피노, 이 바보 같은 놈. 흐윽…”

피오케의 울음소리는 가을비에 서서히 잠기다 푸욱 묻혀버렸다.


   빨간 지붕 집 창문 너머 어린이집 운동장의 모래알들이 질퍽해질 정도로 가을비가 제법 내리고 있다.

   “엄마, 모기는 바보예요. 곧 잡혀 죽을 걸 알면서도 우리한테 막 대들잖아요.”

   “비록 모기가 피를 빨아 먹어서 얄밉긴 하지만, 모기는 모기 삶에 최선을 다 한 거야. 최선을 다했으니까 바보는 아니지?”

   아이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잠시 후 끄덕인다.


  10월 하늘, 구름 한 점 없는 완연한 가을 맞는데도 모기들은 여전히 사람 곁을 떠나지 못한다. 모기가문의 왱왱대는 발성법이 가을비에 묻혀 사람들 귀에까지는 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가을비는 하염없이 저녁까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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