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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나 May 17. 2016

04. 골목을 걸어, 혼자인 식사

  오후 3시. 여느 때처럼 외진 밥집을 찾아가는데 골목 안이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아... 그렇지. 공휴일이구나.'

  의외의 번잡함에 잠시 움찔하던 여자는 곧 원인을 알아차렸다. 평일이지만 징검다리 공휴일때문에 임시 휴일로 지정된 날이었던 거다. 예상치 못한 그 광경에 집으로 돌아갈까를 잠깐 고민했지만 이내 무심함을 가장한 얼굴로 가던 걸음을 이어갔다.


  북적북적. 연인끼리 혹은 여자 친구들끼리 팔짱을 끼고 골목을 누비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거저 얻은 하루를 즐기는 즐거움이, 최근 부쩍 어떤 명성이 생긴 낯선 골목을 탐험하는 호기심이 어려 있었다. 식사 시간을 빗겨난 보통의 평일 오후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도착. 골목 안 식당은 평소보다는 테이블이 차 있었지만 그래도 다른 오후와 비교적 비슷했다. 일하는 분들이 그제서야 늦은  식사를 하는 모습도 그대로였다.
  처음에 여자는, 그렇게 식사를 하는데 밥을 먹으러 간 것이 미안해서 다음부턴 그 시간은 피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어쩐지 갈 때마다 그들의 식사시간에 맞추기라도 한 듯 겹쳐져서 결국은 그냥 신경쓰지 않기로 해버렸었다. 그리고는 마치 한 식구처럼 그들의 테이블 옆에서 밥을 먹는 것에 점차 익숙해졌다.  제법 자주, 애매한 시간에 나타나 혼자 밥을 먹는 여자에게 관심도 친절도 보이지 않는 사람들. 그게 편해서 계속 찾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사실은 드러내지 않는 엷은 친절만이 느껴지는 것이 좋아서였는지도.


  착착. 반찬이 담긴 접시가 여자의 앞에 놓인다. 시금치 나물과 풋풋한 열무 김치, 적당히 윤기가 도는 연근 조림이며 꽈리고추의 초록빛이 더해져 먹음직스러운 멸치볶음, 그리고 가지튀김 한 접시. 여자는 튀김을 한 조각 집어 씹었다. 금방 했는지 아직 따끈한 튀김옷이 입 안에서 기분좋게 바삭거렸다. 조금 기다리니 돼지고기가 들어간 김치찌개가 바글거리며 나왔고, 음식을 해 준 이모님도 김치찌개를 여자의 자리로 날라 준 청년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식사를 이어갔다.


여자도 자신의 몫으로 차려진 밥상에 한껏 집중하며 숟가락 가득 밥을 담아 입에 넣었고, 숙성 정도로나 가열 정도로나 알맞게 익은 김치찌개의 국물을 떠 먹고, 이런저런 반찬을 성실하게 씹었다. 한 끼의 식사라기 보다는 나름의 경건한 의식같은 느낌으로.


  이 익숙한 과정에서 여자는 또 한 번 그를 떠올렸다. 그들이 다른 사람들처럼 골목을 산책하던 어느 오후, 여느 사람들처럼 그 골목의 풍경에 들떠서 아이처럼 좋아하던 그가 밥상을 마주하고 앉아서 여자를 바라보다 건넸던 말을.

  
  그러니까.. 너는 여기에 살고 있었구나.



  ...... 응?

  갑자기 무슨 말이냐는 듯 의아해서 되묻는 여자에게

  아니 그냥. 그동안 너는 여기에서 이렇게 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골목을 걷고, 또 가끔은 혼자서 밥을 먹고 그랬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라고 하던 그 말을.


  그땐  별 싱거운 소리도 다 한다며 웃었지만 생각할수록 그 말이 좋아 자꾸 곱씹었다. 그가 없을 때의 여자는 정말 별 생각없이 그 길을 걸어다녔고, 아무렇지 않게 혼자 밥을 먹었고, 거기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 그가 그런 말을 하니 그 모든 풍경이 어쩐지 아련해지는 느낌이었다. 스스로는 쓸쓸하다고 느끼지도 못했던 자신의 시간을, 그가 뒤늦게 알아주고 안아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후로는 혼자서 밥을 먹을 때마다 이렇게 자꾸만 그의 생각이 난다. 이것은 또 다른 쓸쓸함일까 아니면 위로일까, 생각하며 여자는 그저 공들여 음식을 꼭꼭 씹었다. 소중한 의식같은 식사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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