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박 대표와 골프
처음 같이 골프를 치게 된 A사장이 박 대표에게 물었다.
“대표님, 골프 잘 치시죠?”
“제 골프는 생계형(生計型)입니다.”
“아니, 그렇게 잘 치신다구요?”
A사장은 내기 골프해서 딴 돈으로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잘 치느냐고 농담을 한 것이었다. 사실 박 대표는 골프 실력이 형편없었다.
“아, 그게 아니구요, 먹고 살려고 할 수 없이 친다는 이야기입니다.”
#2 박 대표와 사진
박 대표의 취미는 사진이다. B과장도 사진을 찍는 걸 우연히 알게 되었다. 최근 작업하고 있는 사진 주제에서 시작해서 사용하는 장비에 이르기까지 한참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박 대표는 회사 내에 사진동호회가 없으니 B과장에게 하나 만들어 보라고 했다. B과장이 동호회를 만들면 박 대표도 가입하기로 했다.
퇴근한 박 대표는 신이 나서 아내에게 이야기를 했다. 예술적 동지가 될 만한 직원이 있어서 사진동호회를 만들기로 했다고. 아내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박 대표님, 참 눈치 없으시네요.”
“뭐가?”
“아니, 직원들이 사장하고 사진 찍으러 다니고 싶겠어요?”
“원래 동호회는 원하는 사람만 하는 거야.”
“그게 그렇게 돼? 좋아하는 사람은 몰라도 끼지 못하는 사람 마음은 편하겠어? 직원들은 카메라 사서 가입해야 하는 거 아닐까 고민할 걸?”
“에이... 우리 분위기는 그렇지 않어.”
“취미는 회사 밖에서 하세요, 대표니이임.”
(깨갱...)
‘생계형(生計型)’을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살아갈 방도를 마련하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나와 있었다. 이 단어를 처음 현실에서 접한 것은 노점상 단속에 대한 신문기사였다. 겨우 먹고 살 정도의 돈을 버는 노점을 생계형 노점, 돈을 남길 수 있을 정도로 잘 버는 노점을 기업형 노점이라고 했다.
생계형에는 다른 뜻도 있다. 술과 골프 앞에 생계형이라는 단어를 붙여 보자. 생계형 음주, 생계형 골프. 두 단어는 어울리지 않을 거 같지만 붙여 놓고 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여기서 생계형의 의미는 직업상 또는 업무상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부정청탁금지법이나 거리두기 덕에 줄었다고 하지만 영업 직원에게 접대는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이다.
업무상의 생계형과 비슷하게 들리지만 또 다른 생계형이 있다. 직장 상사와 함께 하는 여가 활동이다. 대개 등산이나 골프이다. 사실 ‘같이 한다’ 고 하기보다 마지못해 한다. 그렇지만 마지못해 한다고 하지 않고 산이 좋고 골프가 좋아서 한다고 한다. 생계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하는 일이지만 생계형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렇게 부르면 슬프니까. 생계형을 생계형이라 부를 수 없으니,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이른바 ‘홍길동 생계형’이다.
요즘 감히 밀레니얼세대나 Z세대에게 주말에 산에 가자고 하는 상사는 거의 없다. 가자고 해도 가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밀레니얼 세대라 할지라도 팀장 이상이 되면 아직도 임원이나 대표가 이끄시는 등산이나 골프에 동반한다. 장기적으로 생계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동반한다.
임원이나 사장은 말한다. ‘맑은 공기도 마시고 운동도 되고 이야기도 나누고 좋잖아.’ 그분들은 애들도 다 컸고 집안일도 별로 없으니 괜찮을지 모르겠다. 팀장들은 휴일에는 밀린 잠도 자고 싶고, 애들이 학원 진도 잘 따라 가는지 챙겨 봐야 하고, 재활용 쓰레기도 버려야 하고, 다음 주에 입을 셔츠도 다려야 한다. 그리고 회사 얘기는 회사에서 하면 되지 않느냐고 속으로만 생각한다.
단합을 위해 골프를 치고 등산을 하면서 같이 시간을 보내자는 것은 리더로서 할 수 있는 생각이다. 하지만 누구나 그 활동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절대선(善)이 없듯이 절대호(好)도 없다. 상사에게는 취미일지 모르지만 부하에게는 생계가 된다. 취미 파트너는 회사 밖에서 찾는 것이 서로에게 좋지 않을까.
박 대표와 사진동호회를 만들겠노라고 굳게 약속한 김 과장은 결국 사진동호회를 만들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