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리가 웬 짜증이 그리 나셨나?”
“아빠, 내년 브랜드 계획을 상무님께 보고하려고 했는데 자꾸 회의 시간 직전에 연기하시잖아. 벌써 두 번째야.”
“상무님이 바쁘시구나. 왜 그리 바쁘실까?”
“하루 종일 회의를 하시거든. 근데 회의 하나가 길어지면 뒤 회의도 늦어지고, 그러다 외부 손님 만날 시간이 되면 그 다음 회의는 다른 날로 옮기게 되고. 그렇게 되는 거 같애. 왜 그렇게 회의가 많은지 모르겠어.”
“너는 임원들이 일하는 방법과 팀원들이 일하는 방법이 어떻게 다른 거 같으니?”
“우리는 보고서 만들고, 임원들은 보고 받고?”
“그렇지. 경영자의 일이란 보고 받고 토의하고 결정하는 거지. 경영자는 혼자서 일하지 않아. 그래서 경영자는 회의가 많은 거야.”
“회의가 많은 건 당연한 거네.”
“그렇지. 회의는 경영자의 일이야. 또, 상무님이 왜 바쁘신 거 같니?”
“기본적으로 일이 너무 많으신 거 같아. 맡고 있는 팀도 많으시고, 보고나 결재도 많고, 행사나 회의도 많은 거 같구요.”
“그렇지. 일정이 꽉 차 있고 바쁘실 거야. 경영자들이 바쁜 건 일이 절대적으로 많기도 하지만 자신의 시간을 자신이 컨트롤하지 못하기 때문이야.”
“일이 절대적으로 많은데 어떻게 컨트롤을 해? 그냥 오는 대로 보고 받고 하면 되는 거 아냐?”
“요령 있게 하면 경영자나 부하들이나 서로 여유가 생겨. 예를 들어서, 임원 보고는 사전에 약속을 하도록 해야지. 그냥 불쑥 들어오면 시간 관리가 안 되니까. 아빠는 부하 직원을 만날 때도 예약을 했어. 비서를 통해서 언제 시간이 되는지 물어 보고 만났지. 사장님이 불렀다고 팀장이 팀 회의하다가 끊고 달려가면 다른 직원들의 시간은 뭐가 되겠어. 내 시간이 중요한 만큼 부하의 시간도 존중해 주려고 애썼지.”
“오... 그건 훌륭하십니다. 슬그머니 라떼 얘기가 나오지만... 근데 지금까지는 상무님을 위한 조언이구요, 저희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사장님?”
“길들여야지.”
“오잉? 사원들이 상무님을 길들이라구요?”
“상사가 부하에만 영향을 주는 게 아냐. 부하도 상사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구.”
“어떻게요?”
“우선 회의자료를 전전날쯤 이메일로 보내거나 출력해서 상무님 책상에 놓아드려. 그리고 회의 시작하면서 ‘다 보셨을 테니 간단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해 봐.”
“‘요놈들 봐라.’ 하고 생각하실 거 같은데요...”
“농담이고. 요약하면 상무님의 시간에 끌려 다니지 말고 너희들이 시간의 주인이 되어 보라는 거지. 전날까지 야근하면서 보고서 만들지 말고 하루 이틀 전에 완성해서 이메일로 보내라구. 그렇게 하면 회의가 연기되더라도 니네는 보고한 거나 마찬가지야. 꼭 대면해서 하나하나 설명을 해야 보고하는 건 아니잖아? 회의가 연기되면 이메일로 ‘보내 드린 보고서 보시고 코멘트 주시면 보완하겠습니다.’ 해 보라구.”
“그건 좀... 뭔가 쎄 보이네요.”
“회의를 연기하거나 자료를 미리 읽어 보지 않은 건 상무님 사정이지 니들 잘못이 아니야. 이렇게 시간과 일의 주인이 되어서 앞서 가면 공은 상무님에게 넘어가 있는 거야. 네가 팀장님에게도 이렇게 보고하고 소통한다고 생각해 봐. 네가 팀장님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팀장님이 너를 따라오는 거야. 회사의 시간은 대개 윗사람의 시계에 맞추어 돌아가지. 그 시계를 네 시계가 될 수도 있어.”
“멋져 보이지만 힘들 거 같네요. 일을 미리미리 해야 하니까.”
“아빠가 좋아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어. ‘네 운명을 네가 책임져라. 아니면 다른 사람이 책임지게 될 것이다.’ (‘Control your destiny, or someone else will.’)”
“너무 비장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