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팀장은 입사한지 15년 만에 팀장이 되었다. 그가 맡은 경영기획팀은 팀원이 15명이 넘는 규모가 큰 팀이다. 김 팀장은 경영기획팀뿐만 아니라 사업부에서도 근무한 다양한 업무 경험을 갖고 있었고 뛰어난 업무 능력으로 장차 임원감으로 꼽히고 있었다.
팀장으로 승진하는 일은 참으로 기쁘고 흥분되는 일이다. 대리나 과장으로 승진하는 것도 신나지만 팀장은 관리자이기 때문에 김 팀장은 더욱 기뻤다. 팀장이 되면 부서의 성과를 책임지게 되고 팀원 평가를 하게 된다. 진정한 장(長)이 되는 것이다.
신임 팀장의 공통된 코칭 주제는 ‘어떻게 하면 팀원들이 지금 보다 더 열심히 일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승진한 김 팀장의 고민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팀원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일에 대한 팀원들의 열정이나 일의 완성도가 김 팀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팀원들의 일하는 수준에 만족하지 못하니 김 팀장은 팀원 각각의 일을 일일이 챙기고 있었다. 업무 지시를 할 때 담당 팀원을 앉혀 놓고 화이트보드에 일의 방향과 함께 단계 별로 해야 할 일을 그리고 써가면서 세세히 지시했다. 중간 점검도 빠뜨리지 않았고 보고서는 오탈자까지 꼼꼼히 챙겼다.
김 팀장은 일하는 것이 좋아서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 팀원들의 일솜씨가 걱정이 되어 하나하나 같이 따져 보고 지시하고 챙겨 보았다. 김 팀장은 15명 팀원 각각의 업무를 거의 같이 하고 있어서 늘 바빴다. 퇴근도 늦었고 주말에 집에 일거리를 들고 가기도 했다.
“팀장님은 리더가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박 코치가 물었다.
“리더란 성과를 내야 합니다. 또, 리더는 부하를 앞장서서 이끌어야 하구요, 조직에 비전을 불어 넣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일하기보다 부하가 일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부하를 육성해야 합니다.” 김 팀장의 말을 듣던 박 코치는 미소를 지었다.
“팀장님이 말씀하신 내용 중에 제가 생각하는 리더의 정의가 있네요. 저는 리더란 ‘다른 사람을 통해 성과를 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은 대통령 출마를 선언한 직후 CBS의 ‘60 Minutes’와의 인터뷰에서 “위대한 리더가 반드시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위대한 리더는 국민이 위대한 일을 하도록 만드는 사람이다.” ("The greatest leader is not necessarily the one who does the greatest things. He is the one that gets the people to do the greatest things."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이 위대한 일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 할 거라고 말한 것이다
리더는 자신이 직접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 리더는 다른 사람, 즉 구성원을 통해서 일하는 사람이다. 리더가 직접 일을 해야 하는 조직이라면 리더 개인의 업무 능력만큼만 성과를 내게 될 것이다. 구성원들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리더의 일이다.
“당장 끝내야 할 일이 있는데 맡겨만 놓고 보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김 팀장이 한숨을 쉬었다.
“일 하나하나를 언제까지 그렇게 챙기실 건가요?” 박 코치는 되물었다. 김 팀장은 말이 없었다.
어떤 사람이 리더가 되는가? 당연히 업무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리더가 된다. 업무 능력이 뛰어나서 승진했으니 리더가 구성원 보다 일을 잘 하는 건 당연하다. 따라서 일의 완성도에 대한 리더의 기대 수준은 구성원의 업무 역량으로 충족시키지 못할 때가 많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기대 수준을 충족하려면 리더가 직접 일을 하거나 구성원의 업무 역량을 리더와 같은 수준으로 개발해야 한다.
구성원의 업무 역량이 갑자기 좋아질리 없다. 그래서 급할 때는 팀장이 직접 일을 하게 된다. 리더가 직접 일을 하면 구성원이 일을 배울 기회가 있을까? 리더는 구성원의 일솜씨가 불안해도 꾹 참고 믿고 맡겨야 한다. 맡기지 않으면 구성원이 일을 배울 수 없고 일을 배울 수 없어서 업무 능력이 부족하면 리더가 직접 일을 해야 하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구성원이 일을 배우게 하려면 리더는 일에 대한 기대 수준을 잠정적으로 낮추어야 한다. 기대 수준을 낮추고 실수를 용인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자전거 타기를 가르칠 때 잡아주던 안장을 놓고 혼자 타보게 해야 하는 것과 같다. 넘어져 다칠까봐 안장을 계속 잡아주면 자전거 타기를 배울 수 없듯이 일의 실수나 부족함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일을 배울 수 없다.
다음 코칭 때 김 팀장의 표정이 밝았다. “요즘 자세히 가르쳐 주지 않고 할 일의 제목만 주고 있습니다. 팀원들이 일하면서 고민하는 모습을 보니 흐뭇하네요. 개인차는 있지만 조금만 도와주면 되겠던데요. 말씀하신대로 당분간 기대 수준을 낮추기로 했습니다.”
부하의 일에 대한 기대 수준을 낮추어 업무의 완성도가 잠시 떨어지는 것은 팀장으로 자존심이 상할지 모른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팀원의 역량의 총합과 팀원 개인 역량의 하한선이다. 우리 팀은 ‘신입사원도 이 정도는 한다’ 는 것이 팀장의 자존심이다. 그러니 잠시 내려놓고 업무 역량을 키울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일 잘 하는 사람이 일을 하지 않아야 다른 사람이 일을 잘 하게 된다. 일을 내려놓는데서 리더십이 시작된다. 리더가 되는 것은 일을 하지 않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리더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말해 놓고 나니 참 이상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