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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참은 상사가 아니다

by 박코치

고참, 비공식 관리자가 되다


경영관리팀 김 과장에게 5년간 분기별 재고를 경쟁사와 비교해서 분석해 달라고 부탁했다. 성수기 재고 추이를 경쟁사와 비교해서 생산관리 역량을 평가해 보고 싶었다.


간단한 분석이니 이메일로 분석 결과를 알려달라고 했지만 설명이 필요하다고 해서 보고 일정을 잡았다. 김 과장은 이 주임과 같이 왔다. 설명은 이 주임이 했다.


보고가 끝나고 나가는 김 과장을 다시 불렀다.

“나는 김 과장한테 지시를 했는데 왜 이 주임이 보고를 했지요?” 자신의 일을 후배에게 떠넘긴 것을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이 주임이 분석 작업을 했기 때문에 직접 보고를 드리도록 했습니다.” 그는 아직 내 말의 의도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김 과장이 이 주임의 상사입니까?”

“아닙니다.” 그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제 내 의도를 알아챈 듯 했다.

“나는 김 과장에게 분석을 해 달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그럼 김 과장이 보고해야 합니다. 김 과장은 관리자가 아니라 담당자입니다. 담당자가 다른 담당자를 도와줄 수는 있어도 일을 시킬 수는 없지요.”


부서장은 ‘장’(長)의 권한을 갖고 조직의 일과 사람을 관리하는 관리자이다. 어떤 업무를 누가 언제까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결정하고 구성원의 업무 성과와 역량을 평가하는 사람이 관리자이다. 과거에 부(部)와 과(課)로 나누어지던 부서 구조가 ‘팀’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이다. 부서장인 팀장이 팀의 유일한 관리자이다.


직급이 높은 팀원이 팀의 비공식적인 관리자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다. 팀의 막내인 B사원이 팀장인 C팀장이 아니라 A차장에게 업무 지시를 받고 보고하는 상황을 말한다. A차장이 B사원의 비공식적인 상사가 되는 것이다. A차장은 B사원의 업무 진행에 대해 지시하고 결과물에 대해 승인한다. B사원은 A차장이 승인한 업무 결과를 직접 C팀장에게 보고하기도 하지만 A차장과 같이 C팀장에게 보고할 때도 있다. 때로 A차장은 B사원이 수행한 업무 결과를 C팀장에게 보고하면서 수행자가 B사원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고 자신이 한 것으로 C팀장이 알게 하는 경우도 있다.


무미건조한 문체로 써서 그렇지 A차장은 한 마디로 ‘지가 팀장도 아니면서 후배들한테 멋대로 일을 시키고 자기 일을 후배들한테 떠넘기는 선배’이다. 이 상황은 요즘 젊은 직원들이 ‘극혐’하는 부서 선배의 모습이다.


고참이 비공식 관리자 역할을 하는 조직에서는 공식 관리자와 고참 간에 책임이 불분명해진다. 공식적으로는 팀장이 팀의 성과에 책임을 지지만 심정적으로 팀장은 고참이 ‘책임지고 잘’ 해 주기를 바란다. 고참은 책임감을 갖고 후배들과 일을 한다고 하지만 결국 최종 책임은 팀장에게 있으니 빠져나갈 길이 있다. 결국 일에 구멍이 생기고 팀장은 고참을 원망하거나 고참은 팀장 탓을 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생긴다.

비공식 관리자로 인해 생기는 다른 폐해는 공식 관리자의 업무 역량이 저하하는 것이다. 최일선 관리자인 팀장이 자기 밑의 고참을 비공식 관리자로 두고 임원 코스프레를 하다 보면 팀장은 실무에서 멀어지고 업무 역량은 추락한다. 몇 년 그렇게 일하다 보면 팀장은 뒷짐지고 결재만 하는 관리자로 전락한다.


경영자는 실무 조직에 비공식 관리자가 발생하지 않는지 눈여겨보아야 한다. 고참이 비공식 관리자가 되었는지 알 수 있는 증상이 있다. 첫째는 앞의 사례에서 보듯이 지시 받은 사람과 보고하는 사람이 다른 경우이고, 둘째는 보고하는 사람과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하는 사람이 다를 때이다. 셋째는 관리자가 아닌 사람이 결재난에 올라가 있을 때이다.


비공식 관리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사실 고참의 비공식 관리자화는 좋은 목적에서 시작된다. 신입사원을 육성하는 목적이다. 대개 신입사원에게 업무를 가르칠 때 고참이 신입에게 자신의 일을 나누어 주고 지도를 하게 된다. 신입이 어느 정도 업무에 익숙해지면 독립된 팀원으로 스스로 일하게 해야 하는데 계속 고참에 예속된 상태로 업무 지시와 리뷰를 받게 되면서 선배가 슬며시 비공식 상사가 된다.


비공식 관리자가 생기는 두 번째 원인은 고참의 권력욕이다. 상사 대접을 받으면서 후배에게 자신의 일도 떠넘길 수 있으니 유혹을 받을 만하다. 권력욕은 한국 남자 대부분이 경험하는 병영문화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공식 장(長)이 아니면서도 ‘내 아래로 집합’을 명령할 수 있는 ‘선임자’ 문화가 비공식 권력의 사례이다.


비공식 관리자가 발생하는 세 번째 원인은 관리자가 자신의 직무를 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팀 내에 비공식 관리자를 두면 팀장 노릇은 편해진다. 비공식 관리자인 고참은 팀장이 자신을 착취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권력욕에 취한다. 무엇보다 팀장이 고참에게 관리자 역할을 나누어 주는 것은 관리자로서의 직무유기이다.


비공식 관리자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려면


관리자는 조직 내의 비공식 관리자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고민해 볼 것은 부서의 규모이다. 팀에 비공식 관리자가 발생한 팀장은 팀 규모가 크고 구성원의 숫자가 많아서 자신이 모두 챙기기 힘들었다고 해명한다.


팀장의 주장과 달리 팀의 규모가 적당했는데 비공식 관리자가 발생했다면 팀장의 관리 역량이 부족한 탓이다. 더 큰 규모의 팀을 능수능란하게 운영하는 팀장도 있기 때문이다. 세부적인 것을 과도하게 챙기는 마이크로 매니저일수록 큰 팀을 운영하기 힘들다.


팀의 규모가 큰 경우에 근본적인 해결책은 부서의 비공식 관리자를 공식화하는 것이다. 팀 아래 파트를 만들면 된다. 파트장에게 평가권을 부여할 것인가는 회사의 정책에 달렸다. 생산부서와 같이 인원이 많지 않다면 파트장에게 평가권을 주지 않아도 큰 문제는 없다. 파트 제도는 고참이 관리자 경험을 하는 기회가 될 수 있어서 팀장 후보를 육성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팀을 나누는 것도 한 방법이다. 기업은 팀의 숫자를 늘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조직이 복잡해지고 관리자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부서의 수가 늘어나 의사소통과 협조에 문제가 생긴다. 그렇지만 한 팀 내에 업무가 서로 관련이 없는 여러 파트를 두고 있느니 팀을 나누는 게 낫다. 팀 규모의 대한 기준을 유연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


비공식 관리자 역할은 고참에게도 부담이 된다. 부담을 덜어주는 방법은 신입에 대한 수습 기간과 ‘홀로서기’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다. 입사 초기에는 신입이 고참과 사수-부사수의 관계로 일하면서 업무를 배우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일정 시간이 지나거나 신입의 업무 숙련도가 높아졌을 때에는 사수-부사수 관계를 종료하고 홀로 일할 수 있는 팀원이 되었음을 선언해야 한다.


부서장과 구성원 각자는 비공식 관리자의 존재에 대해 고민해 보야 한다. 부서장 입장에서 비공식 관리자가 있다는 것은 부서가 건강하고 조직적으로 운영되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다. 부서장은 부서의 업무와 구성원 모두를 자신이 직접 챙기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구성원의 시각에서 생각해 보자. 학교에서 선배와 후배의 차이는 학교를 몇 년 일찍 다녔다는 것이지만 직장에서 선후배는 업무를 가르쳐 주고 배우는 사이이다. 그렇다고 업무를 배웠다는 일종의 사제 관계가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 무협 소설에서 동문수학한 사형과 사제도 하산하면 다른 길로 가듯이 직장 선후배도 각자가 프로페셔널이다. 선배 또는 고참은 상사의 동의어가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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