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라떼’라는 단어가 객지에서 고생이 많다. ‘라떼’(latte)는 이태리 말로 우유를 뜻한다. ‘카페 라테’ (caffè e latte)는 진한 커피인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넣은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카페 라떼를 그냥 편하게 라떼라고 부른다. 이태리에 여행 가서 커피숍에서 라떼를 달라고 했더니 우유 한 잔을 주더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언제부터인가 상사가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시작하는 ‘나 때는 말이지...’ 하는 표현을 젊은이들이 ‘Latte is a horse...’ 라고 재치있게 번역했다. 이태리 말로 우유라는 명사가 한국에 와서 ‘내가 왕년(往年)에’가 되었다. 이후에 진화하여 요즘은 선배들의 경험담을 ‘라떼’라고 부르고,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하는 사람을 ‘라떼 아저씨’라고 부르기도 한다.
“내가 이 대리 연차 때는 말이야 엑셀 같은 거 없었잖아. 그때 계산기로 대리점 2백 개 실적 집계를 하루 만에 끝냈었지.” 김 부장이 라떼를 시작한다. 이 대리는 들리지 않게 중얼거린다. ‘그래서요? 어쩌라구요?’
사실 김 부장이 하고 싶은 말은 ‘나는 대리 때 밤 새워 일했는데 니들은 왜 그렇게 일찍 퇴근하니?’ 이다. 그렇지만 김 부장도 알고 있다. 그렇게 대놓고 이야기했다가는 평판만 나빠지고 다면평가 점수도 내려간다는 걸. 이 대리가 “부장님 대단하셨네요!” 하고 공손히 대답을 한다고 해도 그의 속마음은 ‘일만 제 때 하면 되지 별걸 다 간섭이네.’ 라는 걸.
젊은 직원들은 상사의 무용담과 고생담을 왜 듣기 싫어할까? 무용담에서도 배울 게 있지 않을까? 모든 라떼가 듣기 싫은 것은 아니다. 라떼가 듣기 싫을 때는 라떼의 의도가 듣는 사람의 일에 대한 태도를 지적하려고 할 때이다.
과거에는 상사가 시키는 대로 일했다. 명령과 통제(command and control)에 따라 일을 했다. 이제는 일의 목적과 목표가 정해지면 구체적인 일하는 방법은 일하는 사람에게 맡긴다. 일에 대한 태도도 일종의 일하는 방법이다. 요즘 구성원들은 일하는 태도까지 정해주는 것은 과거회귀이고 과도한 간섭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태도에 대해 이야기해 주고 싶다면 라떼를 활용하기보다 태도가 성과에 주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이 대리, 대리점 실적집계를 매달 2일 내에 마쳐야 하는데 시간이 충분하겠어?” 또는 “고객사 담당자와 통화하는 걸 들었는데 그쪽에서 좀 기분나빠하지 않았을까?” 와 같은 방식으로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
모든 라떼가 가치 없는 것은 아니다. 일에 구체적으로 도움이 되는 라떼도 있다. 일하는 방법에 대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라떼이다. 우수한 성과를 냈던 상사의 업무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적용할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즉 라떼는 참고자료 역할을 한다.
라떼가 부하의 일과 삶에 의미를 주기도 한다. 지금 부하가 고민하고 있는 관계나 경력 문제의 해결책을 상사의 고생담에서 발견할 수도 있다. 일과 삶의 의미와 해결책을 상사가 잘 전달해 주어야 하겠지만 부하가 발견해야 할 필요도 있다.
라떼의 내용 만큼 라떼를 전달하는 방법이 더 중요하다고 느낄 때가 종종 있다. 경영자 코치들이 그런 상황에 놓일 때가 많다. 코치야말로 라떼거리가 많은 사람들이다. 임원이나 CEO로 일했던 분들이 많으니 무용담도 좀 많겠는가. 사실 박 코치도 ‘한 라떼’ 한다. 그런데 코칭의 원칙은 코치가 해답을 주기 보다는 피코치자가 스스로 답을 찾아내게 도와주는 것이다. 그래서 코치는 라떼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무척 조심한다.
그렇지만 피코치자 중에 “코치님은 저와 비슷한 경험이 있으셨습니까?”, “코치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하고 코치의 의견을 구하는 분이 드물지 않다. 이럴 때 코치는 “제 경험을 말씀 드려도 좋겠습니까?” 하고 피코치자에게 반드시 허락을 받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야기를 끝내고 나서는 “제 경험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제 얘기를 듣고 무엇을 해 보고 싶으십니까?” “제 얘기에서 적용해 보기 어려운 게 무엇입니까?” 하고 피코치자가 생각을 확장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마찬가지로 김 부장이라면 “내가 과거에 이 대리와 비슷한 상황이 있었어. 도움이 될 거 같은데 한번 들어볼래?” 하고 먼저 물어보고 이야기를 시작해 보라. (절대 이 대리는 싫다고 하지 않는다^^) 끝나고 “도움이 되는 게 있었나?” 하고 의미를 찾도록 하는 걸 잊지 않아야 한다. 허락을 구하는 순간 라떼는 더 이상 무용담을 빙자한 잔소리가 아니라 상사의 애정 어린 코칭이 된다.
서점에서 보는 회고록이라는 게 결국 방구 좀 뀌던 사람들의 ‘라떼 모음집’이다. 나라를 구했거나 맨손에서 부자가 된 사람들의 인생도 작은 라떼의 집합이다. 그들의 회고담과 나의 라떼의 차이는 의미를 끌어냈느냐에 있다.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스토리와 메시지를 다듬어 보라. 단, 과거에 머무르지 말고 현재와 미래에 가치를 두고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