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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코치 Jun 23. 2022

남은 자의 도리(道理)

제너럴 일렉트릭의 전 CEO 잭 웰치는 후임을 정하기 위해 세 사람의 후보를 선정했다. 세 사람 중 한 사람이 CEO가 되고 다른 두 사람은 회사를 떠나게 된다고 선언했다. 몇 년 후 차기 CEO가 결정되었다. 잭 웰치는 탈락한 두 사람에게 통보하는 과정을 자서전에 상세히 적었다.


“두 사람이 CEO로 뽑히지 못했다는 소식은 내가 전하기로 했다. 그들과 눈을 맞추면서 내가 직접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 사람 모두 CEO 선정 과정에서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한 경영 역량과 성과를 보여 주었다. 새 CEO를 선정하는 것은 여러 자식 중 하나만 선택하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나는 두 사람에게 할 얘기를 수십 번 연습했다. 아내를 상대로 리허설까지 했다.”


잭 웰치는 전용기로 비바람이 치는 저녁부터 한밤중까지 미국 중서부와 동부의 도시를 돌면서 공항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그는 그들에게 다른 후보가 CEO로 선정되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는 그들에게 말했다. “왜 두 사람이 탈락되었는지 이유를 말하기 어렵다. 그냥 내 직관에 의한 선택이었다. 세 사람 모두 훌륭했다. 당신이 화낼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나다.  내게 화를 내라. 당신들은 최고의 경영자이고 다른 어느 곳에서 가서도 훌륭한 CEO가 될 것이다.” 두 후보는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각각 다른 회사의 CEO로 발탁되었다.


임원을 해임하는 일은 CEO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다. 해야 하는 일이지만 하기는 싫고 마음도 아픈 일이라 대표는 가능한 피하거나 늦추거나 남에게 미루고 싶어 한다.


중견기업 이상 규모의 회사에서 임원 인사에 대한 결정을 모두 CEO가 내릴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대주주가 경영에 깊게 참여하고 있는 곳은 대주주, 즉 그룹에서 임원 인사를 결정해서 회사에 통보한다. 물론 사전에 대표에게 의견을 묻는다. 그렇지만 대표의 의견이 반드시 반영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대표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결정하기도 한다.


대표의 의견을 구하지 않거나 대표의 의견과 다르게 그룹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면 대표는 일단 화가 난다. 사실 화를 낸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화는 점차 가라앉고 ‘내가 사장 맞나?’ 하는 무력감이 그 자리를 채운다.


결정된 내용을 통보할 때는 대표는 해임의 결정자가 아니라 해임되는 임원의 편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자신이 결정한 것이 아니니까 그렇다. 대표는 임원과 한편이 되어 같이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그룹의 결정이 잘못 되었다고 불평하기도 한다.


사실 해당 임원을 해임해야 한다고 대표 본인도 생각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해임되는 임원이 대표의 속마음을 알리도 없으니 자신은 당신을 해임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듯이 한숨을 푹푹 쉰다. 그러고 나면 대표는 자신이 가증스러워진다.


본인이 해임을 결정하고 임원에게 직접 통보해야 하는 경우를 CEO는 가장 부담스러워 한다.


나는 CEO로 일할 때 임원 인사에 대해 전적인 권한을 갖고 있었다. 그룹은 임원 선임, 승진과 퇴임에 대한 내 의견에 한 번도 반대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참으로 힘들고 고민되었다. 인사에 대한 모든 것이 내 책임이 되기 때문이다. 신규 선임하거나 승진한 임원이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하면 판단을 잘못한 내 책임이었다. 따지고 보면 해임된 임원도 상사인 내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제대로 챙기지 못해서 퇴임하게 된 것이었다.


CEO가 임원의 해임을 결정했지만 인사담당 임원이나 인사팀장을 시켜서 퇴임 통보를 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그룹이 퇴임을 결정했다고 해도 대표 본인이 통보하는 것이 맞다. 남을 시켜서 알리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상사인 대표가 물러나는 임원에게 직접 통보하는 것이 당연하다.


임원을 불러 물러나게 되었다고 이야기하는 일은 불편하고 힘들다. 체한 것처럼 가슴이 답답하다. 뭐라고 말을 시작해야 할지, 위로를 해야 할지, 그냥 사무적으로 이야기해야 할지 나도 얼마나 고민했는지 모른다. 수없이 많은 사람을 내보낸 본 잭 웰치도 수십 번 연습했다는 걸 보면 아무리 여러 번 해 봐도 익숙해지는 일은 아닌 거 같다.


퇴임하는 임원은 나의 동료이자 부하이다. 내가 임원을 시켰고 승진시켰다. 퇴임 이유가 무엇이든, 누가 결정했든, 힘들지만 내가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 힘든 결정이었음을 알려 주고 앞날에 행운을 빌고 용기를 주어야 한다. 당당하게 마주 보고 이야기해야 한다. 그것이 같이 일했던 동료이고 상사이자 남은 자로서의 도리(道理)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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