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에 관해서

그라시아스 카페꼰레체

by jungs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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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5년 전 일이 되었다. 20대 후반의 난 아직 외국은커녕 비행기도 한번 타보지 못했었다. 그럼 비행기를 타거나 외국을 가보려는 꿈을 꾸고는 있었는가 하면, 아니. 난 그런 엄청난 일은 생각하지 못했다. 다만 하루라도, 한 순간이라도 그저 정말 마음 편안히 살고 싶었고, 우선 이 사회의 일원으로써 적응이 되길, 그리고 점차 야심을 펼쳐 사회 속에서 튼튼한 성공을 할 수 있길 꿈꿨다.

아마 어느 정도, 가능했을 것이다. 나의 집착적이고, 어쩌면 변태적이기까지 한 열심이 통속적 성공을 향한 노력에 집약되었다면 넘치게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이 어디 그렇게 의도와 계획대로 흘러가던가.

우연의 연속이라고 해야 할지, 거대한 필연 덩어리하고 해야 할지 모르는 자잘하고 큰 선택과 경험을 거쳐 결국 스페인 단기 선교를 떠나기에 이른다. 꿈에도 생각해본 적 없는 길이었다. 당시의 수많은 선택과 경험의 미세한 입자들이 하나님의 재채기 같은 것이었는지 나의 열망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그 입자들이 나를 참 많이 바꾼 것은 확실하다. 낯선 문화 속으로 떠나는 여행은 늘 보이지 않는 문신을 영혼에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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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디 짧은 여행의 문신 따위 잊고 십오년이 흘렀다. 난 한 지역 도서관에 틀어박혀 이 나이에 때 아닌 문제집 공부를 하고 있었다. 시험이라는 것이 늘 이렇다. 시간이 몇 시인지, 도서관 문을 닫는지도 모르고 내가 한 일은 고작 문제지 답 따위를 외우는 일이었다. 공부할 시간이 부족해 책을 들고 보면서 걸어갔다. 초조하고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마음이었다. 그렇게 지하철 역 계단을 걸어 내려가서 플랫폼의 승차 위치 앞으로 다가가고 있을 때였다.

6호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한 무리의 외국인이 내 앞길을 막고 있었다. 거의 일곱여덟 명 정도의 젊은 외국인 청년 무리였다. 그들은 자유분방한 자세로 동그랗게 빙 둘러서서, 활발히 무언가에 관해 대화하며 살아 있었다. 대화하고 있었다고 표현하지 않고 ‘대화하며 살아있었다’고 표현한 것은 우선 정말 그들이 그러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욱, 죽어있는 채로 문제집을 보던 나와 그들이 너무나 대비되었기 때문이었다. 흑백 티브이와 컬러 티브이가 다른 것처럼 우린 달랐다.


그들은 정말 그냥 대화한 것이 아니라 ‘살아서’ 대화했다. 꼬모에스빼라안또 꿰리오란도싸비올라 뽀르께아.. 빠라 씨오네따레 올라빠에야 메렐라스또. 스페인어는 모르지만 스페인어였다. 이런 발음은 스페인어밖에 없으므로 스페인어였다.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민족은 남미 등지에도 많지만 분명 그들은 스페인 사람 같았다. 언어나 피부색이나 키 때문이 아니라, 기억하고 있던 느낌 때문에 스페인인임을 알아보았다. 스페인에서 보았던 스페인 젊은이들 특유의 바로 그, 살아 생동하는 느낌을 가진 것으로 보아 스페인 청년들이 틀림없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그 때의 그 스페인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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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그들과 난 지하철 안으로 함께 미끄러져 들어갔다. 주말 밤 시간대 6호선에는 승객이 많지 않았다. 대부분 젊은 세대였고, 다들 나처럼 냉랭하고 무표정했다. 내가 느끼기에 그 열차 칸에서 활기를 뿜으며 대화하는 사람들은 거의 그 스페인 청년들 뿐이었다. 그들과 대각선 대칭의 자리에 앉은 나는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문제집을 붙들고 있었다. 계속해서 귓가를 간지럽히는 스페인어 특유의 열정적이고 활기찬 발음과 인토네이션, 운율. 문제집을 덮었다. 한 동안 그렇게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았다.


여자 세 명에 사내들 다섯 명 정도였던 것 같다. 뭐가 그렇게 뜨겁게 이야기할 것들이 많은 것일까, 무엇인가 말하고 싶은 것이 항구적으로 많아 보이는 사람들 같았다. 삶과 사랑에 빠진 열정가들처럼 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들은 대부분 마스크도 안 쓰고 있었다. 그들의 생기와 생동감에 취해 아무도 깨닫지 못한 걸까. 다들 스마트폰에 빠져 그 생기 넘치는 외국인들을 바라볼 마음의 여유도 없었던 걸까. 그, 어딘가 음울한 우리의 한국인 청년들 중 누구도 그들에게 마스크 좀 쓰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마 그들이 한 순간도 빠짐없이 말하고 있던 것도, 그들 모두가 실은, 뜨겁게 대화하고 있던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일단의 스페인 청년들의 존재가 집단적으로 풍기는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분위기 같은 것이 있었고, 그 느낌 때문에 모두 다, 쉼없이 열정적으로 대화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느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나의 몸 안으로 파고 든 한국사회의 모든 기운들, 그러니까 문화나 교육, 또 가정의 분위기, 한국 기독교, 보수적이고 억압적인 성 문화 등의 가스가 봄 아지랑이처럼 나의 온 피부에서 빠져나가는 것 같은 느낌을 느끼면서, 나는 맥없이 그들을 바라보았다. 일종의 디톡스였다.

그들이 꼭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들이 좋다는 것이다. 그들과 나는 어떤 지점에선가 선명히 대비되고 있었다. 그것은 응시와 관찰, 또는 이런 구질구질한 낙서 따위로 해소되거나 풀리거나 파악되거나 전염되거나 소유되는 것은 아닌 것이 확실했다. 하염없이, 하염없이,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어떤 정신과 문화, 종교, 또는 그 모든 것이 뒤섞이고 응집된 활기에, 자작하게 매료되고 있었다.

여전히 그들과 나를 제외한, 그 지하철 칸에 있던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내내 특유의 무심함과 무관심의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6호선 지하철, 한 칸에 있던 우리는 같은 젊은이었고, 같은 인간이었는데. 그것은 독특한 느낌의 이질감이었다. 아마 나도 6호선을 타서 그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두터운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쓰고 베토벤 심포니를 풀 볼륨으로 올려놓고 문제집에 머리와, 시선과, 영혼을 파묻고 있었을 것이다. 결국 그들을 만나 이렇게 낙서를 하고 싶었고, 집에 가면 우선 카페 꼰 레체부터 만들어 먹고 뭐든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살아 있어야지. 잊지 말아야지. 살려고 했던 일들임을, 살리려고 했던 일들임을 잊지 말아야지. 살자. 죽지 말고 살자. 뭘 하든 생생히 살자. 죽지 말자. 살고 죽지 말자. 살고 사랑하자. 이렇게 맺으면 그 스페인 청년들의 홍삼 액기스 같은 생명과 활기의 진액을 훌륭하게 짜 먹은 것이 될 것 같다. 그라시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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