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거의 유일한 신년 계획이다.
지하철이 한강을 지나고 있다. 사람들은 무표정이거나 화난 표정이다. 다들 고개를 숙이고 있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장쾌한 가을 한강이 펼쳐져 있는데. 열차가 한강을 건너고 다시 어두컴컴한 지하로 들어갈 때까지, 난 차갑고 푸른 강물결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맞은편에 앉은 7명 중 6명이 스마트폰을 한다. 맨 손으로 앉아, 내릴 역만 기다리고 계신 것 같은 아저씨 한 분만 왜인지 화난 사람 같은 표정으로 나를 자꾸만 관찰한다. 나만 스마트폰을 안 보고 있어서 너무 눈에 띄나, 혹시 이 칸에 앉은 사람들은 모두 살 껍질을 벗기면 녹색 파충류 피부가 드러나는 외계인 V인데, 나만 인간이어서 나를 잡아먹으려고 하시는 것인가, 하는 상상을 잠시 했다.
어쩌면 그렇게 일제히, 발이 많이 달린 징그러운 벌레처럼, 열 손가락으로 작은 기계만 움켜쥐고 꾸부정하게 몸을 돌돌 말고 있는지. 모두 지배받고 있다. 삶을 지배하려고 아등바등 하지만, 결국 작은 스마트폰 쪼가리에, 스마트폰을 만드는 거대한 공장에, 지배받고 있다. 평생 무언가에 착취당한다. 선량하고 가녀린 인간들은. 삶으로, 살아있음으로 구원받아야 한다. 겨우 살아남는 생존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는, 삶으로 구원받아야 한다. 정보와 이득과 향락이 아니라 시로, 웃음으로, 눈물로 구원받아야 한다.
나도 스마트폰으로 할 일이 천지다. 어디에서 내려야 하는지도 검색해야 하고 무엇도 해야 하고 또 무엇도 해야 한다. 그러나 벌컥 화가 나서 이병률 시집을 꺼내 들었다. 분노였다. 저항이었다. 한숨이었다. 불이었다. 열정이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전력질주였다.
삶이란, 그것이 말 그대로 삶이므로, 살아있는 것이야만 한다는, 일종의 고백적 항의였다. 시집 한 권은 가방에 꼭 갖고 다녀야지, 나를 살아있도록 하는 주술을 잊지 말아야지, 이를 악물었다. 살아있어야지, 살아있어야지, 매일매일 더 생생히 살아있어야지.
* 1년 전 쯤 어느 가을 날 쓴 낙서를 조금 윤문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