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빵집

담백한 벚꽃빛 그리움

by jungsin



예전에 D대학 앞에 한 독일빵집이 있었지. 너무나 소중한 곳이었어. 그때는 소중하지 않았지. 수많은 가게들 중의 하나일 뿐이었어. 담백한 빵. 두껍고, 투박하고, 빵 냄새만 가득한. 아마 지금 떠올려보니까 빵집 이름도 독일어였던 것 같아. 빵값이 좀 비쌌어. 가게는 아담했던 데다가, 빵집 안은 대학생이 들어가 물건을 고르기가 조금 부담스러울 정도로 차분하고 조용했어.


빵집 분위기 못지않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빵가게 안에 진동하던 냄새였어. 학교 앞의 다른 1층 상가들보다 몇 계단 낮은 그 빵집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뭐랄까 고소하면서도 그윽하고, 무취인 듯하면서도 진한 빵 냄새가 났어. 피자빵이나 소보로 빵처럼 정체성이 분명한 빵들의 냄새와는 궁극적으로 달랐어. 젊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러니까 짭짤하거나 단 냄새가 온몸에 베는 것만 같은, 미각의 포인트가 분명하고 강렬한 빵들에서 나는 냄새가 아니었어.


작은 유리장 안이나, 유리장 밖 선반 위에 차분히 뉘어있는 빵들은 요란한 냄새를 풍기지 않았어. 그 집 빵들은 모두 기품 있고 점잖았어. 늘 개수도 많지 않았고, 다만 얼마의 빵들이 큰 욕심 없이 차분히 누워있었어. 구워질 때의 흥분과 뜨거웠던 기억을 식히고, 약간의 슬픔을 머금은 채 숨을 고르고 있는 듯 보였어. 정말 차분해 보였어. 이제는 안정되었다 못해 푹 가라앉은 톤으로 깊이 안식을 누리며 쉬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


진열대에서 꺼내기가 미안하게 느껴질 정도였지. 정말 독특했어. 너무 낯설었어. 온 세상이 긍정과 설렘으로 가득한 것만 같았던 2000년대의 대학생에게는 특히 그렇게 느껴졌지.


뒤늦게 깨달았어. 그러니까 아마도, 그 빵집 주인아저씨는 정말 독일에 가서, 수년 동안 그곳에서 독일 빵을 먹으면서 살았던 거야. 그리고 한국에 와서 그 맛을 그대로 구현하는 빵을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팔고 싶었을 거야. 하지만 그곳은 캠퍼스 정문 앞 길거리에 있었어. 대학생들이 한 입을 베어 물자마자 바로 탄성을 지를 만한 맛이 아니었어. 말했듯이 대학생들이 사기에는 약간 부담스러운 가격이기도 했고 말이야.


물론 학교 주변은 부자 동네였지. 바로 뒤에는 리첸시아라는 고급 오피스텔이 있었어. 독일 빵맛을 이해할 수 있는 중산층 이상의 오피스텔 주민들 얼마가 빵맛을 보고 단골이 되었다면, 아마 장사가 그럭저럭 유지될 수 있는 가능성은 있었을 테지. 아무튼 나는 학교를 다니는 동안 몇 번인가 그 빵집을 가보았었고, 내가 갈 때마다 손님은 나밖에 없거나 간혹 한 두 사람 정도 더 찾아왔던 것으로 기억해.


20대의 어렸던 나는 아직 그 빵맛에 공감하지 못했어. 고소하고 진하다, 그런 느낌은 있었지. 아마 처음 그 빵집의 빵 맛을 보았을 때는 다시 가고 싶지 않다고 느꼈었던 것 같아. 너무 비싸서 화가 나기도 했고 말이야. 그런데 한 번 사 먹고, 두 번 사 먹고 그러면서 점점 그 맛이 생각나 또 가고 또 가고 그랬었어. 그 씁쓸하면서도 진하고 깊은 맛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던 거야.


그런데 한참 시간이 지나고. 한 3년? 아니면 한 5년쯤이 지났을 무렵이었을까? 그러니까 더 이상 학교에 갈 일이 없어지고, 심지어 학교 조차 이사를 가서 없어지고 한참이 지나고 나서 문득문득, 학교 앞 그 빵집이 생각나기 시작하는 거야. 그러더니 급기야, 언제가부터는 그리워지기 시작했어.


이제는 정말 아득히 그리운 추억이야. 학교생활을 생각할 때면, 학생회관 앞을 지나갈 때 나던 꽃나무 향기와 함께 그 빵집이 생각 나. 아카시아였을까, 라일락이었을까. 큰 나뭇가지에 빼곡히 한가득 매달려, 하얗게 피어있던 그 꽃나무 아래를 걸을 때면 멀쩡한 사람을 괜히 뒤숭숭해지고 설레게 만들 정도로 매혹적인 꽃향기가 진동했지. 어떤 봄날은 가슴이 터져버릴 것만 같을 정도로 짙었던 꽃내음이 났어. 그 큰 나무들 한 옆에 주저앉아서 울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향기였어.


그 캠퍼스 거리, 학생회관 앞 그 구간에서만 맡을 수 있었던 바로 그 꽃나무의 꽃 냄새. 그 독일빵집에서만 맡을 수 있던 빵 냄새. 이따금 마음 저리게 그리워하곤 해. 내 비좁은 마음 안에서, 내 일상과 그 속에서 부대끼고 있는 나의 감정들이 버거울 정도로 힘든 날이면 더욱 그리워져. 정문 앞길 그 빵집의, 묘하고도 아득하고도 깊은, 이제는 신비롭기까지 한 그 빵맛. 진하고, 두껍고, 텁텁하고, 씁쓸하지만, 뱃속 가득 고소해지는.



keyword
이전 05화긴 파마머리 여대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