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가서. 할머니들이 있는 동네 가서 살래. 살아있는 진한 맛의 김치 담글 줄 아는 할머니들이 사는 동네 가서 살래. 가서 할머니들한테 예쁨 받아서 김치 얻어 먹고 살래.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신 김치처럼 코가 시큰거렸다.
울어요?
- 에이 아니야.
왜 그래요…
- 아이 아니야.
장난처럼 말하고 가만히 할 일을 하는데 혼자서 정말 콧물이 찼다. 콧물 혼자서, 자기 혼자서 그랬다. 괜한 콧물을 훌쩍거리니까. 속도 모르는 개구쟁이 전도사가 넘어가지 않고 우냐고 얄궂게 묻는다. 한참 어린 전도사 동생한테 놀림을 당할 위기였다. 괜히 말없이 하던 일들에 더욱 집중하려 애썼다.
주일날 세례 요한처럼 ‘정말 교회’를 찾아 강북에서 강서로, 다시 강동으로 헤메고 다닌다고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하다 친한 동생네 자취집에서 먹은 전라도 김치 얘기를 하게 됐다. 담근 김치 먹어본 지가 너무 오래 됐다고. 학교 동생네 집에서 사골국에 전라도 김치를 먹다가 깨달았다고. 나는 그동안 뭘 먹고 다닌 거지, 잊었던 무언가를 깨달았다고. 아련히 무언가 그리워졌다고.
너무 힘들고 지치고 외로웠다가 오랜만에 정들었던 교회의 동네를 찾았던 주일밤이었고. 못내 집으로 향하지 못해 대학 동생네 가서 진탕 밤새도록 옛날 얘기를 하며 놀다 어떻게 잠든지도 모르게 잠들었고. 느지막이 일어나 사골국을 한 입, 작은 입에 쑤셔넣고, 무심코 김치를 한 줄기 집어 연이어 입에 넣었다.
우걱우걱.. 오물오물… 우걱….. 우걱…. 우걱..
- 이거 어머니가 하신거야?
네.
- 와, 어쩐지. 진하고 다르다. 와.. 그래. 이런 게 집 김치지. 시제품 반찬은 이상하게 이런 맛이 않나. 아무리 전라도 아줌마가 하는 반찬집 반찬이라도 이상하게, 사먹는 반찬은 다.. 맛이 없어. 맛있는데, 맛이 없어. 이거 먹어보니까 알겠다. 맨날 중국 맛 김치만 먹고, 마트 종가집 김치만 먹고. 다 집 김치랑 한참 달라. 나는 그동안 뭘 먹고 다닌 거지? 그러고는 김치 하나를 더 집어서 사골국에 말은 밥을 한 숟가락 푹 떠서 올려 한입에 넣고 우걱우걱 씹어먹었다.
달라. 집 김치는 달라.
맨날 커피만 먹고 다녔다. 맥도날드만 먹고. 통조림 햄만 먹고. 과자 뿌스래기만 먹고. 내가 그리워하는 무언가는 커피 아래, 맥도날드 아래, 스팸 아래 꾹꾹 눌려있다가 그렇게 뜬금없이, 불쑥 솟아오르곤 했다. 부글부글 끓는 휴화산처럼 쉬고 있다가, 눈물 한 방울만 떨어져도, 신 김치 하나만 떨어져도 오십 미터를 솟구쳐 오르는 마그마처럼 펄펄 끓는 그리움이 흐르고 있었고. 나는 그걸 사랑이라고, 집 김치라고 불러본 것이다. 할머니 김치라고. 전라도 김치라고. 제일 중요한 한 단어만 빼고 다 말해보는 것이다.
에이 아니야. 아이 아니야. 괜히 딴청을 하며 그 뜨거운 걸, 불 같은 걸 꾹 삼킨 것이다.
십 분만 기다려. 놀리던 아이와 친구는 나를 집까지 바라다 주고 좌석을 뒤로 젖히고 누워 코를 골며 자다가, 가방만 던져놓고 분주하게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연유와 아삭한 바나나를 쟁반에 담아 간 사이 제 갈 길을 가버렸다. 준비되길 기다리지 않는다. 시간도, 아무것도 나를 기다리지 않는다. 다 떠나면 신 김치같은 시큰함만 남을까.
그리고 생각했다. 신 것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