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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비탕

누구에게나 ‘인생음식’은 있다.

by 권호원

어떤 음식을 좋아해? 보신탕 먹어봤어? 염소탕은? 진짜 좋다던데~ 아니 나는 별로~ 어릴적엔 들을수 없는 이야기인데 요즘들어 입짧은 나를 놀려먹으려는 선배들의 이야기이다. 못 먹는 음식에 대한 건 너무 많다. 너무 많이 나온다. 어릴적엔 ‘너 그거 먹어봤어?’ ‘사탕 먹어봤어? 초콜렛 먹어봤어? 마카롱 먹어봤어? 갈비탕 먹어봤어? 돈가스 먹어봤어? 스테이크 먹어봤어? 킹크랩 먹어봤어? 랍스터 먹어봤어’ 이야기는 이렇게 이어진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선, ‘파를 왜 골라내?’ ‘마늘 싫어하나봐?’ ‘매운거 못 먹어요?’ 이런 질문들을 많이 받는다. 식당에 앉으면, 사람 수대로 물컵을 놓고, 수저를 깔고 기다린다. 기다린 이후에 음식이 나오면 말들이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할까 고민해봤다. ‘어색함’을 깨려는 시도와 ‘호기심’과 ‘신기함’ 정도겠다. 정말 궁금할수도 있고, 자리에 앉자마자 물컵과 수저부터 배치하는 것과 같은 ‘그냥 반복되는 행위’일 것이다. ‘왜 파를 먹지 않느냐고, 마늘은 또 왜?’

가끔 엄마와 외식 메뉴로 고민을 한다. 한결같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뭐, 맛있는거 없을까?’ 아빠가 한번, 엄마가 한번, 번갈아가면서 맛있는 음식을 찾기 위해서 노력한다. 하지만, 결론은 ‘우리가 맛있는 것을 너무 많이 먹어봐서, 이젠 뭘 먹어도 맛있는게 없을 것 같아. 다만, 배가 고프면 뭐든 다 맛있는 것 같아.’ 그래 맞다. 시장이 반찬이다. 가장 맛있는 반찬이고, 배고플때는 모든 것이 다 맛있다. 하지만 진짜 맛있는 음식과 맛없는 음식은 따로 있다.

아빠가 먹어본 가장 맛있었던 음식은, ‘갈비탕’이었다. 아직도 그 갈비탕의 맛을 잊을수가 없다. 국민학교 2학년때였다. 정확히 기억난다. 2학년 여름방학이라, 부산 할아버지 댁에 가기 위해 가던 중이었다. 마침 우리 집에서 제사가 있었기 때문에 부산 할아버지는 우리 집에 잠시 머무르셨다. 아버지의 아버지, 즉 할아버지의 동생이셨다.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나서 부산 할아버지는 아버지의 실질적인 아버지 역할을 해주시는 등 실제로 나는 부산 할아버지를 할아버지로 믿고 살 정도였다. 그래서 국민학교 방학엔 부산에 일주일이나 열흘정도씩은 가 있었다. 어김없이 방학을 맞은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 부산으로 향했다. 예나 지금이나 이동수단은 승용차와 버스, 그리고 기차 정도가 있겠다. 바로가는 기차와 버스가 있긴 했지만, 버스로 안동에서 부산을 간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좁은 버스, 그리고 나는 4학년때까지는 멀미를 자주 하는 편이었다. 멀미 때문에 애먹은 적이 많다. (술 배우던 시절, 왜 이리 많이 토했는지.. 그더라가 멀미가 딱 멎은 것처럼, 술 마시고 토하는 것이 사라졌다) 그래서 안동에서 동대구역을 향해 버스 (한시간 정도 버스는 괜찮다) 다시 동대구역에서 부산까지는 기차를 타는 것으로 결정했다. 부산 할아버지는 지금도 정정하시지만, 그때는 정말 멋진 분이셨다. 버버리에서 나오는 바바리코트와 중절모, 그리고 서류 가방을 늘 챙기시는 그야말로 ‘꽃 할배’의 모습이셨다. 바바리에 묻어있는 아주 옅은 담배냄새는 ‘거부감, 역겨움’이라기 보다는 ‘멋스러움’에 가깝게 느껴졌다. 그리고 반바지에 샌들을 신은 또래보다 키가 크지만 9살 손자가 동대구역에 도착했다. 식당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기차역 대합실 곁에 있는 ‘갈비탕, 돈까스, 제육덮밥, 오징어덮밥, 된장찌개, 김치찌개 등’을 판매하는 손맛좋은 식당이었다. 지금은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 대합실에 있는 식당에서 갈비탕은 꺼리는 메뉴다. 실제 갈비탕을 그 가게에서 하는건지, 갈비탕 전문점에서도 공간과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갈비탕을 직접 끓이지 않고, 반제품을 데워주는 경우가 많다던지의 이유로 ‘먹어야할 음식이라기 보다는 굳이 거기서 갈비탕을 먹어?에 가까운 음식이 바로 갈비탕’이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권유에 나는 난생처음 갈비탕을 먹었다. 지금도 입이 길지 않은 편이라서 처음 먹는 음식에는 주저함이 있다. 맛있으니까 먹어봐, 아니 ‘갈비탕 먹어봤나? 맛있다’하는 할아버지의 말을 그냥 믿었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검정색 뚝배기 안에 부글부글 끓고 있는 육수, 거기에 빠져있는 뼈에 붙은 고기. 보글보글 끓는 육수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여남은개의 파조각들. 본능적으로, ‘파를 골라내서 안먹는 방향으로 가야겠다. 밥이랑 말아서 후루룩 넘겨버려야겠다’고 먹는 전략을 세웠다. 그러면서 할아버지 드시는 모습을 따라하려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상대방을 따라하면 상대방이 거부감을 감출뿐만 아니라, 매너나 예의 에티켓이 없다는 얘기를 피할수 있다. 할아버지따라 국물을 한숟갈 떠 먹어본 순간. 그 순간까지만 기억난다. 그 이후에 무슨일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머리속이 하얘졌고, 그때부터 정말 신나게 맛있게 먹었던 것 같다. 내 인생 최고의 음식이 바로 ‘동대구역 갈비탕’이다. 배가 고프긴했지만, 정말 맛있는 음식이었다. 중국에는 말보다 많은 음식이 있다고 한다. 모든 중국말은 사용할수 있지만, 중국의 모든 음식은 맛 볼수 없다는 말이 있다. 한국 음식은 집집마다 조리법이 달라서, 음식의 숫자가 가정의 숫자라고 한다. 영국음식과 미국음식은 같은 레시피를 사용한다면, 우리집의 된장찌개와 옆집 된장찌개, 아랫집 된장찌개의 맛이 다르다. 된장맛과 첨가하는 재료, 그리고 온도와 조리시간마져 다르기 때문에 인공지능도 파악하지 못할 다양한 음식의 가짓수가 생긴다.

할아버지께서는 동대구역의 갈비탕을 기억하실까? 그해 여름 부산에서 다양한 일들이 있었다. 할아버지댁에서 아끼는 ‘수석 작품’을 실수로 넘겨뜨린 일, 수석이 넘어지면서 오른쪽 엄지발가락을 찧은 일, 많이 놀라셨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 기억속에서 가장 오래 남는건 ‘갈비탕’이다. 너무 맛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연인이 생기면, 아들이나 딸이 생기면, 부모님을 모시고 나중에 꼭 가봐야겠다고 다짐했다. 10대가 지나고, 20대가 지나면서, 동대구역에 갈수 있는 시간과 돈, 그리고 연인과 자녀, 부모님 모든 조건들을 갖췄지만 여태 실천을 못 했다. ‘그렇게 맛있지 않을거야, 처음이니까 그랬을거야’ 그렇다. 기억속에서 간직될 인생 갈비탕이었다.

인생 음식은 ‘새로운 시도’에서 시작된다. 요즘 즐겨먹는 음식을 보면, 인생 음식보다는 무난한 음식이 될 확률이 높다. ‘소고기 볶음 고추장, 삼겹살, 미역국, 카레, 제육볶음, 쇠고기볶음, 매운 쥐포, 계란 후라이, 피자, 치킨, 라면, 자장면, 탕수육, 갈비탕, 육개장, 곰국, 국수, 냉면, 돈가스, 생선가스, 라뽁이, 김밥, 만두 등’ 인생 음식 후보들이 마음만 먹으면 30분 이내 먹을수 있다. (엄마 아빠의 음식 솜씨와 배달, 외식 자본 등이 있다) 아빠의 인생음식은 ‘처음, 기다림, 배고픔’이었다면, 너희들의 인생음식은 무엇일지 궁금하다. 육개장 먹으면서 골라내는 파, 갈비탕에서 걷어내는 파, 삼겹살에서 잘라내는 ‘지방’, 김밥에서 걷어내는 ‘오이, 당근과 야채들’도 인생 음식 후보가 될 수 있다. 골라내지 말고, 의미와 재미를 담으면 건강과 영양도 챙기고 인생음식도 만들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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