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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면 Apr 28. 2024

02. 응급실

2022/10/00


평소처럼 도서관에서 노트북으로 일하던 중 전화가 왔다. 엄마가 어딜 갔다 오면서 택시를 타고 집 앞에 내렸는데 도저히 일어설 수가 없다고. 서둘러 짐을 챙겨 엄마네로 향했다. 엄마는 아파트 입구 앞 보도블록 턱에 앉아 있었다. 앉아 있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왜 이러느냐 무슨 일이냐 물었지만 제대로 답하지도 못했다. 부축해 일으켜 봤지만 역부족이었다. 엄마는 몸을 가눌 수 없어 자꾸만 누우려고 했다.

한참 씨름한 끝에 겨우겨우 아파트 건물 안까진 들어올 수 있었다. 계단 두 개만 올라서면 엘리베이터가 코앞이었다. 엄마는 그대로 바닥에 누워 구토했다. 업을 수만 있다면. 다시 그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업었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내가 다치는 것쯤이야 문제가 아니었다. 대학생 때 함께 걷다가 발을 헛디딘 엄마가 무릎을 찧었던 기억이 났다. 어리고 건강한 사람은 멍조차 들지 않았을 가벼운 일이었지만 바지를 걷어 올리고 드러난 엄마 무릎은 심하게 살이 찢어져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너무 놀란 나는 당장 119를 부르고 어떡해, 어떡해 연발하며 발만 동동 굴렀었다. 어린 시절부터 수십 번 구급차를 타고 실려 가는 모습을 보고, 때로는 그 안에 같이 타고 가기도 했지만 엄마의 몸이 그렇게 약하단 걸 그때 처음 실감했다. 만약 업힌 채로 넘어져 머리라도 바닥에 부딪히면…….

나는 아빠한테 전화해 상황을 설명했다. 둘이라면 어떻게든 할 수 있겠지. 아빠가 도착하기 전, 1층에 사시는 아저씨 한 분이 문을 열고 나왔다. 엄마는 소리쳐 그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아저씨는 엄마를 업고 5층 집까지 가 주셨다. 집에는 치매인 외할머니가 계셨다. 누워 쉬면 괜찮아질 거라던 엄마는 몇 번 더 구토한 뒤에야 119를 부르라고 했다. 구급대원들의 도움으로 엄마가 베드에 실려 나가는 와중이었다. 치매로 쉴 새 없이 두서없는 말을 하던 외할머니가 손뼉을 치며 웃었다. 나는 그 순간이 너무 끔찍해 그대로 사라지고 싶었다. 아니, 할머니를 다그치고 싶었다. 할머니, 지금 엄마가 많이 아파요. 웃지 마요. 웃으면 안 돼요. 그만하세요.

근방에서 제일 큰 종합병원으로 이송된 엄마는 응급실로 들어갔다. 코로나로 응급실엔 보호자는 한 명만 함께할 수 있었고 그나마도 제한 시간이 있었다. 병원의 안내가 내려오기까지 아빠와 대여섯 시간을 대기했다. 긴 기다림 끝에 입원 절차를 밟고 막내 외삼촌에게 전화했다. 외할머니를 보살펴 줄 사람이 필요했다.

“예, 삼촌. 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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