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4형제 중 맏이다. 아래로 여동생 하나, 남동생 둘이 있다.
외할머니 문제를 의논할 사람은 막내 외삼촌뿐이었다. 다른 두 사람은 선택지에 없었다. 한 사람은 먼 외국에 살고 있었고, 또 한 사람은 몇 년 전 같은 문제로 감정이 상한 일이 있었으니까.
막내 외삼촌은 서너 번 만에 내 전화를 받았다. 대강 상황을 요약해 설명했다. 엄마가 입원했고, 당분간 외할머니를 돌볼 사람이 필요하다고. 내심 기대했다. 당장 차를 몰고 와 할머니를 모셔 갈지도 모른다고. 그때까지만 해도 엄마의 입원 기간이 그리 길지 않으리라 여겼기에 희망은 더욱 컸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도, 아빠도 외할머니를 맡기 부담스러웠다. 내 평생 외할머니는 5분도 함께 있기 힘든 존재였다. 비겁한 핑곗거리에 지나지 않은 여러 이유를 대며 합리화하기 바빴다. 우리보다 경제력이나 환경도 훨씬 나은 외삼촌이 왜 나서 주지 않는지 탓하기만 했다.
모두의 회피 속에 시간이 흘렀고, 막내 외삼촌은 다른 해법을 찾았다. 오전까지 근무하는 요양 보호사분에게 웃돈을 얹어 주고 저녁 6-7시쯤까지 돌봄을 부탁한 것이다. 본인도 2-3일에 한 번씩 찾아갈 테니 내게 가끔 들여다봐 주라는 말을 덧붙였다. 발칙하게도 그제야 안도감이 들었다. 내가 외할머니를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구나. 일을 마치고 간식거리를 사서 찾아가면 외할머니는 대체로 안정되어 보였다. 다행이었다.
외삼촌과 내가 외할머니를 보러 온 때가 겹쳤던 날이었다.
“쟤 너무 이뻐지지 않았니? 시집은 언제 갈래?”
외할머니는 미소를 걸치고 내게 그렇게 말했다. 당신 손녀가 얼마나 이기적인 선택을 했는지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