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면 Apr 21. 2024

01. 전조

2022/10/24

전날 엄마가 샤브샤브가 먹고 싶다고 카톡을 보냈다.

그때쯤 우리 가족은 모두 따로 살고 있었고, 거의 매주 주말이나 월요일 날 만나서 점심을 먹곤 했다.

11시 조금 넘어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갔다.

도착하고 보니 엄마가 이제 일어났다며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가끔 있던 일이기에 아빠와 먼저 식당에 자리 잡고 주문한 뒤 엄마를 기다렸다.

음식이 나오고 얼마나 기다렸을까. 엄마가 입구로 데리러 나오라고 했다.

아빠가 간 뒤에도 한참을 오지 않았다.

나는 이상하다 싶은 한편 짜증이 났다.

채소만 의미 없이 뒤적이고 있을 때 엄마가 도착했다. 아빠한테 부축받은 채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몸이 안 좋았다. 도대체 저런 상태로 어떻게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화가 폭발해 소리쳤다.

“몸이 아프면 아프다고 얘길 하고 나오지 말아야지!”

엄마는 다리 수술을 여러 번 하여 잘 걷지 못해 나라에서 지원해 준 전동차를 타고 다녔다.

까딱하다 교통사고가 나면 어떡하려고…….

이까짓 점심 약속이 뭐라고.

그전에 한 번, 단둘이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엄마가 못 나온 적이 있었다.

기분 상한 나는 그때도 불같이 화를 냈었다.

엄마가 아직도 그 일이 마음에 걸려 악착같이 나온 것 같아 더 화가 났다. 나 스스로에게.

그까짓 점심 약속이 대체 뭐라고.

젓가락 들 힘도 없고 입맛도 없어 보이는 엄마에게 부러 고기며 채소며 잔뜩 얹어 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야 하는데 엄마는 여전히 혼자 힘으론 서지 못했다.

아빠와 내가 양쪽에서 부축한 채로 천천히 걸었다.

내가 건장한 사내자식이었다면 훌쩍 업고 날아갔을 텐데. 그런 생각만 들었다.

엄마는 몇 걸음 걷다가도 금방 주저앉았다.

“저기 앞 카페에서 잠깐 앉았다 가자.”

지치긴 매한가지였을 아빠가 제안했다.

나는 황당한 답변을 내놨다.

“저기 커피 안 팔아.”

사실 이용해 본 적 없는 곳이었다. 추로스 전문점이라는 것밖엔 몰랐다.

아빠는 주위 사람이 다 쳐다보도록 큰 소리로 화를 냈다.

“안 팔긴 왜 안 팔아. 뭐라도 사서 앉아 있으면 되지!”

옳은 말이었지만 갑작스레 소리치는 아빠가 이해되지 않았다.

머릿속이 까맣게 물들었다. 이게 모두 나 때문이라고 탓하는 것처럼 들렸다.

한쪽 어깨에 메고 있던 엄마 가방을 휘둘러 바닥에 내리쳤다.

뒤도 안 돌아보고 혼자 그 자리를 떠났다.

몸과 마음이 덜덜 떨렸다. 무슨 정신으로 집까지 왔는지 알 수 없었다.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다. 아빠가 끝없이 원망스러웠다.

그날 저녁, 엄마한테서 미안하다고 카톡이 왔다.

너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욕을 한 바가지 퍼부어도 모자랄 판에.

내 마음은 더 처참해졌다. 이토록 못난 자식새끼라니.

그때는 몰랐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그토록 짧을 줄은.



이전 01화 00. 좋은 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