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천역에서 수도국산을 향해 걸으며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고향을 찾아가고자 하는 여정은 어느새 나의 발걸음을 종종거리게 만들어 버렸다. 저 앞에 보이는 동인천역의 역사를 바라보며 그 역사마저 없던 시절을 상상한다. 전철역으로 서울과 연결되는 것만으로 서울과 인천의 커다란 연결고리를 가졌던 장소. 오랫동안 인천의 중심지였던 그곳에서 나의 고향과도 같은 장소를 가기 위해 나름 산 넘고 물 건너는 약간의 통과의례 같은 장소를 지나게 된다. 동인천역에는 역을 가로지르는 지하상가가 있다. 중앙지하상가라고 일컫던 그곳은 양 옆에 상점들이 줄지어 있었고 그 가운데는 소위 양키시장이라고 일컫는 미국에서 나온 다양한 초콜릿과 과자 등을 파는 매장이 시장 내 한가운데와 양쪽에 늘어서 있었다. 그 아주머니들은 어른들에게 듣기를 달러를 환전해 준다고 했다. 그래서 소위 양키시장이라는 이름이 붙은 장소기도 했다. 물론 미국 과자와 초콜릿 등을 팔았으며 공식적인 이름은 중앙지하상가였다. 지금도 지나고 보니 그 장소의 이름은 구 지하상가라고 되어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 지하상가를 지나는 길은 마치 새로운 문명의 포털을 지나는 것과 흡사했다. 내가 살던 후미진 산동네를 지나 이곳을 지나고 나면 새로운 문명과 맞닿는 전철역이 있고 그 전철역에서 기차를 타면 새로운 문명세계로 나를 이끌어 주는 지하철 1호선이 시간에 따라 지나고 있었다. 항구 문명의 원천인 인천역을 지나 동인천 역에 닿으면 이곳은 새로운 문명이 들어와 지역적으로 새롭게 꽃을 피우는 장소와 같았다. 당시에는 역사가 크게 세워져 있지 않았기에 역 앞 지하상가는 새로운 문물이 선을 보이는 기나긴 통로였다.
이 지하상가를 지나는 길은 마치 새로운 문명의 포털을 지나는 것과 흡사했다
주말이나 휴일에 부모님과 함께 이 길을 걸으며 새로운 옷이라도 사는 날이면 참으로 신기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 지하상가는 인천의 명동이라고 할 수 있는 신포동까지 이어져 있었고 그곳을 나오면 번화한 옷가게와 브랜드들의 새로운 전시장이 늘어져 있었다. 그 위를 지나 일본의 적산가옥과 자유공원까지의 길이 항구 쪽으로 쭉 이어져 있었다. 지금은 인천 아트플랫폼이 되어러빈 창고들과 중구청 주변의 일본식 거리로 특화되어 있었지만 그곳까지 재생의 손길이 미치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암튼 문명의 길을 연결하는 터널인 중앙지하상가는 바닥이 흙으로 되어 울퉁불퉁하던 시절이었고 그 흙바닥의 굴곡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것이 신기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지하상가를 나오면 본격적으로 중앙시장이다. 양 옆으로 다양한 설비 및 시장들이 늘어선 가게가 엄청나게 많은 상점가가 이어져 있었고 그 길을 지나면 배다리라는 특이한 지명의 장소에 닿았다. 그 배다리는 교통의 요지다운 사거리 길이었는데 이곳저곳을 연결하는 다양한 길로 이어져 있었다.
옛적에는 그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배들이 지날 수 있도록 들어 올리는 도개교가 있어 배다리라는 지명을 얻게 됐다고 하는데 어린 시절의 나는 그것의 출처를 따져 볼만큼 똑똑하지도 않았고 아무런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사는 산동네의 어린아이에게는 모든 것이 그대로 신기한 세상이었다.
암튼 그 지하상가를 나와 큰길로 들어서면 길가에 아주 중요한 극장이 하나 있었다. 지금은 없어져 버린 곳이지만 중국 영화이긴 한데 신선들이 나와 싸우는 영화로 봉신연의 정도의 제목과 내용을 담고 있었다. 아무런 기억이 없는 그 시대의 기억 속에 유독 그 영화와 영화관이 생각나는 것을 보면 매우 인상적인 영화였던 모양이다. 그 영화관과는 달리 큰길앞에는 아직도 미림극장이라는 이름 그대로 영화관이 남아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감개무량하기 그지없다. 추억극장이라는 이름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옛적에는 그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배들이 지날 수 있도록 들어 올리는 도개교가 있어 배다리라는 지명을 얻게 됐다고 하는데
모든 기억들은 이제 동네로 들어가는 입구에 와 닿는다. 미림극장의 건너편으로 들어가는 시장길과 함께 자그마한 입구가 생각나지만 그 길은 너무 복잡해 생략하고 뚜렷이 기억하고 있는 학교 옆길을 택하기로 한다. 이 길을 조금만 더 지나면 내가 5년을 보낸 국민학교인 송림국민학교가 나온다. 비록 졸업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 학교에서 초등시절의 대부분을 보냈으니 졸업학교는 달라도 나는 이 학교를 졸업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늘 생각하고 있다. 학교를 항해 가는 길 내내 공사판의 커다란 비계가 세우져 있어 눈앞에 아른거리는 거리의 모습을 볼 수 없다.
공사판 장막으로 가리어진 한 중간에 공사차량이 지나는 입구에 공사차를 안내하는 분이 나와 덤프트럭과 행인들의 출입을 조절하고 있다. 힐긋 안을 들여다보는 순간 내 마음은 얼음처럼 얼어붙고 말았다. 공사판 안내자가 빨리 자리를 비키라고 말하고 있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멍청이 서서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외면하듯 공사현장을 벗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은 이미 무엇을 말할 수도 없는 상태에 다 달았다. 이윽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내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한다. 슬픔이 가슴 한가득이다. 혹시나 하며 걸음을 더 걸어보지만 공사판의 펜스는 내가 찾아가는 학교의 정문까지 이어져 있었다.
송림국민학교. 그곳에 이토록 오고 싶었는데 이미 공사판으로 어지럽기 그지없고 그전에 보아버린 공사판의 모습에 나의 모든 추억은 내 기억 속에서만 남아있음을 알게 됐다.
겉으로 보이는 약간의 눈물이야 어찌 막을 수 있었지만 내 몸을 천근만근 무게로 짓누르는 후회는 어쩔 수 없음을 알게 됐다
내 눈에는 도로에서부터 내가 살던 모든 지역과 그 위쪽의 모든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산동네의 옛날 집들을 헐어 버린 채 비스듬히 흙만 남아있는 넓은 공터만이 시야를 가득 채울 뿐이다. 그 안에는 덤프 트럭이 수도 없이 지나다니고 있었고 포클레인과 여타 중장비들이 새로운 아파트 단지를 세우기 위해 연신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아! 내가 이것을 보려고 42년을 기다려 왔던가."
고향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기까지 이토록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다니...
그 이후로 배다리의 책거리나 문구거리 등 다양한 옛 거리들을 거닐었지만 더 이상 내 몸에서는 추억에 대한 그리움으로 설레는 마음이 먼 구석을 찾아 자그마한 검은 흔적처럼 내 몸속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어져 버렸다.
고향을 잃어버렸다는 서러움이 계속 슬픔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약간의 눈물이야 어찌 막을 수 있었지만 내 몸을 천근만근 무게로 짓누르는 후회는 어쩔 수 없음을 알게 됐다. 시간이 이토록 무거울 줄이야...
다음 전철역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며 도시가 발전하고 쇠락해 가는 모습을 영혼없이 바라본다. 나도 모르게 시간에 묻혀 보내버린 어린 시절의 기억과 새로움을 여전히 추구하는 우리네 도시 문명에 대해 이중적인 느낌이 계속 맴돈다. 나 역시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났으면서 이곳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 이기심은 무엇인지.
고향이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야속함과 충격은 가시지 않았다.
다음 약속 장소를 향해 총총걸음으로 장소를 떠난다. 아마도 오랫동안 이곳을 찾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