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음은 주중과 주말을 가리지 않는다. 죽음에는 역시 순서가 없다. 나의 순서는 언제쯤일까? 이런 이야기하는 거 부모님이 아신다면 어이없어하실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본의 아니게 죽음의 축제를 맞이하는 나이가 됐다. 중년이 되고 나니 수도 없이 많은 관혼상제를 맞이하지만 무엇보다는 상으로 인한 초대가 너무나 잦다. 짜증이 난다.
순서에도 맞지않고 예고도 없이 오는 경우도 많으니 그로인한 충격이 여간이 아니다. 중년의 시절에는 그에 대비한 훈련이 필요하다. 아직 겪지 않은 경우도 있고 일찍 겪은 사람들도 있지만 모든 죽음의 축제를 맞이하는 순리상 가장 큰 일은 부모님을 보내드리는 일이다. 언젠가 헤어질 것이라는 걸 잘 알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현실로 닥치는 일은 어지간해서는 감당하기 힘든 차이가 난다.
어머니를 먼저 보낸지 20년이 넘었다. 아이 돌을 맞고 4일후에 가셨고 아이가 이미 23살이 됐으니 20년이 지난셈이다. 사실 요즘은 산소에도 거의 찾아가지 않지만 초반의 충격은 뭐라고 말로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천붕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말이 아닌 것을 그때 알았다. 반년 가까이 아무일도 할 수 없었고 이후로도 오랫동안 후유증은 내 삶의 너무나 많은 부분을 지배했고 그로인한 우울증 역시 한참을 지속했던 기억이 난다. 아직 아버님이 살아계시니 언제고 또 그같은 일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걱정이 먼저 앞선다. 하지만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요즘의 걱정은 아버님의 건강만이 아니다. 물론 90이 되신 아버지 걱정을 하는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니지만 그보다는 내가 먼저 가는 일들이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중년이 되면 자식과 아들간에도 그닥 순서가 정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되면 걱정보다는 공포가 앞선다. 혹시라도 자식을 먼저 보내면 부모는 어떻게 살아갈까.
세상에는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뜨는 자식이 꽤나 많다. 자연사가 아닌 사고사로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회적으로 큰 사고가 날 경우 그들의 부모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터지지만 기사거리가 되는 사건 말고 내 주변을 둘러보다보면 그 감도는 더 가슴을 저미게 하고 칼날처럼 아프다. 근데 중년이 되면 그 우려가 현실감을 얻어가며 하루하루를 괴롭힌다.
어찌됐든 죽음의 축제가 시작되는 시기임은 분명하다. 30대를 끝내고 40대에 접어들면 관혼상제의 행사중 직장 후배들이 결혼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결혼식에 초대되는 경우는 그다지 많은 편이 아니다. 친척중에서 조카뻘 되는 아이들이 안보는 사이에 훌쩍 성장해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경우를 접하고서는 깜짝 놀라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빈도는 역시 그다지 잦지 않다. 어느 순간 결혼 초대장보다 부음을 알리는 부고장이 늘어나고 있음을 알게된다. 누구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거나 장인장모가 돌아가셨다는 조금은 거리감이 있는 관계의 부음을 듣기 시작하다가 친척중에 나이 드신 분들이 세상을 등지는 경우도 생긴다. 큰아버지나 큰어머니들이 먼저 가시고 친구들 부모중에도 적지않은 부음 소식을 여기 저기서 듣는다.
무엇보다 근년들어 나와함께 어린시절을 보냈던 사촌형과 누나가 세상을 떠났다. 췌장암과 위암. 역시 암이다. 60을 전후해서 떠난 그들의 마지막을 나는 섬에 산다는 이유로 찾아가지 않았다. 어린 시절 한참을 함께 보냈던 분들이지만 가까이 보지 않아도 그들과의 이별로 인해 내 어린시절의 추억의 매우 큰 부분이 사라져버린 것을 알기에 혼자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너무 이르다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다. 큰 아버지의 경우 한해에 두명의 자식을 잃은 셈인데 어찌 지내실까.
크게 상관은 없을런지 모르지만 10대부터 2~30대까지 TV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만나보던 탤런트나 영화배우들이 어느날 덜컥 죽어버리는 경우 겪는 묘한 기분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분들이 알고 있을 탤런트중 김무생씨나 김자옥, 여운계,김영애 등 나보다는 나이가 많은 탤런트 들이 어느날 브라운관에서 사라지고 하나둘씩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리고는 나이가 많다고 느껴지지 않은 여자 탤런트들이 드라마의 나이든 어머니 역을 대신 맡고 나섰을때 '아, 내가 기대던 젊은 시절의 연예인들도 다 떠나가는 구나'하며 한시대를 같이 지냈던 사람들과 이별을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알고 지내던 분중 내가 어른으로 모시거나 선배로 여겼던 분들이 세상을 등지는 경우라면 가슴에 남는 공허함의 갈래가 조금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몇년전 제주도문화원장을 하시던 분이 세상을 떠났다. 물론 나이가 80을 넘으셨던 분이었기에 언제 세상을 떠나도 이상할일이 없는 나이이기는 하지만 몇달전까지 찾아가서 마을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도움을 요청하던 분의 부고를 덜컥 듣고나니 한동안 기분이 안정이 되질 않는다. 학교 선배도 아니고 동향도 아닌 내가 혼자서 장례식장을 찾아가니 상주가 어찌 왔는지 의아해한다. 간단하게 도움을 많이 받았노라 이야기하고는 개인적인 인연의 끈을 슬쩍 놓아드리고 온 기억이 난다. 준비가 안된 이별은 역시 어려운 법이다. 나름 친하게 지내던 분들중 전혀 뜻밖의 분들을 떠나 보내고 나니 사람의 관계란 역시 인력으로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50줄이 다되어 제주에 내려와서 새롭게 사람을 만나게되면 그 사람들과 깊은 정을 나눌 수 있는 경우는 별로없다. 아무래도 업무 관계가 되거나 친하게 지내더라도 간단한 안부를 묻는 정도가 일반적이다. 사실 새로운 장소에 적응하기 바뻐 다른 생각을 할 여력이 없는 상황에서 덜컥 그나마 친하게 지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내게 되면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된다.
5년전쯤이었을 게다.나름 형동생하며 친하게 지내던 분이 갑자기 내가 오는 것을 꺼려하신다. 몸이 안좋다고 하는데 이유는 물론 상태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게 자신의 몸상태를 이야기하는게 뭐 그리 달가웠겠는가 싶은 생각이 드는데 아마도 본인의 몸에 너무나 빨리 진행되는 질병에 대해 나에게는 알리기 싫었던 게다. 그렇다 해도 술도 같이 마시고 차도 함께 나누던 분에게서 한동안 연락이 없더니 몇달만에 메시지를 보내왔다.
" 이번 아버님의 장례식에 참석해주신 많은 분들께...." 아들 XX올림.
한동안 멍때림을 어찌 할 수 없어 나의 무심함과 이기적인 모습을 탓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나 힘들었다. 나는 그분의 마직막 순간에도 아무것도 알지 못했으니.
사람은 그렇게 가는가 보다. 근데 그 죽음의 축제가 이 나이가 되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다. 누구의 부모, 그리고는 하나 둘씩 늘어가는 친구들 혹은 선배나 후배 본인의 부고. 가끔은 진짜 받아보고 싶지 않은 친구 자식의 부고를 비롯해 나이와 상관없이 동시다발적으로 부고를 알려온다.
이중 자식을 보내는 부모의 심정에 대해서는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으련다. 젊은 시절 자식을 너무나 힘들게 보낸 친구를 보면서, 사회적으로 세월호라는 생각하기도 싫은 상황을 보면서 내 자신의 상황을 대입시키며 섬뜩하게 놀랬던 순간이 한두번이 아닌지라 그 이야기는 그만하련다.
요즘 들어 빈도가 잦아지는 경우가 본인들의 부고장이다. 물론 본인이 보냈을리야 없겠지만 앞으로 선배의 경우처럼 무심함의 경종을 울리며 들려오는 부음과 달리 너무나 갑작스러울때가 많다는 점이 여간 힘들고 사는 일에 대한 생각을 고쳐먹게 해준다.
한해전 전이었다. 자주 가는 갤러리에 들러 조각을 하는 사람을 만났다. 나름 중년의 삶에서 예술가로서 살아가는 길의 한 조각을 붙잡고자 전시기획을 해보겠노라고 조금씩 워밍업을 하던 차였다. 지인의 작업장을 고쳐주는 부지런함과 빠른 손놀림으로 인해 '참 일을 잘하는 구나'는 생각을 절로하게 만드는 이였다. 두어번을 만나다보니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고 내가 하고자 하는 21년의 전시기획과 향후 예술단체의 비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자신도 그 일에 동참하고자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때마침 임의단체에 참여하고자 서명을 받고 막 공고가 뜬 사업에 참여하는 명분을 삼아 자신의 이름도 그곳에 넣어주마 하고 헤어졌다.
그날밤 사업기획서를 열심히 쓰고는 참석예정자들의 이름을 집어넣었다. 12시경이었으나 피곤함을 잊고 1시가 다되도록 기획서를 마감하고 메일로 전송을 한 후 나름 뿌듯한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다음날도 년말이 다가오는 피곤함을 아는 듯 일은 밀려들었고 코로나19로 인한 막바지 사업을 쳐내기 위해 온 사회가 다들 정신없는 상태에 돌입해 있었다. 나 역시 그동안 밀려놓은 일을 마치느라 여념이 없는 와중에 카톡이 온다. 갤러리 주인이다.
"시간되면 통화가 가능할까요?"
이상한 분위기에 통화버튼을 누른다. 상대편은 울먹이며 뭐라 말을 잊지 못한다.
"저기 알지요. 그 친구. 조각하는 친구..."
"네.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나는 갤러리 주인이 개인적인 문제가 있거나 몸이 안좋은 상태겠거니 했다.
"그 친구 어제밤에 죽었어요."
"네? 뭐라구요? 어제까지 멀쩡하던 친구가 죽었다고요?"
믿기지 않은 이야기였지만 사실이었고 그날 오후 사실을 확인해본 바에 따르면 전날 밤 12시경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다.
사실 그와 만난지는 몇번 되지도 않았고 이야기를 심도깊게 나눠보지도 못했다. 다만 사람을 막 만나 서로에 대해 타진을 하던 단계에서 나는 예술가 한명을 새로운 작업의 협력자로 활용하면 좋겠다는 계산을 했고 열심히 기획서를 쓰고 있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빌어 칸을 메우는 순간 그는 어떤 이유로든 이 세상과 하직하고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너무나 괴롭고 죄책감이 마음을 짓누른다. 사람을 이용할 생각을 하고 있었던게다. 그 모든 것이 죽음이라는 현실앞에서 아무런 의미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신기루 같다는 것을 알면서도 순간적인 자신의 목적에 얽매여 한치앞도 가늠할 수 없는 인생을 살아간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살아있는한 주변의 죽음에서 괴롭고 죄책감을 느끼고 안타까움에 힘들어한다. 그런 순간들이 중년이 들면 밀물처럼 몰려든다. 거기에 덧붙여 내가 그 당사작 될 수 있다는 확률이 이전보다 확실히 높아지는 것이다.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하지만 확률이 높아지는 시대에 사는 나이다. 나 역시 암이라는 질병으로 순간적인 걱정을 안고산다. 바로 죽는 질병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죽음의 그늘에서 겨우 벗어난 것은 사실이다. 조금만 늦었으면 나 역시 호스피스 병동을 찾아 헤매고 있을 터였으니 말이다.
오랫만에 사람들은 만나는 일이 어떤때는 별로 반갑지 않다. 예전 동료를 만나면 늘 대화패턴이 비슷하니 말이다.
" 너 누구알지?"
젊은 시절의 대화였으면 '게 누구랑 결혼했대'라거나 '취직했대''유학갔대''애낳대' 등 생활과 관련된 주제를 두고 놀라운 표현의 대화를 나누었을 게다.
그런데 그 질문은 비슷한데 결론이 확연히 달라졌다.
"응. 왜?"
"지난달에 췌장암으로 죽었잖아"
"몇달전에 교통사고로 죽었잖아"
"1년전에 뇌종양으로 죽었잖아"
시기는 달라도 나오는 어미는 모두 같다. 죽었다는 내용이다.
얼마전 언론사 선배를 만나 함께 근무했던 시절의 선후배들을 물었을때도 마찬가지다.
누구는 췌장암으로 죽고, 누구는 위암으로 죽고, 누구는 림프종으로 죽고 등등...
결국 내가 아는 많은 사람이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이 세상과 하직하고 이별을 고하고 말았다. 그와의 기억들은 이제 나에게밖에 남지 않았다.
중년은 그래서 괴롭기도 하지만 마음을 비워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부질없음으로 한없이 처량해지고 디프레스 될수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삶의 연륜과 살아온 경험이 힘으로 남는 것이 아닐까싶다.
비록 죽음이 도처에 깔려 있어도 하루하루 힘을 내야 하는 이유는 살아있을 가능성에 대해 좀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며 소중한 시간임을 알게되기 때문이 아닐까.
하루하루를 어찌 살아야 할지 누가 답할 수 있겠는가마는 중년의 하루가 결코 삶의 빛으로만 반짝이지 않다는 사실을 이해해주면 좋겠다. 죽음의 축제를 매일 경험하지만 그 와중에 삶의 희열을 끝없이 추구하는 존재이기도 한 이유는 가능성을 알기 때문이다. 찰라라 할 지라도 환희의 빛이 들 수 있다는 기대를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이 소중하다는 것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