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더이상 생산적이지 않은 존재

by 너구리

업무 효율성이 형편없음을 느낀 때가 언제부터였던가. 5년 정도 되지 않았을까. 아니 10년은 족히 된 듯싶다. 진짜 언제부터였지. 암튼 업무의 효율성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장시간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뼈저린 현실이 되었다. 그럼 난 뭘 해야 할까. 이런 이유로 사회에서 중년이 되면 퇴직을 시키는 걸까. 평균수명을 근거로 앞으로 살날이 최소 30년 이상은 남았는데 더 늘어날 것을 생각하면 50년 가까이 살게 될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일할 수 있는 능력도 없으면서 어찌 먹고살지. 사회보장제도가 제대로 완비되지도 못했는데 앞으로 50년 가까이 정부가 나를 결코 먹여 살릴 수 있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국민연금은 언제 바닥날지 모른다는 협박성 예측이 난무하고 따로 저축해놓은 여유자금도 하나 없는데 앞으로 벌어먹으려면 일용직밖에 없는 상황에서 육체적 능력은 바닥을 향해 치달을 테고 정신적인 능력은 이렇게 형편없이 나빠지는데 어찌할까나. 이런 상상이 허망한 망상이나 공상과학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처절하게 현실적인 중년 남성의 입장에서는 코앞에 닥친 미래의 고민이다. 뭘 먹고살아야 부유하게 살지는 못하더라도 비루한 말년을 보내지 않을까.


자식들이 나를 모시며 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익히 서로가 잘 알고 있다. 자식도 나를 모시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나도 아들 녀석과 같이 살지 않겠다고 명확히 선을 그은 지 꽤나 됐다. 내 나이 또래의 대부분은 그렇게 살겠지. 생활비라도 조금 보태면 좋으련만 저 녀석이 자기 앞가림이나 제대로 하고 살아갈지도 모를 일인데 부모를 위해 경제적인 지원을 하라고 요구할만한 처지는 안될 것이다. 역으로 자식에게 집과 어려운 환경을 극복한 자산을 물려주지 않으면 앞으로 살길이 막막해질 것은 당연해 보이는데 말이다. 감히 자식이 내게 지원을 해줄 것이라고. 그런 건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다시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나는 더 이상 생산적이지 않은 나이다. 사회적으로도 40,50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 50,60이라고 쓰며 50대와 60대를 소위 한통속으로 표현하는 게 더 익숙한 사회풍토다. 그것은 나름 사회적으로 퇴물에 가까운 인물들이 모여사는 나이 때라는 점이다.

많은 중년들이 생산적이지 않고 효율적이지 않아서 회사에서 명퇴를 당하고 기존의 가족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기 일쑤다. 나도 그런 가능성을 족히 알고 있기에 어떻게 하면 내 말년을 잘 보낼지에 대한 고민이 나날이 늘어난다.

그러다 난 생각이다. 하루에 12시간을 일하면서 생활하고 주말도 없이 일을 하며 이루어낸 직장과 사업의 성과, 혹은 프로젝트를 접하는 방법을 바꾸면 어떨까. 한 달이면 할 수 있는 일을 3달 아니 6개월에 걸려서 일을 하면 될 것이고 육체에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하면 될 일이 아닌가. 그렇게 일을 하면서 이전처럼 월급을 받거나 돈을 벌지는 못하겠지만 작더라도 계속해서 받을 수 있다면 앞으로 남은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 될 텐데 업무의 효율성을 따지는 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젊어서부터 밤새서 일을 하고 주말이나 밤낮이 없이 필요한 경우 미친놈처럼 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뻑하면 밤을 새우는 작업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고 스스로 피곤에 절어도 당연히 그런 것이라고 여겼다. 일의 성격상 시간 외 수당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조차 잘 몰랐으니 어이가 없는 바보이기도 하다. 암튼 그렇게 30년을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이제는 아무리 애를 써도 그 시절의 에너지가 생기지 않고 5시간 6시간을 연속해서 일을 할 수 없게 되고 주말도 없이 일하거나 밤을 새우면 그 후유증에 죽을 듯 심한 고통을 겪고 있음을 알게 됐다. 방법이 없다. 일하는 패턴이나 방법을 바꾸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발전이나 성장을 위주로 하는 사회에서는 무엇보다 생산성 혹은 효율성이 중요한 덕목이다. 나 역시 우리 사회가 그 덕목을 제일로 생각하며 산업역군으로 치켜세우는 한복판에서 일을 했고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성장 위주의 사회가 되지 않았고 산업역군이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일을 하는 시대가 아닌 시대가 되었다.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사회라면 무엇하러 그토록 생산성을 중시하면서 일을 해야 할까.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이 생산성이 아니라 지속성이라는 생각으로 바꾸면 많은 것이 해결될 것임을 알게 됐다. 일을 급하게 하지 말자. 천천히 하면 될 것 아닌가. 그리고 나에게는 젊은 시절로 돌아가서 그때와 같이 할 수 있는 에너지는 없지만 그런 에너지가 어떻게 쓰이고 어떻게 덜 쓰게 할 수 있는지 실패하면서 배우지 않았던가. 뭐 이런 식으로 생각을 바꾸면 어떻겠는가 하고 자문하게 됐다.


중년이 되고 나니 성장이 주목적이 되지 않는 사회에서 축축 늘어져서 생산성이 없다는 이유로 조기 '팽'당하는 그런 사회구조에 굳이 수긍할 필요가 없어졌다. 지구력을 가지고 천천히 일을 하면 될 일이다. 평소보다 3분의 1만큼만 일하고 결과를 얻어내는 시간을 3배로 늘리면 된다. 대신 좀 더 완성도가 높고 안정적으로 일을 하면 될 일이다. 그리고 삶을 충분히 느끼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소통하면서 일을 하면 결과가 더 좋아질 것이라는 패럼다임의 변화를 생각하게 되었다.

중년은 일하는 패턴을 바꾸어야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해왔던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게 쉬엄쉬엄 일하는 버릇을 키우는 일이 중요한 덕목이 되었다. 오히려 삶의 지혜를 가지고 하나씩 풀어나가는 노력이라면 서투른 속도전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한때 전 세계의 박람회에 다니며 물건을 수입하기 위해 기웃거리던 시절이 있었다.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똑같은 제품을 만들어서 팔아도 그네들은 우리보다 3~4배 이상 비싼 가격으로 판매하는 자신감과 여유를 가지고 전시장을 다니면서 본 적이 있다. 대량생산을 하는 시스템으로 본다면 공장을 돌려서 원가를 한참 낮추는 제품이 훨씬 효율적이었는데 내가 만난 영국과 프랑스, 독일의 무역상들은 내가 추구하는 생각과 조금은 달리 자신들이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시간과 각 개인의 노력 자체를 인정하는 선에서 중요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었다. 비록 내가 원하는 제품이 아니어서 수입을 하지는 못했지만 지금이라면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제품의 가치를 더 돋보이게 하려 했는지를 충분히 알듯 하다.

세상이 많이 바뀌어가고 있으며 우리 사회도 그동안 알지 못하는 사이에 선진국의 반열에 야금야금 진입하고 있는 신세다. 머지않아 사회의 역동성은 꽤나 많이 사라질 것이고 어쩌면 국가 전체가 쇠락의 분위기를 맞이할 날이 얼마 안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아직 전체를 중시하고 효율성이 지배하는 시대를 고집하고 있다. 전체보다는 조금은 작은 조직과 개인적인 노력들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하나씩 하나씩 성취해가는 방법이 우리 사회의 미래를 담보하는 좋은 방법론일 수 있다. 공교롭게도 그 방법론의 최 적임자가 중년이 아닐까 싶다. 급격한 사회의 변화를 몸소 겪어왔다. 그러나 이제 그러라 해도 그리 할 수 없다. 젊은 시절을 보냈던 관습과 버릇을 버리기만 한다면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인생에서 얻어온 노하우와 불가피하게 열정을 쏟기 힘든 육체적 조건에 맞추어 좀 더 완성도 높은 일을 하나씩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생산성이나 효율성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아도 될 듯싶다. 더 이상 생산적이지 않은 존재가 되는 것이 어쩌면 좀 더 인간적이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인간사의 길에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 이제야 중후함이 어울리는 시대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중년은 그런 관점에서 용도를 찾을 시점이 됐고 해 보면 보이는 것이 달라질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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