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뿐 아니라 우리 시대의 중년들은 세 가지 선택길에 섰다. 꼰대로 늙어가느냐 아무 힘도 없이 무기력한 노인네가 되느냐 아니면 스승이 되느냐.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스승이 되는 일이야 쉬울 일이 아닌데 나머지는 그냥 놔두면 아주 자연스레 흘러갈 길이라서 더욱 조심스럽다. 나 역시 지금도 꼰대일 가능성도 높고 내 주변에는 내가 봐도 좀 심하다 싶은 꼰대가 지천이다. 그러지 않으면 아주 무기력한 노인네로 급변하는 사람들도 아주 많이 보인다.
꼰대의 기준은 뭘까? 특별한 기준이야 뭐가 있으려나. 무엇보다 자신의 기준으로 남을 재단하는 일이다. 특히 나 중년이 되면 저절로 꼰대가 되는 경우를 허다하게 본다.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면 신체적 능력은 물론 정신적 능력 또한 심각하게 쇠퇴하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들을 보고 우리는 꼰대라고 마냥 비난하거나 하지 않는다. 태극기 부대의 개념 없는 노인들 중에 여전히 꼰대라고 부를 사람들이야 많지만 그들도 나름 자신들의 기준이 있을 테니 뭐라 막 비난하기보다는 안된 인생이라는 생각을 먼저 불러일으킨다. 나에게는 그렇다.
내가 좀 더 걱정하는 중년의 꼰대는 사실 자신감에서 나오는 인간들이다. 뭔가 배웠다거나 자신이 자그마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인간들. 혹은 너무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스스로 자립한 소위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경우 꼰대라 할 만한 경우가 자주 드러난다. 애초에 잘나지도 못했는데 사회적인 성공도 하지 못한 사람들의 경우 꼰대 짓을 하게 될 경우 사회적인 외면이 바로 결과로 돌아오기에 오히려 꼰대스러운 행동을 해도 타인에게 대외적인 피폐함을 선사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냥 무시하거나 살짝 외면하거나 안 보면 될 일이다.
문제는 약간이나마 자신이 사회나 젊은 세대들을 대상으로 할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확신처럼 갖게 되는 인물들일 것이다. 나는 이런저런 어려움을 어렵게 극복하였으니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노하우가 있다거나 인생의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인간군상들을 보기 시작하면 걱정이 앞선다. 믿거나 말거나 누군가를 만나면 젊은 친구들이 다른 사람들을 향해 꼰대라는 말을 하는 경우를 자주 듣는다. 내가 봐도 영 미덥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이 옳다고 아랫사람 잡듯 혹은 예전의 종 부리듯 마구 다루는 경우를 볼 때마다 '에구구'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사실 젊은 세대들과 나름 소통을 하려고 하지만 가장 어려운 주제 중의 하나가 젠더 감성이기도 하고 예전식으로 사람들과의 벽을 쉽게 허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언제 어떤 말이 젊은 여성들을 자극하고 기분 나쁘게 하는지도 잘 모르겠거니와 어떤 단어를 사용할 때 그들에게 모멸감을 주는지는 더 헷갈린다. 나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단어들이었는데 그들에게는 자신들을 모멸하거나 무시하는 혹은 성문제를 건드리는 것으로 여기는지 도대체 기준을 잡기 힘들다. 그럴진대 그들을 데리고 '여자들은 이래야 한다'거나 '어디 여자가 그런 행동을 하냐'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내 또래 혹은 나보다 조금 나이 많은 사람들의 언사를 들을 때마다 '이크, 이러다 사달 나겠네'싶은 생각이 든다. 내가 비겁해서 사고를 일으키는 게 싫어서도겠지만 세대가 다르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해야 할 텐데 자꾸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지멋대로라고 느끼고 이를 기분 나쁘게 대응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은 것이 사실이다.
가끔 내 주위의 사람들과 우리는 꼰대가 되지 말자고 이야기 하지만 그게 곧 내가 꼰대가 아니라는 것을 보장하지는 않는 것이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두 번째로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성공(?)했다고 스스로 느끼는 부류의 인간들이 젊은 사람들에게 주는 충고에서 나는 꼰대의 본질을 본다.
"야, 그래서는 절대 안 되지."
"네가 사물과 바라보는 시각이 잘못됐지"
"그렇게 해봐라 평생 뭐가 되나?"
이런 말들이야 그러려니 넘어갈 수 있을 듯싶은데 결정적으로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어투가 나오기 시작하면 나는 스스로 얼굴이 화끈거린다. 굳이 술자리가 아니더라도 내 또래 혹은 주변 언저리의 인간들은 어른들이 자주 썼던 '왕년'이라는 말 대신 '우리 때는''80년대에는' 등등 자신의 경험담을 대부분 영웅담으로 뒤 바꿔치기하며 자신들의 용맹 무쌍함을 침 튀기며 강변하기 일쑤다. 그러고는 현재 혹은 앞에 앉아있는 젊은 사람들의 행태나 태도 등이 잘못됐음을 지적하기 시작하는데 자기 기준에 맞춰 남을 지적질 하기 시작하면 꼰대임이 분명하다는 내 지론에 한발 더 다가선 경우다.
확실히 이야기하건대 꼰대는 나이와 무관하다. 자신이 옳고 남이 그 기준에 틀리므로 이를 지적질해서 바로잡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진 사람들은 다 꼰대라고 보는 게 맞다. 근데 중년이 되면 이 같은 일들이 급격히 진행된다는데 문제가 심각해진다. 불과 몇년전만해도 굉장히 유연하고 자유로운 사고를 가졌던 인사들조차 오랜만에 만나면 자신이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됐다며 물불을 안 가리고 기존의 행태를 자신의 기준으로 몰아치기 시작한다. 그럴 때면 나는 웬만하면 그 사람을 내 마음속의 리스트에서 지우기 시작한다. 자신이 옳다는 강박관념이 강한 인간일수록 꼰대가 되는 시기는 빨라질 일이다. 이를 막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할까.
우리 사회에 스승이 없는 시대적 현상이 무엇보다 가슴 아프다. 사회적으로 정치인이 자신들의 입장을 반영해서 진영논리로 사안을 예단하는 일이 워낙 많다 보니 적절한 시각과 타협으로 사람들에게 안심을 시킬 스승이 있기를 바라지만 이미 우리 사회는 스승을 잃어버린 지 꽤나 오래됐다. 하물며 유신독재 시절의 박정희 조차도 함석헌 옹을 핍박하거나 그를 정치적으로 몰아세우지는 않은 채 사회의 어른으로 대접하기도 했다. 이후 문익환 목사라든가 김수환 추기경 등 평가야 다르더라도 사회의 스승으로서 역할을 했지만 이후 우리 사회는 진영논리와 그에 편승한 관종들이 SNS로 택도 없는 이야기와 가짜 뉴스를 유포시킬 뿐 사회를 통합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어른은 사실상 전무해진 것이 사실이다.
나는 중년의 갈래에서 꼰대가 되지 않는 일이 우선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세대를 생각하고 자신의 위치를 고민해야 꼰대의 길이라는 수렁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나이가 들면 육체적 능력의 쇠락만큼이나 지식의 영역에서도 현격하게 능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중년부터 더욱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라는 것을 너무나 뼈저리게 느낀다. 이런저런 상황을 죄다 종합해서 당시 상황에 가장 알맞은 판단과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고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기에 회사나 조직의 중요한 경영자의 자리에 중년들이 자리를 잡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식이 많아서가 아니라 적절한 조치와 과감한 결단 그리고 방향을 트는 지혜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나이 때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나이가 들면서 잔소리가 많아지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물꼬가 터지만 과거 이야기를 마치 무용담처럼 하는 버릇이 있다. 한 가지 사안이 주제가 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옛적 이야기를 끊임없이 뱉어낸다. 그러다 보면 일반적인 사람들은 지루해하며 계기를 만들어 끝나기를 기다리고 몇몇 용기 있는 사람들은 적당한 이유로 나의 이야기를 종결시키는 용기를 보인다. 그때에 이르러서야 내가 또 허튼짓을 하고 말았구나 하고 생각한다.
꼰대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은 중년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꼰대라고 판단되는 순간 그는 이후에 점차 외톨이로 늙어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육체의 능력이 쇠하고 꼰대가 되는 행동을 하게 되면서 우리는 스스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노인이 되는 것이다. 내가 노인을 폄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노인이라는 사람들은 육체적인 능력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이미 사회, 좁게 이야기하면 자신의 주변 인물들에 대한 영향력을 잃어버린 사람들인 셈이다.
누구나 어느 시점이 되면 노인이 될 것이다. 사회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성공가도를 걷지 못한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서 급격히 쇠퇴하고 노쇠해지는 것을 본다. 내 친구들 중 아직 내 나이지만 정신적으로 할아버지라고 이야기해도 좋을 만한 사람들이 가끔씩 보인다. 나는 그들을 볼 때마다 스스로 정신적으로 사회를 공부하고 사람들을 잘 대해야 한다는 생각을 떠올린다. 비록 사회적으로 스승의 역할은 하지 못한다 해도 최소한 삶의 자그마한 지혜라도 주변이나 내 후배들에게 자주가 아닌 가끔씩 넘겨줄 수 있는 나이가 되어야 중년의 쓸모에서 조금이라도 많은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다.
최소한 젊은 세대나 노인세대와 함께 소통하는 중년이 되고픈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야 나에게 이익이 된다. 소통하면서 살아야 외롭지 않은 노년을 맞을 것이고 함께 살아가는 허울 좋더라도 공동체의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으려나.
무엇보다도 꼰대가 되지 않는 중년을 우선 목표로 삼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