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나니 스스로 나는 결코 아니야 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일어난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됐다. 나는 그들에게 무엇이었을까. 내가 중년의 머리가 벗어진 아저씨로서 그들에게 멋진 남성상을 제공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들에게 어떤 사람이었을까. 사실 여러모로 이런 자문을 하게 되면 본인들에게 듣고 싶은 것이 많다. 좋은 남자였으면 좋으련만 그것은 내 꿈같은 희망이었을 것이고 최소한 좋은 상사였는지 아니면 즐거운 동료였는지 아니면 좋지도 즐겁지도 않은 아무것도 아닌 그냥 조직의 상사로서 자신들의 삶에 대해 적절히 간섭하고 아주 최악이 아닌 스트레스 요인이었는지,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악랄하고 의미없는 존재였는지가 궁금해진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게 어떤 것이든 지금의 나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데 왜 이제 와서 그딴 일들을 궁금해하는데라고 질문을 할 수도 있다. 어떤 질문을 하든 한번 일어난 호기심이 쉽게 사그라들지는 않는 터라 어떻게든 나의 중년을 되돌아본다는 의미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언젠가는 물어보고 말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흔히 하는 이야기로 사랑에도 먹이사슬이 있는 듯하고 사람들에게도 합이 맞지 않는 잘 어울리지 않는 관계가 존재한다. 다들 그렇지 않으려나.
30대 중반 얼떨결에 법인의 대표이사를 맡게 되어 회사라는 것을 직접 운영해야 하는 경험을 하게 됐다. 몇 명정도되는 작은 조직의 팀장이나 실장 같은 일은 맡아보았지만 회사를 대표하는 사장이라는 직함은 여간 어렵고 힘든 게 아니었다. 부담 또한 무지하게 컸다. 아이가 막 태어나던 시절이었는데 아이에 대한 정도 채 주지 못하고 매일 아침 7시면 사장이 먼저 출근해서 하루 동안 일을 어찌할까 사무실에 앉아 고민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2명의 여직원이 있었다. 연구원이라는 이름하에 학교는 다르지만 같은 전공의 대학원 졸업생들이었는데 그들이 대표이사인 내게 보여준 태도는 너무나도 달라 참으로 헷갈렸던 기억이 남아있다. 한 명은 사장으로서 내가 카리스마가 너무 없이 맘 좋은 아저씨처럼 너무 상냥하기에 업무의 스트레스를 전혀 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너무나 편하게 일할 수 있어서 좋았다는 평가를 여러 번 하곤 했다. 이와 달리 다른 한 명은 내가 옆에 다가가서 말만 걸어도 화들짝 놀라며 내가 너무 무섭다고 했다. 멀리서 내 모습만 봐도 바짝 긴장이 된다고 했으니 내가 두 사람에게 달리 대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평가가 너무나 극명하게 달라 나를 매우 헷갈리게 했던 기억이 난다.
사회 초년병 시절을 막 마치고 직장을 옮겨 현재 우리나라 최고의 대기업에서 잠시 의탁하며 일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너무나 자유롭게 일을 하면서 내가 하고픈 이야기를 쉽게 이야기하는 스타일이었다. 당시 임원실에서 업무를 보좌하는 2명의 비서가 있었는데 그들은 노골적은 아니지만 여러가지 경로를 통해 나에게 반감을 표시하곤 했다. 이런저런 술자리나 밥자리의 뒷얘기를 들어보면 내가 아주 부잣집 아들인듯한 인상과 행동으로 기분이 나쁘다거나 회사를 마치 취미생활로 다니는듯해 자신들의 처지와 너무 달라 나를 미워하고 보기 싫다는 입장을 간접적으로 전하곤 했다. 그 말을 듣고는 어이가 없었다. 이를 해명하려고 만나서 뭐가 문제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암튼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렇게 그 2명에게는 그다지 좋지 않았던 인상을 남기고 기업체가 아닌 어학연수를 가겠노라고 좋다는 대기업을 때려치우고는 외국으로 날아갔었다. 이후 꽤나 시간이 흐르고 그 직장의 OB모임에서 나는 2명으로부터 나에 대해 자신들이 오해를 했었다는 사과 아닌 사과를 들었다. 나중에 퇴사 후 이런저런 사람들에게 알아보니 자신들이 생각했던 그런 류의 사람이 전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노라고. 물론 그 후로도 여러 가지 형태의 직장생활을 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일할 기회를 가졌다. 재산을 들어먹기도 하고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다 하루아침에 부도가 나버리는 회사에서 미친놈처럼 처절하게 일을 하기도 하고 회사에 몇십억의 매출을 올려주었지만 사실상 버림받는 분위기를 알고 스스로 회사를 나오는 등 일반적인 중년보다 조금 많은 종류의 직장생활을 하면서 오늘날까지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며 살아오고 있다. 그렇다고 피폐한 정신세계를 갖지는 않았다. 돈이 없으면 조금은 낙담을 하긴 했지만.
어느덧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가 30년이 되었는데 뒤돌아보니 사람들마다 많은 평가를 하며 나를 이용하기도 하고 내 도움을 받기도 하고 나로 인해 적지 않은 돈을 벌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내가 궁금한 것은 그들이 나로 인해 무엇을 얼마나 벌었는지가 아니다. 그들은 나를 무엇으로 생각했을까이다. 때로는 무기력한 촌뜨기였을 수도 있고 입만 살아있는 인간이거나 현실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칠뜨기에 불과할 수도 있었다. 혹은 참신한 생각을 가지고 새로운 사업을 선도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나는 무엇이었을까.
내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모두가 동일하게 나를 평가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때마다 내가 살아온 경험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얼마나 벌었는가일까를 생각해보면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직장생활을 하거나 사업을 하거나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이 조직 속의 나였고 내가 함께 하는 한 조직이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내가 조직에서 의미있는 위치를 차지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나는 사회생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잃어버린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는 나만이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온 것이 아니라 직장생활을 자신의 삶의 터전으로 살아온 우리 세대의 중년들에게는 어쩌면 가장 중요한 가치가 아니었을까.
30년간 만났던 직장동료나 나와 함께 관계를 맺고 일을 했던 사람들이 나에게 어쩐 평가를 내릴지는 결단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그들을 언제고 다시 만나서 이야기할 기회가 생긴다면 묻고 싶어 진다. "나는 그 직장에서 어떤 존재였었나요." "나는 당신과 일을 하면서 어떤 사람으로 인식되었나요?"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또래도 많을 것이다. 직장생활의 중요성을 인지하지만 그 조직 안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뭐가 그리 중요한지 결코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요즘처럼 '소 확 생'이 중요하고 '워라벨'을 중요시하는 사회에서 조직 내에서 얻게 되는 평판이나 위상이 중요했다고 이야기하는 내 주장을 듣고 공감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렇지만 그런 사회생활을 했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가 중년들이 사회를 살아온 가치였던 게다. 그게 다르다고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고 이전 세대의 낡은 사고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 사고방식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다. 나는 다른 누구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개인의 창의성이나 조직에서 개인성이 매몰되지 않기를 바라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던 사람이다. 그러기에 조직문화가 너무 강한 대기업에서 오랜 직장생활을 하지 못했고 나름 소규모 조직에서 협업에 의한 업무를 이야기하며 살아왔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조직을 이야기하고 최소한 조직에서 사람들이 식구처럼 지낼 수 있기를 기대하면 지내왔다.
마지막 직장을 나오면서도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조직은 역시 얻지 못했다. 일도 일이지만 사람 마음이 나와 같지 않으니 갈등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고 친한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조직을 떠났어도 그 조직을 만들면서 유지하려던 조직문화는 지속되기를 기대한다. 아마도 그런 조직을 꾸리면서 구성원들이 나를 한 명의 괜찮은 구성원으로 인정해주기를 바랐던 모양이다. 여전히 혼자이면서도 조직을 확실히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젊은 세대들에게 조직문화라는게 그다지 중요한 삶의 기준이 되지 않고 개인들의 행복과 가치가 훨씬 중요하다는 점을 듣고 간간히 경험하면서 알게되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조직을 이야기하고 그 안에서 개인의 창의성과 함께 발전하는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는 그 사람은 여전히 오늘날의 중년과 같은 사람일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가치관을 터득했으니 말이다. 다만 한가지 스스로에게도 묻는다.
그래서 그대는 어떤 삶을 살아온 중년이었나요? 조직에서 어떤 인물이 되고 싶으세요? 내 이야기 말고 당신들의 직장과 조직은 어떠하기를 바라나요? 단순히 돈 버는 기계로 활동하기에는 너무 아쉬운 순간들과 시간들이 많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