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아들에게 남기는 말 혹은 유언

by 너구리

내가 이렇게 빨리 내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남기고 아내와 아이에게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한 넋두리와 당부를 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어느 순간 문뜩문뜩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느낀다. 무슨 때? 이 세상과 이별을 고하고 영원한 수면의 세계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는 시기. 이 점을 인정하는 일이 무척이나 힘들고 괴롭지만 사람의 직감이라는 것을 고려할때 어느 때를 안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20여 년 전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을 늘 생각한다. 나는 임종을 하지도 못했고 이후 아버지는 여태 건강하게 잘 살아계신다. 그런데 나는 이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참 묘한 상황이기도 하지만 이제 그때가 됐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 낯설지만 자연스럽다는 게 더 이상하기도 한 일이다.

삶에 대한 미련이 왜 없겠는가마는 많은 이들과 작별해야 한다는 것은 슬프기도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냥 가버리는 것이야말로 더 슬픈 작별이 아닐까 싶어 글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암 수술할 때 조차도 이렇게 아프지 않았고 내가 이 세상의 것이었는데 탈이 났다는 생각이 강했다. 근데 지금은 내 몸을 비롯해 많은 것이 더 이상 이 세상에 속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남들이야 왜 그리 힘들어하니? 라던가 '건강 회복이 아직 안 된 모양이네' 하며 안쓰러움을 표현하곤 하지만 내면의 깊은 곳에서는 내가 소유했다고 생각하고 나를 위해 언제까지라도 봉사할 것이라 여겼던 육체가 더 이상 나를 위해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점을 깨닫는 일이 가능해졌다. 이를 어떻게 증명할 거냐고? 우습지만 사람은 때가 되었음을 그냥 알게 된다. 몸과 자연이 신호를 보내기 때문이지. 그만 돌아오라고.

정확한 시점에 대해서는 제대로 혹은 정확히 알 도리는 없다. 몇몇 고승들은 자신들이 세상을 떠나는 날을 알아 미리 준비하거나 스스로 작별의 시간을 갖는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 아니니 그 정도로 깔끔하고 명징하게 세상과의 작별을 고하기는 힘들 것 같다. 다만 바라는 바가 있다면 괴롭고 고통스럽게 주위 사람들을 고생시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나 때문에 가족이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괴로워해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우습게도 내가 한계에 다 달았다고 느끼는 순간은 몹시 아파 괴로워하는 순간도 있지만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요가를 하는 순간에도 내가 여분의 에너지를 내 몸에서 쥐어짜내고 있다는 사실을 느낀다. 단지 몸의 상태가 안 좋다가 아니라 사람이 진액을 쥐어짜면서 방전되고 있다는 느낌이 온다는 말이다. 어느 순간에 피곤하다가 아니라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의 에너지를 스스로 소모해버리고 있구나 그 시간들을 살고 있구나 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내 몸과 내 주변의 상황이 대단히 객관화된 모습으로 느껴진다.

얼마 전 몸살이 와 이틀 동안 비몽사몽의 시간을 가진 적이 있다. 예의 다른 몸살과 비슷하고 비교적 심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시기가 시기인 만큼 코로나 19 검사도 받고 스스로 외부와 격리하는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때도 불현듯 몸살을 앓으며 순간순간 느껴지는 흔히 아프다는 통증이 아주 객관적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알게 됐다. 아픈 순간을 정확히 분리시켜 내 몸의 상태와 기분을 또렷이 알게 되더라는 말이다. 그리고는 그 아픔의 깊은 내면에 이미 소모해버릴 때로 해버린 내 에너지원을 들여다보게 된다.

샘이 말라버린 오아시스나 게임에서 생명에너지가 기준 이하로 내려가서 번쩍번쩍하면 붉은 경고등이 계속 나타나는 순간들이 내 몸에서도 읽힌다. 단지 운동이 부족하다던가 아직 몸살이 다 낫지 않았다는 것과는 다분히 다른 이 감정은 무엇인지.

그런데 그 감정의 원천을 이제야 알게 됐다. 내 에너지가 이제 복구가 불가능한 수준의 방전이라는 것이고 그 방전의 근저에는 내가 가진 이 세상과의 시간이 다해버렸음을 알게 됐다는 점이다. 삶의 끝이 그냥 아무것이 아닐 수도 있고 혹은 내세가 있어 새로운 삶을 기다리는 기대에 찬 새 출발일 수도 있지만 그 무엇 하나 나를 기쁘게 하지는 않는다. 아직까지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을 끊지 못한 상태에서 삶을 중단한다는 것은 그 어떤 이유로든 용서가 되지 않는 당혹스러운 상황이다.

이 순간이 얼마나 더 연장되고 길어질 수 있을까. 며칠 혹은 몇 달 아니면 몇 년의 시간을 버텨주면 좋겠지만 가능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떤 상황에도 새로운 시작에 대한 발걸음을 멈추고 싶지 않고 그것이 나를 먹였던 에너지원이었는데 그 에너지를 지금 놓아버릴 것인가 아니면 마지막 순간까지 가지고 가는 것이 맞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하루하루 조심스러우면서도 차분히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면 내가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아니라 나도 모르게 다가오고 있는 그 시기를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그때가 되면 아내에게 아들에게 그리고 주위의 모든 사랑하는 가족과 짧았지만 후회하지 않을 사람에게 정리된 마음을 덮으며 이 세상을 가슴에 담고 갈 수 있지 않을까. 참 모를 일이다. 삶의 후반부를 스스로에게 되새김질당하며 마치게 될 일이라니 너무 이기적인 인간성이 아닐는지.

그래서 글을 남기기로 했다. 특히 아들에게는 남들이 하듯 뭔 재산은 누구에게 나눠주고 뭐는 어쩌고 하면 상속을 이야기하면 좋으련만 그놈의 재산상속은 이건희 회장이 떠나버린 삼성같은 곳에서나 이야기될 것이고 나에게는 그저 당부의 말이 먼저 생각난다.

자유롭기를 바란다. 중도 아닌데 속세로부터 자유로우라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인식과 사고방식에서 자유롭기를 바란다. 그로인해 자유로운 인생을 맘껏 살아주기를 바란다. 많은 부모들이 자신이 못한 일들을 자식에게 부탁을 하거나 강제로 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 나는 내 스스로 못한 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이기에 그렇게 살기를 기대한다. 자유롭다와 방종 혹은 방탕한 생활과는 다르다는 것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알것이다. 다만 기존의 틀에 얽매여서 타인이 깔아놓은 멍석에서 춤주는 멍청이는 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자기가 조직내에서 편안하다고 생각하면 그게 자유일 수 있고 백수가 자유라면 그리하면 될 일이다. 다만 그 자유를 통해 얻게 되는 결과를 심도깊게 생각하기를 바란다.

자신을 사랑하도록 해라. 스스로의 육체가 얼마나 소중한지. 자신의 정신이 얼마나 고귀한지 알게되기를 바란다. 육체를 아끼고 정신을 사랑하는 일이라는 것은 스스로 단련하고 계획하고 준비하는 일이 없으면 결코 나아지지 않는 것이 인간의 인생이 아닐까 싶다. 아무것도 없이 자유로운 생활이라고 주장해봐야 쥐뿔도 없는 거렁뱅이같은 인간의 넋두리일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자유로움에는 준비와 스스로에 대한 사랑이 있으면 그 결과가 곧바로 자신에게 쌓인다는 것을 알게되기를 바란다.

아들이 어찌살든 나는 내 인생의 얼마남았는지 모른 시간들을 느끼는 시기에 억지로나마 아들에게 메시지를 남길수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좋은 말은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그것은 당부의 말이나 남기는 말이 아니라 역시 잔소리가 될 것이기에 이만 뻔한 이야기는 그만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어릴적부터 이야기했지만 주의깊게 듣지 않았던 가훈에 대한 이야기다. 회사를 다니면서 선배들이 장난처럼 사용하던 문구들을 들으며 이거는 후에 가훈으로 이야기해줘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한 말들이다.

지팔은 지가 흔들고 산다. 각자의 인생은 스스로 사는 것이지 남이 살아주는 것이 아니니 자신이 할 일을 결정하고 맘껏 지랄을 하든 질풍노도의 삶을 살든, 쥐죽은 듯 살든 알아서 살아야 한다. 그러나 그 결과역시 자신의 것이다.

상처없는 영혼은 없다. 내가 사는 삶이 타인에게 어쩔 수 없이 영향을 미치게된다. 그 영향이 최소한 타인의 삶에 보탬이 되는 인생이었으면 좋겠다. 누구나 어려운 상황이 있고 견디기 어려운 날들이 있다. 그때 누군가에게 조그마한 힘이나 보탬이라도 될 수 있는 삶을 목표로 살면 같이 사는 세상에서 조금이나마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단다.

내가 이야기 해주는 것이 내 아들이 읽어줄지 혹은 받아줄지는 모른다. 읽어보라고 전달은 하겠지만 그것을 선택하는 것 역시 그가 할 일이기 때문이다.

암튼 내 세상에 들어와 준 아들에게 언제나 고맙다는 말을 하고싶다. 그리고 맘껏 잘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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