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사는 인생은 참 아이러니 하다. 결혼한 지 21년이 지났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결혼할 때의 열정과 장밋빛 행복한 가정은 사실 나를 위한 것으로 준비된 시나리오가 아니라는 게 밝혀져 버렸다. 결혼이 불행하다거나 이혼을 한 상황도 아닌데 뭐 그렇게까지 이야기할까 싶지만 일상생활의 틀에 박힌 일정을 소화하다 보면 종종 얻게 되는 결론이다. 가정도 하나의 직장 같다는 생각.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좀 더 자세히 집안일의 역할분담과 매달 지출해야 하는 비용의 씀씀이를 가늠하는 일, 아이에게 신경 써야 하는 일은 물론이거니와 쓰레기 버리는 당번과 청소, 빨래 당번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역할분담이 이루어지다 보니 직장의 업무분담 즉, R&R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언제부터 그래 왔는지 모르지만 열정적인 섹스가 생활의 큰 활력소였던 시간들은 멀어지고 흔히 의무방어전이라는 것조차 심드렁해지기 시작하니 어째 책임과 의무만 남은 시간들을 살아가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아졌다. 다른 부부에 비해 격동의 시간을 보냈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는 것도 아닌 상태이니 아마도 대부분의 중년부부들이 늘 이렇지는 않아도 이 같은 상황을 이해할 것이다.
딱히 시간을 알 수는 없지만 혼자 자는 잠자리가 편하고 좋아졌다. 단순한 계기를 찾으라면 신종플루가 유행하던 시기. 몸살을 너무 심하게 앓아왔던 시절 이후가 아닌가 싶다. 옆에서 펄펄 열을 내는 사람이 있는데 이를 보며 잠들기 힘들었을 것이며 몸살을 앓던 사람도 누군가 옆에서 걸치적거리는 게 영 귀찮았을 것이다. 암튼 늘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이후 필요에 따라 각방을 쓰기도 하고 괜히 이불을 싸들고 나가서 마루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흔히 말이 없는 가족이나 부부 중 남편이 집에 들어와서 세 마디만 하고 잔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는?" "밥은?""자자." 아주 필요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너무나 절제된 언어로 상징되는 이 같은 상황은 웃프기도 하고 살아가면서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던 부부들을 비꼬는 이야기일 수도 있을 터이다. 나야 그런 처지는 아니지만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 속에 처해있음을 자백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젠가 집사람이 젊은 시절 이후로 나에 대한 기억이라고는 컴퓨터 모니터를 쳐다보는 뒷모습 이외에는 기억나는 것이 없다는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다. 이후로 가끔은 거친 언어로 싸우기도 하고 별일 아닌 것으로 신경질을 내면서 소원한 관계를 유지하기도 한다. 그 상황이 무엇이든 어느 순간부터 영화 '원앙소리'처럼 애틋한 말년을 보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드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나뿐 아니라 많은 중년부부들이 쉽지 않은 시간들을 보내면서 농이나 냉소적인 예를 들어 각자의 상황을 표현하곤 한다. 부부가 친하게 스킨십을 하거나 애틋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라면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야."라며 자신들은 그러지 못하는 상황을 에둘러 표현하곤 한다.
여러 가지 상황을 겪으면서 내가 생각하게 된 부부간의 관계는 어이없게도 같이 사는 것이 맞는지 같이 살아남아있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고민이 중심에 서게 됐다. 나의 상황을 생각해본다. 같이 살아가는 것이 맞는 것일까.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 부부의 관계는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비교적 결혼을 늦게 한 편에 속한다. 30대 중반에 결혼이란 걸 하게 됐으니 지금에야 아주 흔한 일이지만 그 당시는 조금은 늦게 결혼을 한 때문이라 집안 어른이나 부모님이 걱정하는 소리를 꽤나 들었다. 적지 않은 내 지인들은 내가 자유로운 생각과 행태를 보이는 덕에 결코 결혼하기 쉽지 않으리라는 예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결혼 소식을 듣지 못한-대학 졸업 후 10년 이상이 지나버리면 연락이 잘 되지 않는, 학교 때는 잘 지냈으나 이후로 연락이 잘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선후배들은 그 후로도 한참 동안 내가 결혼을 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에게 부부 관계는 평등한 관계라는 논리적 인정에도 불구하고 집안일이나 시댁의 일들, 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결코 평등한 남녀관계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전통적인 관행이 당연시되고 있는 시기였다. 시댁 일에 어쩔 수 없이 참여하면서 꽤나 힘든 시간을 겪고 자녀 양육에 신경 쓰는 일이나 집안일에 들이는 공 등 남자들이 하는 일은 아무리 평등한 관계를 유지한다 해도 여전히 시간이 나면 '해주는 일'이 자연스러운 표현이었다. 나 역시 어린 시절 보고 배운 것이 전통적인 유교 교육이었던지라 내 몸에 어떤게 자리 잡고 있는지 잘 알지는 못한다. 물론 나로서는 이성적으로 평등한 부부관계를 유지하려고 했지만 세월을 지내면서 내 안에 숨겨져 있던 남성 중심의 사고방식은 생활의 곳곳에서 배어 나왔고 어떤 것은 여전히 고치지 못한 채 내 삶의 중요한 가치관으로 유지되고 있다. 여전히 남성중심의 사회가 생활하기에 편하다고나 할까.
아이가 20살이 넘어가 버리고 나니 한 가정에 3명의 단독세대가 살아가는 느낌. 오래된 연인들의 의무감으로 묻는 안부가 당연시되는 생활. 그 생활이 지속되는 일이 평상시에는 바쁘다는 이유로 용인된다. 회사일이 바쁘고 집안일이 바쁘고 챙겨야 할 경조사도 많고 등등. 그러다 보면 가정이 잘 유지되고 있다고 느끼게 되지만 하나씩 쌓이는 불만은 결국 동상이몽의 생활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기 마련이다. 나의 경우 어려운 상황을 드러내기를 저어하지만 참다못한 집사람은 술 한잔 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남편이 어느 날 그 자리에 없고 혼술에 위안 삼는 일이라곤 TV 프로그램밖에 없는 현실을 확인하는 순간 종종 폭발한다.
나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 입장에서는 평생을 별일도 아닌 일을 들어주는 술자리 대작과 말동무 역할을 해왔지만 그 말동무를 해주는 일에도 체력이 무한히 필요하고 현재의 내 체력으로는 그 일이 과중한 업무와 같다는 사유로 슬며시 자리를 피하고 나만의 자리에 와 앉는다. 내가 사는 집에는 소파가 없거니와 나는 혼자서는 TV를 보기보다는 NETFLEX를 보거나 핸드폰을 보며 눈팅을 하는 일이 생활의 일부분이 된지라 방으로 도망 오는 일이 편해졌다. 결국 젊을 때부터 나에게 이야기했던 컴퓨터에 앉아 자판만 두드리는 뒷모습이 한때의 모습이 아니라 평생 간다는 것을 서로 확인하고 말았던 것이다. 어쩌겠는가 나는 그 생활이 편한데.
남들처럼 직장생활을 한 군데서 하지 않고 수도 없이 옮겨 다닌 나로서는 중간 중간 쉬는 시간이 있는 사회생활을 했다. 달리 말하면 백수기간이 심심치 않게 있었다. 최근에야 다시 백수로 말을 옮겨 타고 프리랜서와 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예전처럼 초조함에 쫓기지는 않는다. 대신 나이가 주는 어쩔 수 없는 무게로 인해 내가 얼마나 업무의 효율을 찾을 수 없는 나이가 되었는지를 알게 됐다. 아내는 아내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40대에 모두 해서 지금은 덤으로 사는 인생을 살고 있다고 수도 없이 이야기하고 있으니 어찌 보면 이제는 자신과의 시간만 남았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말년을 부부가 손잡고 오순도순 잘 지내는 것만큼 편하고 아름다운 게 있겠느냐는 이야기를 전하지만 그게 가능하려면 자신의 고집스러운 시간을 타인에게 내어주어야 하는데 과연 내가 그럴 수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여전히 내 시간이 남에게 침해받는 것을 힘들어하는 개인적 아집에 빠져있는 중년 아저씨에게 타인과의 협력, 굳이 타인이라는 용어를 쓰면 서운해 하겠지만, 그 시간을 억지로 쪼개는 느낌을 받는 일은 여전히 큰 결단이 필요한 셈이다.
한 지붕 세 가족이 되어버린 지가 꽤나 되었다. 아들놈이야 20살이 넘었으니 당연히 독립적인 구성원으로 인정을 해줘야 할 일이고 매일 밤 피시방을 헤매고 다닌다 해도 이래라저래라 개입하기가 힘든 상황인 것은 인정하지만 역시 중년의 부부가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둘 만의 시간의 합을 어떻게 이끌어내고 어떻게 각자의 시간을 존중하느냐가 아닐까 싶다. 전통적인 가정 내에서 내조라는 이름으로 나에게 가정의 중심을 맞출 수는 없는 일이다. 특히 프리랜서와 같은 생활을 하면서 하루하루의 생활이 불규칙해진 상황에서는 둘의 조율은 굉장히 중요한 과업이다.
정년퇴직이나 명퇴한 직장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집에서 세끼를 먹는 삼식이가 되는 일이란다. 물론 아내의 입장에서 그렇겠지만 직장생활에만 전념하던 중년의 남성은 갈 곳이 없는 대한민국의 여유 문화를 생각할 때 최악이면서도 슬픈 삼식이들이 많이 존재한다. 나 역시 가끔은 아내가 생색을 내면서 밥을 차려 주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밖에서 먹으려 할 때가 많다. 하지만 오늘은 밥을 차려줄 수 없으니 밖에서 먹고 들어오라 해도 밖에서 먹을 수 없을 때가 더 많다. 약속이 취소되고 딱히 같이 저녁을 먹을 사람이 없을 때는 집에 와서 어떻게든 비벼보려 하는데 일이 있으니 밖에서 먹으라고 하면 사실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겉으로는 '걱정 마! 알아서 잘 챙겨 먹을 테니'라고 큰소리는 치지만 막상 머릿속에는 라면을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 냉동실 털이를 생각하는 수준이 전부인 셈이다.
같이 살아있지만 같이 사는 것은 아닐 때가 많다. 졸혼이라도 하는 게 맞는지는 아직 잘 모른다. 심할 경우 졸혼이 해결책일 경우가 많겠지만 그 역시 우리 시대의 사고방식으로는 선뜻 결정하기 어려운 낯선 문화이기는 매한가지다. 이미 각방을 쓴 지 오래됐고 서로의 아침은 서로가 알아서 챙기는 일이 당연하고 집안의 영수증을 챙기듯 할 일을 서로 나누고는 있지만 여전히 좋은 가정이라고 생각하고 유지하려고 애쓴다. 그럼에도 언뜻언뜻 나는 '중년의 가정은 위기 그 자체'라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다. 어쩌면 나도 전통의 가정관에 씌여있지만 아내 역시 우리 사회가 쌓아놓은 기존의 가정에 대한 생각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아내가 굳이 페미니스트가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의 일은 자신이 하고 인생은 스스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단 한 번도 자신의 일에 대해 남에 의존하지 않았던 삶이지만 나이 들어서도 그 기조를 유지하기 바란다. 살아있는 한 같이 지내는 일들이 서로에게 짐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아내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언사로 여겨질 것이다. 내가 나쁜 놈이겠지만 각자의 자유를 유지하면서 가정을 화목하게 유지하기를 바라는 이중적인 사고방식을 가지는 중년의 사고방식을 가지는 가정을 유지하고 있는 인물이다. 이게 나만의 생각이기를 바라지만 동시대의 내 또래는 역시 이 생각이 많을 것이다.
나가서 여전히 새로운 만남과 다양한 모험을 기대하는 그러면서도 자신의 가정은 유지되는 일이 너무나 당연한 중년인 셈이다. 같이 살아가면 좋겠다. 살아있으니 같이 있기만 해서는 너무나 우울한 중년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