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우리사회의 중년

by 너구리

한 시대를 풍미하며 지냈던 인물들이 하루아침에 낙마를 하고 법정에 선다. 특히 업무나 실적 측면에서 꽤나 수행능력이 좋다고 알려진 인물들이 하루아침 미투에 의해 추풍낙엽처럼 쓰러져갔다.

그러다 보니 성인지 감수성이 극도로 부족한 세대가 됐다. 나를 포함한 중년들의 현주소다. 아직도 여전히 성추행사건은 사회적 이슈의 단골이 되었다. 물론 그럴 수 있다. 성추행에 대한 욕구가 실제로 각 개인들에게 어찌 작용할지는 모르겠으나 남성으로서 남아있는 자존심이나 자신의 신분이나 지위에 의한 위력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는 사실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우리 사회가 만들었거나 우리의 조직문화가 암튼 그렇다.

그런 점에서 중년 남성들은 특히 노답의 인물들로 그려진다.

우리 사회에서 중년이란 어떤 존재일까. 나 역시 그 부류에 속해있으면서도 나 잘란 맛에 살고 멋대로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그 무엇이 중요하리오 하면 그만이지만 사회적 파장이 한없이 커지는 세태에서 느껴지는 중년의 이미지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는 한 시대에 여러 세대가 동시에 살아간다. 어느 세상이든 안 그렇게냐 마는 단순히 어린 사람부터 나이 든 사람까지 한 장소에 살아간다는 의미가 아니다. 어느 시대에나 청년들의 세계관과 중년 혹은 노년의 세계관이나 예절 등은 꽤나 차이가 났었다. 그 때문인지 요즘 젊은이들은 버르장머리가 없다는 말이 아주 일반적인 이야기였고 청소년이나 청년들의 행태를 보며 나이 든 분들이 '세상이 말세야'라는 말을 흔히 하곤 했었다. 그런데 그 말세 이야기를 이제는 감히 할 수 없다. 예전 같으면 분명히 같은 시대를 살고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기성세대의 행태나 사고방식을 닮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그것이 곧 어른됨이나 성숙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서도 기존의 생활방식을 따라하지 않으면 철이 덜든 것으로 여겨지고 평가받는 것이 인류사에서 너무나 당연한 판단이었다.

근데 요즘은 그 세대의 변화가 조금은 달라진 느낌이다. 단지 이전 세대가 만들어온 생각과 관습의 차이가 조금씩 달라져 있는 수준이 아니라 전혀 다른 생각과 사고방식 그리고 문명을 가지고 그냥 같은 공간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젠더 감성의 문제가 이제는 아주 큰 사회적 문제가 됐고 정치적인 편차는 물론 아주 사소한 문제도 다른 세대에게는 엄청난 부조리와 비리로 비친다. 이를 단순히 정치적인 의도와 조작의 결과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기도 하다.

이 와중에 내가 속한 이놈의 중년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몹쓸 존재가 되어버리고 점차 잊히거나 용서하지 못한 세대가 되어가고 있다.

나보다 앞선 시기를 살아간 세대를 바라보고 있으면, 멀리 찾을 필요도 없이 우리의 부모세대를 바라보고 있으면 참으로 힘든 시대를 어렵게 살아왔다는 안쓰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어린 시절을 일제시대에 살았거나 그 후유증에 살아왔고 전쟁을 겪어야 했고 그로 인한 가난을 몸소 이겨내면서 그나마 제대로 먹고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느라고 개인적인 삶에 대해서는 그다지 되돌아볼 기회조차 갖지 못했던 시간을 살아야 했다. 그래서 나를 비롯한 많은 현재의 중년들에게 너희는 나 같은 인생을 살지 말기를 기대하며 사회적인 성공의 길을 가기를 바랬다. 판검사가 되거나 의사가 되거나 그게 아니면 공무원이 되어서 어렵지 않은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고 신분상승을 이루기를 바라마지 않았다.

지금의 중년은 그러나 경제적 빈궁기를 넘길 즈음에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청년기에는 아주 강한 사회적 자극에 맞서 버텨왔다. 민주화 시기를 몸으로 만들어내거나 겪어야 했고 어떤 이유로든 경제적인 성장기를 맞으면서 다양한 기회를 맞았다. 경제성장으로 인해 대기업에서 주도적으로 일하는 인물이나 벤처를 통해 신분상승의 부를 쌓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국력이 상승하면서 경제규모의 팽창을 통해 많은 기회를 얻고 스스로 자수성가의 기회를 만들 수 있는 세상을 살았다. 이뿐이랴. 경제적인 가능성이 활짝 열림과 동시에 정치적인 참여의 기회를 얻음으로써 사회의 영향력이 극대화하는 시대를 경험하는 시기를 살아왔다.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포함하여 그 끝자락을 부여잡으며 중년을 넘기고 있다.

어찌 됐든 현상유지 혹은 쇠락의 시대가 아니라 극도로 빠른 팽창의 시대에 맞춰 자신이 선택만 잘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30~40대를 지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뒤돌아보니 40이 먼 옛날이 되어버렸고 노인 같지 않은 60대를 코앞에 두거나 어영부영 넘겨버리며 '내가 할아버지나 할머니란 말이야'라거나 혹은 노인이라 불리워야 한다는 사실에 어이없어 하고 기도차지 않는 상황을 맞닥뜨리고 있다.

어느덧 우리 사회는 초고령화 시대로 접어들었고 선진국형의 안정적인 구조로 재편되어가고 있음에도 세상의 모든 기준과 돌아가는 패턴은 팽창 시대에 맞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 톱니바퀴의 주요 부품을 돌리는 세대로 지금의 중년들이 역할을 해왔다. 나 역시 모든 직장생활을 그렇게 보낸 것은 아니지만 대기업에도 일했고 벤처기업도 운영하다 말아먹어 보기도 하고 자영업자도 되어보고 혹은 백수로 곤궁의 시기를 살아보기도 하는 등 그럭저럭 하고 싶은 것은 다 할 수 있는 시기를 지냈다. 큰돈을 벌지 못했지만 굶어죽을 고민을 하지는 않았다고 해야 하나. 암튼 부동산은 돈이 되고 사회는 팽창하고 내가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이기에 사회의 발전에 한몫을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특별히 큰 문제가 되지 않는 한 각자의 역할은 존중됐고 후대에 이를 그대로 물려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들이 돌리고 있던 기계의 톱니가 만들어내는 세상이 이제 잘 돌아가나 봤더니 솔직히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로 가득 차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고 있다. 사실 깜짝 놀라는 인물들도 대다수는 아니다. 여전히 양적인 성장이나 발전의 패러다임을 믿고 있는 인물들이 대부분이고 자신이 주역이라고 믿고 산다.

지금의 나를 비롯한 내 친구들이나 선후배들은 누구 때문에 그리 됐는지 알 수는 없으나 지금의 중년을 대체할 세대는 우리처럼 사회에 집단적으로 대항하거나 무언가를 뒤집을 수 있는 세대도 아니거니와 새로운 기회로 가득 찬 기회를 맞이하지도 못한 채 무한경쟁과 개인주의로 무장한 개별화된 인간으로 계속 탄생되고 있다고 우리 다음 세대를 바라본다. 기대하지 않았던 세대가 새로운 사회의 부품과 신병으로 수급되고 있는데 영 적응하기 쉽지 않다. 중년들은 부품으로 살아가면서 적절한 대가를 받고 기존의 틀과 새로운 문명의 달콤함을 보기를 기대한다. 그러면서도 자신들도 이전의 세대처럼 자기중심의 사고방식이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믿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새로운 인물들은 그렇지 않다. 세계관도 다르고 무엇보다 이전의 세대가 아무런 문제제기 없이 받아들인 가치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거나 전면 부인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사회구성원 혹은 깍아내려서 부품으로써의 인간의 기능과 가정의 연결을 기본 구조로 삼았던 중년의 기준으로 볼 때 젊은 세대나 MZ세대는 부품이 아니라 하나의 완결된 완제품이 모여 제품을 구성하는, 그래서 필요하면 부품에서 벗어나서도 하나의 완결된 구조로 살아남는 인간들을 모델로 삼으며 살아가고 있음을 본다. 워라밸이라거나 소확행이라는 단어가 나왔을때 엄청 당황했던 것도 여기에 근거한다. 일이 곧 전부이고 행복이 돈이나 사회와의 관계에서 유래된다는 무의식적인 신념이 있었고 어떻게 인식이 되었든 뼈에 각인되도록 어린시절부터 그런 교육을 받았다. 최소한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며 어린시절을 보낸 인간들은 그리 생각한다고 봐도 틀린말은 아닐 것이다.


중년들에게는 솔직히 사회적 가치를 부인당하는 것은 매우 낯설다. 성장과정도 그렇고 사회생활도 그렇고 모든 것이 사회적인 연대와 가치가 연결된 상태에서만 힘을 발휘했다. 그 힘으로 사회의 주도권을 쥐고 흔들 수 있는 세대 장악력은 그 어는 세대보다 강하다. 그 장을력은 오래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회적인 연대와 가치가 연결된다는 것을 배웠고 경험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를 쥐고 흔들고 있는 주역이기도 하고 앞으로도 이를 다음 세대까지 물려주려면 꽤나 많은 저항을 경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전반적으로 젊은이들은 이들의 행보가 매우 부담스럽다. 워낙 광범위하게 사회 곳곳을 장악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정치적으로 민주화운동으로 다져진 사회적 결속력과 분위기를 이해하기도 어렵다.또 이를 넘어서는 일들은 더욱 힘겨운 상황이니 지금의 중년은 참으로 완고하고 거친 깔딱고개가 아닐까. 언제고 세월이 흐르면 이루어질 일이기는 하지만 그런 점에서 사회적인 저항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얼마 전 80년대 민주화 시대 이후를 살아온 후배와 80년대의 분위기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젊은 시절을 이야기할 특별한 경험이 많지 않았고 정치적인 이슈가 없는 사회를 살다 보니 80년대를 살아온 이들을 이해하거나 그들이 보여주는 행태가 이해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어쩔 수 없이 책으로 읽은 대목들을 언급하거나 80년대를 살다 지금은 보수의 입장에서 현세대를 비판적으로 기술한 책들을 언급하며 천편일률적으로 80년대 세대들이 어떠한지를 나에게 설명하며 동의를 얻으려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얘기를 듣자 직접적인 내 얘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속으로 울컥하는 마음이 생기는 내가 이상하기도 하다. 너무나 단편적인 예들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중년이 아닌 이들에게 어쩌면 지금의 중년들이 가지고 있는 오랜 사회적 경험들이 부재했기에 결코 이해되지 않는 존재들인 것으로 보일 것이 자명해졌다.

역으로 우리 사회에서 중년은 어쩌면 점점 세대 간의 섬이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나만 해도 내가 가진 경험, 어린 시절의 사회분위기와 이를 뒤집을 80년대 그리고 경제성장과 민주화 시대를 겪으며 나도 모르게 쌓아져 올린 사회적 가치와 인식들이 한치의 흔들림이 없이 무오류성으로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최근 들어 어린 여성들에게 보이는 무심한 말 한마디가 그들에게는 매우 수치스럽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일 수 있으며 이를 억지로 참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그에 대해 지인들의 경고나 지적도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는 내 행동 하나하나가 다른 이들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는 세대. 어쩌면 지금의 중년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의 실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너무나 당연했던 것이 송두리째 의심을 받는 시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나보나 더 나이가 많은 노년세대들이야 미쳤거나 정상적이지 않은 사회가 개탄스러울 것이고 나는 의식적으로는 인정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뼈에 각인된 사회적 관습은 내가 기성세대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다.


산이 깊으면 골이 깊다고 했다. 분명한 것은 지금의 중년은 우리 사회에서 매우 높은 산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몇몇의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의 정서와 감성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인가 자식 또래의 세대가 보여주는 개인적이고 디지털화된 삶의 모습이 여전히 낯 선점을 떠나 걱정이 무던히도 앞선다. 험난한 세상이라는 것을 전제할 때 혼자서 넘어서려면 좌절하기 그지없기에 늘 걱정이 앞선다. 우리는 어찌 됐든 험난한 세상을 집단적인 힘을 통해 넘어서는 경험을 했고 그를 통해 나름 시대적인 동지애 같은 것이 생긴 세대이니 말이다. 지금의 20대는 그저 남을 적으로 인식하거나 경쟁상대로 인식하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집단주의에 물들어버린 중년이 자신들이 조금 더 좋은 것을 차지하기를 원했으나 사회적 이목이나 감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머뭇거렸던 욕구를 자식들을 통해 발현하고자 했던 욕심의 대물림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집단적인 동지애라는 집단의식은 있었지만 그 안에 내재한 개인적 욕구를 제어할 수는 없었기에 자식들만은 혼자서라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자유로움을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 같은 욕구야말로 나 스스로 그 한복판에 있으니 말이다. 사실 욕구라고는 하지만 개인의 자유를 희생하면서까지 사회적인 목적을 달성하는 일들이 한 세대에는 가능할 수 있어도 지속될 수는 없는 것이니 전후 집단적인 위기극복을 위한 베이부머 이후 세대들에게는 그 소임이 맡겨진 셈이고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 자식들은 부모들의 내부적인 반발의 결과로 보면 어떨까 싶은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중년은 감히 말하지만 수많은 선진적 경험의 단초를 만들어낸 세대라는 점에서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선진적인 의식들은 있었을지언정 그것을 지속적으로 스스로가 가지고 가려한다면 당연히 위기와 부패를 낳을 수밖에 없는 세대인 셈이다. 우리사회의 대기업집단이 이전 세대에서 만들어졌지만 사회의 다양한 기능들은 지금의 중년들이 만들어낸 셈이다. 이제 그 조직의 주요 기능을 넘겨줘야 할 시기가 다가왔다. 스스로 물러서야 할 텐데 아직 깨닫지 못한 많은 중년들이 사회의 곳곳에 포진해있다. 단순히 물러나라 한다고 물러설 인간들도 아니고 자신들의 이권이 걸려있으니 그리 할 수는 없을 것이니 한동안은 꽤나 많은 공성전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다만 이로 인해 지금의 중년이 쌓아 올린 성과나 사회적 공과가 전반적으로 해체되거나 부정당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중년이 아닌 세대들이 차분히 현실에 맞는 기준과 실력으로 덤벼든다면 기존의 세력들이 더 빨리 자신만이 할 수 있다는 고집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덧 우리 사회에서 중년은 주도세력이자 넘어야 할 산이 되고 말았다. 그 산이 나는 당연히 움직이지 않는 고착화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20대와 30대를 거치면서 스스로를 조직화하고 만들어나간 사회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각자의 역할에서 새로운 세상에 대한 중년 이후의 모델을 만들어야 할 의무가 남아있다. 초고령사회에 맞는 실버사회의 모델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진정한 삶의 모습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단적으로 신혼 초 시절 맞벌이로 아이를 키우기 어려워 공동육아를 만들어 시작했고 돌봄의 의미를 전 사회적으로 확대시켰듯이 노령화된 사회에서 노인들의 케어와 사회적 역할에 대해 좀 더 심도 깊게 고민하고 새롭게 만들어갈 의지들과 자원들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노인이 된다고 해서 예전처럼 젊은 세대가 떠받들어주거나 부양해주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어쩌면 불행한 측면도 있지만 노인이 되는 준비에서 스스로 만들어가는 삶을 가져야 할 중년의 의미를 빨리 깨닫기를 바란다. 우리가 바라볼 곳은 좋으나 싫으나 이전 노인사회의 무기력한 모습이 아니라 사회에서 이후 세대들이 자신들의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길을 놓아주고 우리 이전 세대들이 가보지 못했던 노령사회의 길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그게 지금 중년이 되어버린 세대의 숙명이라면 사람들은 어찌 생각할까. 나는 그리 생각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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