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중년이라고 느끼는 시기

1장_중년의 표시_1

by 너구리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느끼는 시기는 당연 제각각이다. 나이야 상대적이다 보니 갓난쟁이 때야 오뉴월 땡별 하루 차이도 무시할 수 없는 육체적 정신적 격차를 실감케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격차라는 게 육체적인 것은 20대를 계기로 역전되기 일쑤고 정신적인 연령은 그야말로 개개인의 특성에 기인 하니 나이가 들었다고 철이 들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은 다들 아는 대로다. 오죽하면 남자야 죽기 직전에 철이 든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떠들고 있으나 굳이 나서서 부인하고픈 생각이라곤 코딱지만큼도 없다.

그렇다면 청년이나 장년이 아닌 소위 그윽한 중년이라는 소릴 언제부터 들어야 마음에서 불편하지 않고 선선히 받아들이는 단계가 될까. 참으로 알기 어렵거니와 시기적으로도 꽤나 큰 편차가 있기도 하다.


사회 초년병 시절 당시 언론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신문사의 편집국은 xx부로 직제가 편성되어 있었고 1년 정도면 초반부 부서 이동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다양한 부서를 경험해야 하는 이유이다. 1년 반가량의 소위 언론고시를 마치고 신문사에 들어가 보니 선배들의 능력과 카리스마는 하늘 높은 줄 모를 만큼 까마득하기 그지없었다. 흔희들 쉽게 연상할 수 있는 정치부니 경제부니 하는 부서의 부장들 나이가 40대 중반에서 50대 초반의 나이가 대부분이었다. 실제로 겪어보니 50대는 국장이나 부국장을 제외하고는 거의 존재하지도 않았다. 내가 속한 회사는 비교적 신생 언론이었던 터라 30대 말부터 40대 초반의 부장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당시 국제부에 파격적으로 30대 중반의 부장이 발령 나면서 꽤나 설왕설래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승진이기는 했지만 언론사 초년병인 시각에서 보면 아무리 30대 중반이어도 취재 능력은 물론 기사 작성에 외국어까지 모든 면에서 경이로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2~30대 중반이 그토록 우러러 보여도 그게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 부장은 스스로를 다른 부장들처럼 중년의 품격이나 삶의 연륜을 느끼고 있었을까. 잘 모를 일이다.

그렇담 스스로에게 묻어보련다. 언제부터 중년이라는 이름으로 삶의 새로운 단계에 와 있음을 깨달았으려나. 어느새 60줄을 바라보는 기도 안 차는 세월이 흘러왔음에 이제야 뒤돌아보니 몇 가지 계기가 있기는 해도 그 당시의 나 자신은 중년이라는 품격의 단어 대신 그저 나이가 들고 늙어가는 것에 대해 한없이 두렵고 받아들이기 싫어 거부하기만 했던 생각이 한가득이었다.


아마도 40을 넘기고 괜히 앞자리가 바뀌어 괴로워하던 시기였던 그즈음이다. 남들이 말하던 40이라는 숫자가 되도록 아무것도 한 게 없고 무엇보다 무엇을 해야 할 지조차 모른 채 살아야 했다. 그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그 같은 나이에 상관없이 내게 무엇이 바뀌고 있는지를 전혀 알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하는 일도 할 일도 잘 모르겠거니와 해야 할 일과 잘할 수 있는 일 등 왜 그리 세상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정작 대외적으로는 직장의 직급도 올라가기도 하고 조직의 대장으로 어른인 채 해야 하는 모습이 가장 버거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 시절이 지나도록 4자가 앞에 붙은 10년을 살면서 단 한 번도 중년의 감정을 이해한다거나 이해하려 노력해 본 적 조차 없었다. 도대체 뭐가 다른 게 있어야 인정하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닌가 말이다.

세상일의 결단은 아주 짧은 한순간에 이루어진다. 순간의 결정이 대부분의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내면을 살펴보면 당사자가 짧은 시간에 그 같은 결정을 할 수 있는 계기들이 계속해서 쌓이지 않는다면 어려운 결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 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저 단순히 결단력이 좋았거나 세상사의 흐름을 누구보다 더 잘 알기 때문이라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접어두고 보도록 해야 한다.


아마 50줄이 넘고 1년쯤 더 지난 후였을 것이다. 어느 날 잠을 청하다 말고는 머릿속으로 내가 앞으로 살 날에 대한 두려움이 다가오는데 온 몸이 무언가에 가위를 눌리듯 정신이 한 곳에 꼼짝을 못 하고 멈춰서 버렸다. 컴퓨터가 갑자기 다운되어 더 이상 프로그램이 돌지는 않는 상황이었다. 한 가지 생각이 계속 맴돈다. 내가 살아온 10대부터 지금까지의 시간과 앞으로 살 날의 길이를 비교하는 어쭙잖은 계산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아무리 내가 발버둥처도 내가 살아갈 날이 산 날을 넘어설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상상. 그것을 떠나 아내와 아들과 조만간에 이별을 해야 하고 모든 사람의 기억 속에 내 존재가 지워질 것이라는 두려움. 이미 15년이 넘어버린 어머니의 죽음 이후 난 어머니를 얼마나 기억하면서 살아왔던가. 어린 시절 이후 내 모든 것의 지주였던 어머니의 흔적이 지금 어디에 남아있던가. 나 역시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서 멀어지고 잊히고 말텐데 라는 생각 등이 계속해서 맴돌면서 두려움이 내 몸을 옥죄이기 시작했다. 그날 밤 나는 밤새도록 울고 괴로워하며 온 밤을 뜬눈으로 새워야 했다.


국민학교 6학년.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그냥 세상을 떠나고 싶다며 자살충동을 느꼈던 순간을 기억한 이후 그때처럼 죽음에 대해 처절하게 반대의 감정을 가져본 적이 없다. 이후로 난 이전보다 훨씬 더 눈물이 많은 삶을 살아가야 했다. 전에도 조금 슬픈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눈물을 흘리곤 했는데 이제는 웬만한 영화는 슬프고 괴로워서 더더욱 볼 수가 없을 정도로 눈물을 자주 흘린다. 이전에는 쳐다도 보지 않고 외면하던 지하철 입구의 걸인들에게 살면서 처음으로 지나다 말고 천 원짜리를 살며시 내려놓고 지나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나의 행동을 보며 나 역시 얼마나 당황스러웠던지 마음속으로야 걱정이 되곤 했지만 지나던 발걸음을 다시 되돌리며 구걸하며 머리를 푹 숙이고 있던 지하철 계단의 사람에게 천 원 자리 한 장을 던져주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내가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으니까.


아마도 때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언제부터가 중년인가를 생각해보니 때가 된 것이다. 무슨 때? 내 삶이 이제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생각. 내가 살아온 날 이상으로 내 삶이 남아있지 않다는 생각. 내 주변 사람들의 삶이 눈에 들어오며 실로 걱정이 되는 생각 등 이전의 생활에서는 전혀 매치가 되지 않던 일들이 자연스럽게 내 삶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받아들이는 때가 중년이 됐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불행히 나에게 있어서 그때는 알게 모르게 내 몸이 내부적으로 곪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훗날 알게 됐다. 어쩌면 내 육체가 마음대로 휘둘러도 따라올 수 있는 도구나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주던 기사의 갑옷 역할을 하던 도중 서서히 생채기와 노쇠로 인해 병들고 부서지고 있었다는 것을 그때는 모르고 있었다.

아마 중년이라는 단어를 생각하지는 못해도 몸의 내부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수많은 경고를 보냈을 것이고 흔한 감정의 유희나 운동부족 등 자주 쓰던 단어들 중에서 그때그때 필요한 단어들만 몸의 피곤한 상태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는 데 사용하곤 했다. 그 현실감의 괴리가 결국 중년이 됐음을 알리는 계기가 된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육체적으로야 말도 안 되게 흐트러지고 쇠약해지고 있었지만 정신적으로는 나 이외의 세상에 대한 판단이 생기고 예전처럼 섣불리 내 생각을 강요하거나 강조하지 않게 된 순간들을 맞이하게 됐다. 중년이 인생의 피크에서 꺾여가는 시기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게까지 인생의 뒷방 늙은이처럼 생각할 이유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시기이기도 하다. 임금피크제의 나이와 달리 정신적으로는 성숙함으로 달려가고 있으니 인생에서 얼마나 잘 사용하느냐에 따라 가장 쓸모 있는 시기에 다다른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는다.


중년이 쓸모가 있으면 얼마나 있을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쓸모는 사실 뜻밖의 곳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져버리지 않았으면 한다. 쓸데없는 자신감과는 다른 인생의 다방면의 쓸모를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아이러니하게 나의 중년은 육체와 정신의 능력이 교차하는 시기에 해당된다. 육체적으로는 제대로 꺾여 더 이상 스스로의 의지대로 말을 듣지 않는 시기가 된 반면 정신적으로는 현상을 보면서 현상 너머 최소한 무언가 있겠구나를 추측할 수 있는 시기에 다 달았을 때라면 참으로 아이러니한 교차점인 셈이다. 육체에게는 데드크로스일 테지만 정신적으로는 골든크로스니 말이다. 물론 전부가 다는 아닐 테지만 어느 순간 몸이 호되게 아파 본 후 느껴지는 감정은 이제 앞뒤가 뒤바뀌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중년이라는 시기는 나이가 아니라 삶의 주도권이 정신으로 넘어오는 시기인 셈이다. 그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끝없이 육체를 단련할 수밖에 없는 시기에 다달았으니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병에 걸리거나 심하면 빨리 죽어버리는 것이고 아니면 정신적 활성화의 불쏘시개가 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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