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중년이란?

by 너구리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우리 사회에서 중년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은 용어가 되어버렸다. 직장에서 퇴물 취급을 받으며 언제 명예퇴직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 새로운 사회의 흐름과는 동떨어진 채 옛적의 생각과 행동 패턴을 반복해서 조직의 발달을 저해하는 중간간부. 말과 지식이 전혀 업데이트되지 않아 옛적 유모 코드와 인간관계 그리고 젠더 감성 등이 부족한 그야말로 젊은이들에게 외면당하는 꼰대. 굳이 사회적으로 부정적 평가를 앞세우자면 이런 평가가 은연중에 포함되어 있는 그다지 환대받지 못하는 존재다.


가정에서는 어떠할까. 자식들과 전혀 소통이 되지 않으면서 기존의 권위만을 주장하는 가장. 아이들에게 예전의 생활습관과 사고방식을 강요하는 귄위적 가부장. 그러나 정작 아이들의 문화와 관심사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고리타분한 어른. 아내와의 소통은 저만치 멀리하면서 남성 중심의 사고방식에 절어 그것을 그대로 실현하려는 시대착오적 인물. 돈도 많이 벌어오지 못하면서 언제 잘릴지 몰라 고민하고 고뇌하면서 가족들로부터 소외되고 혼자가 되어가는 세대. 부모의 관습은 이어받았지만 자신의 주장은 아랫세대에게 강요하지 못한 채 양측으로부터 비판 받는 세대. 무엇보다 돈을 벌어다 주는 돈 버는 기계. 아무런 문화적 감성이 없이 하루하루 일과 술 혹은 조직생활에 찌들어 사는 존재. 가정에서 보이는 중년 남성의 자화상을 꼽자면 또 이런 모습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이게 사실일까. 이런 생각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개인마다 다를 것이고 전혀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는 내 주변의 많은 중년을 떠올리면 위의 모습들 중 어딘가에 속한 누군가를 생각나게 한다. 내가 여성이 아닌 관계로 중년 여성의 이미지를 섣불리 표현할 상황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 같은 중년 남성에게 중년 여성 역시 위아래 사이의 낀세대임은 분명하고 돈을 버는 사회인이라면 남성 중심의 가부장 체제에서, 전업주부라면 가사를 동등한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적 인식 속에서, 시댁과의 관계가 보여주는 불합리로 괴로워하는 많은 모습을 가진 존재일 것이다.


이 같은 모습들을 고려할 때 한마디로 중년은 사회적 용도 측면에서는 폐기장으로 가기 직전의 세대임이 분명하다. 체력적으로도 그렇거니와 늘 젊은 세대의 반동세력으로 자리 잡는 그런 나이 때의 사람들임이 분명하다.


나 역시 언제부터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스스로를 중년이라 칭하게 됐고 내일모레면 옛적 나이로 치면 노년의 반열에 서서히 접어드는 시기를 맞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마음은 청춘 그대론데 노인 취급당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지하철을 탔을 때 젊은 청년이 말없이 자리를 양보하는 그런 상황을 경험하고 나면 웃으면서도 그날 하루는 아주 기분 나쁜 날임에는 분명한 것이다. 아직 대중교통에서 자리양보를 못 받아봤다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위안을 삼지 마시기를. 그런 날이 머지않아 오기 마련일 것을. 혹은 5~6살짜리 꼬맹이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상황을 접하고 나면 자신을 조금은 객관적으로 봐야 하는 시기에 접어들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불행히도 나는 이런 상황을 다 경험한 상황이다 보니 어느 시점부터 중년이라는 의미를 인정하는 부류에 속하고 말았다.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이 글을 쓰는 패턴이나 단어 선택 그리고 표현방법조차 고리타분하고 심심하기 그지없는 지루함이 지배하는 시기를 살고 있다는 점을 고백해야 할 상황인셈이다.


어느 날 문뜩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래서 중년은 쓸모없는 존재인가. 이렇게 나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 뒷방 늙은이로 은퇴하는 일만 남아있는 대기인원이거나 부수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는가를 질문하게 되었다. 나이 든 노인분들과 마찬가지로 중년의 나이가 된 시점에서 20대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면 역시 엊그제 같은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게다. 주마등처럼 흘러가는 우리네 현대역사의 한 장면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족히 30년이 훌쩍 지나버렸고 그 시간이 나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을 만큼 여전히 정신적으로 젊다는 점은 이 시기를 살아본 대다수의 중년들은 이해할 것이다. 마음만은 청춘이라는 말이 새삼스럽지 않은 것이듯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나는 중년이고 그렇게 인정되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 자문하게 되는 것이다. 이 생활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혹은 이 시기를 사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어쩌면 좋을까를 조금씩 곱씹어보고 싶어졌다.


나는 요즘 말 많은 586세대다. 80년대 대학생활을 한 60년대 생이고 50대인 셈이다. 처음에는 386으로 불리더니 나도 모르게 486이 됐고 이제는 586으로 불린다. 조만간 686으로도 불릴 것이다. 무엇으로 불리든 20대의 청년시절을 어제의 일처럼 생생히 기억한다. 만났던 연인들의 얼굴은 잊었을지언정 역사적으로 사건 속의 나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20대 초 어른들로부터 들었던 4.19나 6.25 전쟁 이야기와 전쟁 이후의 어려웠던 시절 이야기를 들으며 언제 적 이야기를 하느냐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런 옛날 고래적 이야기를 하는가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내가 아이들이나 젊은 사람들에게 5.18 민주화운동과 이후 사복경찰이 교내를 활보하며 함께 지냈던 이야기. 처절함으로 시위를 하고 잡혀서 비참하게 매 맞고 전경차에 끌려갔던 이야기 등등 대학생활을 하며 겪었던 민주화 과정의 이야기 그리고 87년의 6.10 항쟁 이야기를 할 때와 비교를 하곤 한다. 잘 따져보니 그때는 지금으로부터 거의 40년 전 이야기인 셈이고 어린 친구들에게는 그 시절 이야기는 역사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인 셈이다. 내가 학생 시절에 들었던 8.15 해방 그리고 전쟁 이야기를 들으며 느꼈던 역사책 이야기와 거의 같거나 그보다도 더 오래전 이야기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면 아뿔싸 하는 생각이 든다. 당시 나에게 이야기해주던 어른 들은 얼마나 생생한 어제의 이야기 같았을까 싶지만 나에게는 오래된, 소위 임진왜란 이야기와 진배없던 것이다. 똑같은 과정을 내가 반복하고 있다.

그렇게 세월은 지나가버렸고 젊은 시절이 계속되리라는 덧없는 기대와는 달리 이제 사회에서 서서히 은퇴해야 할 나이에 접어드는 시기가 되었다. 내 주변의 대학 친구들을 만나볼 때면 그 사실을 더 실감하게 된다. 학교에서 교수나 하는 정도면 아직 정년이 꽤나 많이 남았지만 직장생활을 하는 친구들의 경우 이미 정점을 찍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몇 년 전부터 정년퇴직은 아니지만 명예퇴직을 하며 하나둘씩 회사를 나오더니 이제는 회사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가 별로 없다. 그나마 대기업에 남아있는 친구들도 정년피크제에 걸려 시간을 보내며 월급을 받거나 이미 현업이 아닌 뒷방 늙은이 신세 취급을 받는 위치에 가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제는 쉰세대에 해당하는 그런 중년들이 자신들은 여전히 사회의 주역이라고 생각하고 사회를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에서 586세대는 유독 기득권을 오래 쥐고 있는 세대라는 평가가 많다. 무슨 이유로든 사회의 주도세력으로 부상된지는 오래됐지만 여전히 그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게 다른 세대의 입장에서 본다면 참으로 보기 싫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반면 개인적으로 볼 때 각 개개인들은 이미 무엇인가 삶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을 보내지는 못하는 듯싶다. 가정과 사회에서 은퇴를 생각하며 정리하기를 원하지만 본인은 이제야 비로소 무언가를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제대로 얻었다고 생각하는 그 괴리를 어찌 해결할 수 있겠는가.


중년은 쓸모는 무엇일까. 없는 것일까라는 극단적인 질문을 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경험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내가 얻게 된 삶의 지혜라면 지혜랄 게 있는데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쓸모없는 세대와 인간이 되어가는 세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안 되겠니라고 외치고픈 심정이다. 이제야 비로소 제대로 된 사람들이 되어가는데 그것을 잘 이용한다면 무엇이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문제의식에서 생각해본다. 중년의 쓸모란 무엇인가. 무조건 쓸모 있다고 우기고 싶은 게 아니다. 있다면 찾아야 할 것이고 없다면 만들어 이용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자신들의 주변에서 서성이는 중년들의 얼굴과 모습과 움직임들을 조금은 자세히 살펴보길 바란다. 어쩌면 그들이 왜 주변을 서성이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잘해서 소통이 된다면 약간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 역시 잘 모르는 분야이기도 하다. 내가 살아온 경험은 오늘의 이전까지인 것이지 이후가 아니기에 혹시 내일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면 노년으로 휙 달아나 버린 시간이 아쉽고 무서워 붙잡고 싶은 심정이 훨씬 크기에 오늘을 중심으로 중년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나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 혹시 스스로 깨달아야 할 점과 바꿔야 할 점은 없는지. 그리고 중년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이 한세대를 보내는 우리 사회에서 다음 세대에게 주도 권력을 순조롭게 이어주는 단초가 되지 않을는지. 그런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싶어 진다. 그래서 나의 중년이야기를 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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