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삶을 되돌아 보는 시기와 계기는 확연히 다르다. 누구에게는 앞으로 나아가기 바쁜데 무슨 되돌아볼 일이 있냐며 공격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갈 테고 누군가에게는 오늘 하루가 어제의 잔여물 혹은 전리품쯤으로 여겨지기도 할 일이다. 그게 무슨 연유든 삶의 반추를 위한 시간은 뜻밖에도 의외의 시간과 사건으로 맞이하기 마련이다.
감성팔이를 하자면 2019년 6월 요즘 흔하디 흔한 암수술을 하고 인생을 되돌아보네 어쩌네 하고 다시 사는게 얼마가 소중한 건지를 느낄 기회가 있었다. 그래서인가 내 주변의 것들과 사람 그리고 내가 하는 일들에 대한 의미를 재부여하는 계기를 삼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사람은 변하지 않는 법.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내가 환자라는 사실을 잊고 마치 예전의 나 그대로인 듯 하루하루를 스스로에게 무례하고 존중감 없이 살아가더니 급기야는 스트레스 만땅의 인생앞에서 항복선언을 해야했다. 어쩌면 항복선언이 아니라 책임회피라고나 할까. 암튼 몇 년간 애지중지 만들고 갈고 닦았던 사무실을 홀연히 던져버리고 백수의 길을 택했다. 그리고 또다시 몇 개월의 시간을 보냈다. 백수가 되면 많은 시간을 나와 주변을 위해 천천히 생각하며 살겠다던 그 처연한 의지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어졌다. 어디로 갔지 그 생각들과 결심들이.
주변에서 '몸 생각하며 일해라'. '어찌 직장생활할 때보다 더 바쁘게 살아가냐'는 말을 듣는게 인사말이 될 정도로 동분서주하다보니 스스로에게 자괴감을 갖는다. 단 한번도 제대로 쉬어보지 않았다. 사무실을 그만둔 후 여행을 다녀 오리라던 호기는 코로나19에 속절없이 꺾이고 앞으로 몇 년간은 해외여행은 생각지도 못할 것 같은 우울함이 찾아들었다. 그렇다면 국내에서 여행지를 찾으면 될테지. 그렇게 7월 중순 장마가 한창일 때 비행기 표를 예약했고 또 하필이면 코로나19 환자가 갑자기 생겨나면서 공항을 다녀오는 것조차 기피의 대상이 되는 시기에 반성을 위한 혹은 쉼을 위한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밑도 끝도없이 그냥 전라도 여행을 다니는 일이 어쩌면 국내의 여행지중에는 해외가 아닐 경우 찾게 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지임은 분명하다.
목적은 한가지. 50대 중반을 맞이하고 아주 짧은 시간은 아니지만 곧 맞이하게 될 60이라는 나이, 그리고 나의 인생과 내 주변의 인생들. 굳이 이야기하자면 와이프의 인생, 아이의 미래, 나만의 또 다른 인생 등을 한번은 생각해보고 준비해보자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시작된 여정이었다.
그 여정을 여기서 설명할 길은 없지만 한 가지 상황에 대해서는 명확해지는 듯하다. 역시 오리무중이라는 점이다. 여행의 가장 큰 목적지중 하나가 남해도의 금산이었다. 이미 30여년전 친한 학교 친구의 고향이 남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우리나라의 섬중 남해도라는 섬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경상도와 전라도의 접경지에 속하는 꽤나 큰 섬이자 유명한 산과 바다가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나 무엇보다 친하게 지내는 친구의 고향인지라 한번 정도는 놀러가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던 곳이기도 하다. 언젠가 가야지 하면서 생각만하고 못 가본 곳을 가리라 평생을 살면서 마음에 두고 결심만 해온 결단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다행인지 여행을 떠나기 일주일전 서울을 방문하다 그 친구를 만났다.
"이번 기회에 남해에 가보련다. 금산을 갈까하는데 다른데 추천할 때는 없어?"
나름 자신의 고향을 방문한다는 내 말에 반가움을 표할 줄 알았지만 그 친구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자신도 고향을 떠나온 지 오래된 것은 물론 이미 부모님이 다 돌아가신 상황과 연을 끊어버린 동생이 남아있는 곳. 그나마 연이 있던 누님 한분이 최근에 진주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더 이상 남해와는 갈래야 갈 일이 별로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한다. 하긴 남해한번 놀러가야겠다고 결심했던 순간이 35년이 넘었는데 그 사이 세상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리 없다. 다행히 금산은 찾는 이들이 많아 자동차가 산의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거기서부터 걸어 20분이면 정상엘 갈 수 있고 목적지가 보리암이라는 정도의 단편적인 사실을 듣게 되었다.
여행 다음날 주섬주섬 짐을 챙겨 불이나케 목적지를 향해 떠났다. 기분같아서는 바로 옆에 있는 섬이니 금새 도착할 기세다. 내가 머문 곳이 여수인데 바로 동쪽에 있는 비슷한 류의 섬이 남해도이니 금방일 듯 싶은데 젠장 자동차로 1시간 30분을 가야 목적지에 갈수 있다. 섬이 크긴 꽤나 큰 모양이다. 중간에 광양제절의 한복판을 지나면서 어린 시절 오밤중에 서울서 차를 몰고 친구를 만나기 위해 무작정 방문했던 광양제철이 생각났다. 그 친구는 이제 대한민국을 호령하는 엄연한 국회의원이 되었으니 뭔가 세상은 시간에 따라 저마다의 행로를 찾아 다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가는 도중 어제까지 내리던 비가 나를 반기려나 파란 하늘로 바뀐다. 산의 아랫부분에서 드디어 이 정도 날씨라면 보리암 정상에서 남쪽 한려수도 바닷가를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까지 하게 되었다. 아침 일찍 떠난 덕에 주차장 초입에서 대기없이 산중턱에 만들어놓은 작은 주차장까지 1~2분의 기다림만으로 충분히 출발할 수 있게 됐다. 올라가는 길은 구불구분 바위산을 오르는 자동차길이니 오죽이나 꼬불대고 경사가 급한지 내가 다녀본 몇몇 경사가 급한 길들을 생각나게 한다. 10손가락안에 들어올만한 경사도와 구불구불 곡선이 심한 길이다. 인생도 이같으려나 사실 내 인생이 그렇지 않았던가. 정상을 향해 오르면 무언가 생길 것이라고 시도 때도 없이 업힐을 중단하지 않고 오르고 오르곤 했는데 잡히는 것은 없이 여전히 손에 피멍들고 온몸에 상처투성이로 거의 기어오고 만 상태가 되지 않았던가.
이미 중년이라는 문턱에는 왔는데 아니 보리암을 초입에까지는 도달했으니 이제 화려한 한려수도 앞바다를 보고 감탄할 준비만 하면 된다. 산 정상이래야 5분정도 더 걸리지만 그곳에서의 뷰는 바다가 아닌 다른쪽이다. 문제는 올라가는 내내 그 맑던 하늘에 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한다는 사실. 날씨가 급변하는 것이 아니라 아랫쪽은 아주 해맑은데 위쪽의 안개가 너무 심해 한치 앞도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이게 뭐지? 날씨가 변한 것이 아니라 원래 아침부터 아니 어제부터, 내가 이곳을 방문하고자 결심한 순간조차 이곳의 경관은 바다를 나에게 허락하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3대 해수관음보살이 있는 곳이라는 남해 보리암, 여수의 향일암, 양양의 낙산사. 그곳이 어디든 보리암은 중년이 처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셈이다. 뭐 빠지게 정상이라고 좋은 꼴 볼 줄 알고 식식대며 올랐는데 눈앞에 탁트인 시원상쾌한 경치대신 뿌옇고 아사무사하니 아무것도 구분할 수 없는 그런 회색빛 미래를 일깨워주고 있다.
이곳이 니가 앞으로 계속 가게 될 인생항로이니라. 산중이니 여기서 쉴 수는 없지만 상상하면서 살아가라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나의 중년은 어떠한가. 소년과 청년기를 지나면 매우 안정적이며 세상을 다 얻은 듯한 지혜를 가지고 슬기롭고 차분한 노년을 준비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참으로 매정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그러기에 더욱 인생을 돌아봐야 한다. 내가 무엇을 하였기에 여기까지 왔고 어떤 인생을 살았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노년이 결정난다.
노년의 인생이 결정된 상황에서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정리모드로 삶을 살아가느냐 아니면 지금까지의 억척스러운 인생에서 뭐라도 하나 건져서는 인생의 말미에 자신이 할 일을 찾아가면서 살게 되느냐가 달린 순간이다. 무엇이 옳고 그름이 아니라 본인의 선택일 뿐이다. 보리암에서 아무것도 보지는 못했지만 지금의 내 처지는 확실히 알게 됐다. 비록 만족은 할 수 없지만 사실을 인지하고는 돌아온 셈이다. 삶을 돌아볼 시기는 언제일까. 중년이 되면서 인생의 정상이라고 여겨지는 시기에 앞서 반추의 시간이 필요한 것을 알겠다. 올라오기는 힘겹게 올라왔는데 내려 가는게 힘겨워서 허덕되는 경우를 수도 없이 보지 않았던가. 지금은 고인이 되어버린 박원순 서울시장처럼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 없는 길을 개척하며 살아온 인생이 하루아침에 추락보다 더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봤지 않았던가.
삶을 되돌아봐야 하는 순간과 이유는 그래서 꼭 살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산 이야기를 했으니 엇비슷하게 이야기하자면 산에 오를 때 쓰이는 근육과 내려올 때 쓰이는 근육은 전혀 다르단다. 내려온다고 생각한 순간에는 이제부터는 몸의 근육과 에너지를 새로운 시각으로 조정하며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얼마못가 줄커덩 미끄러지거나 한순간의 나락에 빠지는 순간이거나 곳곳에 도사린 바위덩어리위에서 발생하는 추락사고가 곳곳에서 대기하고 있을테니 말이다. 누군가 산을 내려오도록 도와줄 수는 있지만 그것은 이미 병상에서 맞이해야 할 삶의 종반부이야기일 뿐이다.
중년의 삶의 반추는 무엇보다도 겸손함이 결부되지 않으면 전술적 반성이외에 아무것도 아닌게 된다. 계속 오르는 공격을 할 상황이 아닌 경우 등산을 위한 돌격 앞으로는 몸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인생의 중요한 곳곳을 망가뜨리며 나의 실체에 대해 경고를 계속 울리고 있는 셈이다. 그 소리에 귀기울이는 것이 필요한 일이다. 현명함이란 그래서 꽤나 중요한 덕목이라는 생각이 가득하다.
많은 것을 현실로 인정하는 게 너무나 어려운줄 왜 모르겠는가. 계속해서 관성에 의한 삶의 속도가 결국 몸과 마음에 부담을 주고 정작 이제는 마라톤이나 장거리 달리기를 해야 할 시기에 여전히 단거리 속도전을 우기기만 한다면 몸은 고꾸라질 것 말고 무엇이 남겠는가 말이다.
인생을 되돌아볼 시기를 갖게 된다는 것이 그런 의미에서 더욱 중요한 일이다. 내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내 삶의 방식에 대해 반추할 수 있다면 그때는 중년이라는 현실을 진정 받아들일 수 있는 시기가 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