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중년은 언제부터였는가를 다시 생각해본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몸이 쇠락했음을 뼈저리게 느낄 때가 중년임을 인정하는 때가 아닐까. 그럼에도 정신은 영원히 중년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할 것이다. 마음은 청춘이라는 노인네들의 심정을 십 분 이해할 만하다.
나이를 들어가면서 가장 걱정스러운 게 치매에 관한 내용이다. 자신의 소중한 기억을 스스로 갖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면 인간이 스스로 자신임을 인정하는 것이 어쩌면 추억이나 기억일 텐데 그것이 없어져 버린다고 생각하니 무섭기조차 하다. 다행히 돌아가신 어머니와 살아계신 아버님 모두 치매와는 상관없는 분들이었지만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보고 듣는 것이 치매나 알츠하이머이기에 걱정이 매우 앞선다. 그 걱정의 시작은 내가 걸리면 어쩌나 하는 기우에서 시작된다.
많은 지매 노인들이 자식을 못 알아보거나 남편이나 아내 역시 낯선 사람으로 인식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나와 아는 집안사람 역시 오랜만에 나타난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옆에 있던 딸에게 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근데 저 잘생긴 젊은이는 누구요?"
물론 머지않아 정신이 다시 돌아와 아들을 알아보기는 했지만 그 사실을 들었던 당사자의 마음은 어떤 느낌이었을까를 생각해보면 뭐라 말하기가 쉽지 않다.
원인이 무엇이었든 노인의 육체 상태를 볼 때 이미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경우가 아니겠는가. 그 정도는 아니어도 솔직히 언제부턴가 몸이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고 한계를 넘었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아침에 도저히 일어나지 못하는 순간. 흔히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모든 이유를 대곤 하지만 뭉뚱그린 그 이유로 다 해결될 일이 아니다. 혹은 젊은 시절처럼 술을 진탕 먹거나 밤새도록 일을 하고 다음날을 맞는 순간, 무너져버린 내 육신의 허무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어, 예전에는 몇 날 며칠 날밤을 까도 끄떡없었는데'라든가
'소주 몇 병 정도는 기본으로 마셨어도 다음날이면 별일 없이 일어나서 일을 했었는데' 등
너무나 현실적이지 않은 이야기를 마치 무슨 무용담이라도 떠벌이듯 아주 쉽게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실제로 내 육체에 그런 순간이 몇 번 있었다 하더라도 그런 일들은 내 몸이 결코 견딜 수 없는 조건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던 게다. 그래서 뻥 아닌 뻥을 쳐가며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한 놀라움을 펴거나 스스로 얼마나 튼튼했었는지를 통해 지금의 상황이 별거 아니며 곧 회복될 것이라는 암시를 주곤 한다.
근데 지내고 보니 그게 다 뻥이라는 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건강검진을 매우 두려워한다. 건강검진을 받고 나면 생각지도 못했던 다양한 암들이 툭툭 튀어나올 거 같고 장기의 모든 기능이 나이 때 이하로 급격히 쇠락한 상태로 나올까 봐 사실을 확인하기 싫다며 병원 건강검진을 두려워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직까지 특별한 외상이나 증상이 없으니 별일이 없을 거야라는 자기 최면을 걸면서 시간을 보낸다. 이 같은 일은 중년에만 해당되는 사항은 아니다. 중년에 허무하게 유명을 달리하는 인사들도 많지만 그보다 훨씬 젊은 시절에도 안타깝게 이 세상과 종말을 고하는 인사는 얼마든지 있다.
물론 불의의 사고로 인한 죽음의 경우라면 뭐라고 할 말은 아니지만 그렇지 않고는 평균수명이라는 게 젊은 시절에 생을 마감한 사람들과 나이 들어 버리는 사람들과의 평균치를 내는 수명인지라 살아있는 사람들은 평균수명보다 더 오래 살아갈 가능성은 훨씬 높다. 그런데 왜 뭐가 문젠데?
건강하게 오래 살지 못하니까 문제다. 나이 든 노인네들을 요양원에 보내고 홀로 쓸쓸히 생활하는 상황을 알고 있는가. 그 노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살던 평생을 송두리째 부정당하거나 빼앗겨버린 채 간병인의 보호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삶을 지낸다. 자식들의 편의에 의해 그렇게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보내진다.
나 역시 이를 몸소 실천하는 인물들 중 한 명이다. 정확히는 장모님의 경우이니 처가 실천하는 것이다. 장인이 살아계실 때는 두 분이서 살 수 있었지만 한분만 남겨진 상황에서 거동이 불편한 분이 혼자서 밥해먹고 모든 생활을 다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 실제로 여러 차례 목욕탕에서 넘어져 곳곳의 골절상을 입고 처가 무척이나 고생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예전처럼 자식이 부모님을 모시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보다 조금 더 인생을 사신 선배들의 경우는 어쩔 수 없이 자식들이 싫어해도 부모님을 모시는 것이 불가피한 일들이었다. 이로 인해 지극정성을 다하는 며느리에 대한 미담이 언론에 노출되는 경우도 많았고 부모를 천덕꾸러기 취급하면서 홀대하는 경우는 천인공노할 나쁜 자식으로 세간의 지탄을 받는 일들이 허다했다.
그런데 실제로 그 같은 일들이 벌어졌을 때 이를 감당할만한 자식들은 거의 없다. 우리 세대는 아직도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주장과 현실적으로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사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나이들이다. 불가피하게 요양시설에 보내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최선의 선택인 경우가 많다. 자식들이 사회에 나가서 적응하며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나이가 점점 늦어지고 스스로는 노후생활을 어찌해야 할지를 모른 채 자식을 잘 키우거나 부모님과의 기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는 관성을 가진 세대들이다. 그러면서도 나의 자식 세대가 나를 결코 부양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적잖이 걱정스러운 세대이기도 하다. 사회보장이 노인세대에게 제대로 운영되지도 못한 상태에서 급격히 중년을 벗어나 노년으로 달리고 있으니 이런저런 걱정이 앞을 가린다고 해야 하나. 노인들의 수명은 늘어나지만 그들의 삶의 질은 결코 늘어나지 않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고 앞으로를 예측하건대 내가 나이가 들어가면 80이나 90살 정도가 아니라 100살이 기본적인 수명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너무나 흔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진짜 재수가 없으면 앞으로 내가 살아온 나이만큼 더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의 재정 상태나 건강상태, 정신적인 상태를 고려하면 결코 축복일 수 없는 상황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육체의 한계를 느끼는 시간이 나에게는 중년의 시작이다.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암을 선고받았고 설마설마했는데 당뇨가 확 생겨버렸다. 그 이후로 내 생활은 많이 변했다. 오늘 하루가 내 생애의 가장 건강한 하루이기를 바라면서 살아가게 되었다. 생활의 중심이 건강과 몸을 돌보는 시스템으로 바뀌어갔다. 그전까지는 두려움이 중년의 기준이었다. 50줄이 되도록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계속해서 두렵기만 했던 때가 꽤나 긴 시간이었는데 정신적으로 보면 나는 그때 중년병을 앓았던 것이 아닐까.
그때 몸을 좀 더 간수했더라면 내 몸을 좀 더 사랑했더라면 나는 정신적인 침체나 쇠퇴에도 불구하고 내가 중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데 꽤나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고 40대와 같은 장년의 수준으로 나를 여기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은 한순간이라 하지 않던가. 차곡차곡 쌓이는 피곤과 스스로에 대한 무리가 어느덧 외부로 드러나면서, 그것도 아주 우연한 기회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내 몸이 내 의지를 버텨내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옛날 같았으면 증상도 없었기에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버렸을 나이, 환갑도 맞아보지 못하고 죽어버렸겠지만 다행히 제2의 인생기를 맞았다. 현대의학의 승리이기도 하지만 그 의학에 대한 신뢰는 여전히 내 몸을 제대로 아껴주지는 못하고 있다.
최근 들어 내 몸에 대한 한계는 어이없게도 머리를 많이 굴리다 보니 얻게 된 불면증이라는 놈한테 당하고 있다. 아무리 졸려도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머릿속이 다양한 생각으로 밤새도록 맴돈다. 기계가 돌아가는 톱니 소리가 들리는 듯 머리가 돌아가고 있다는 상상을 멈출 수가 없다. 아마도 몸이 내 한계를 넘어갔음에도 정신을 여전히 청년처럼 굴리고 있는 불일치를 극복하면 좀 더 건강한 시간과 중년을 보낼 수 있을 게다.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하지만 젊은 시절부터 몸과 머리를 한없이 사용해도 될 듯 결심을 해버린 관성을 끊어내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습'이 되어 버렸다. 그 습을 인정하고 차분히 가라앉히는 임무를 부여받았다는 느낌을 받은 시기가 나에게는 중년 생활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여전히 일을 하려는 욕심을 계속 가지고 살지만 몸은 따라와 주지 않는 때가 됐다는 것을 어떻게 해야 내 몸이 아니 내 영혼이 알게 해 줄 수 있을까.
중년은 여러모로 불일치와 아이러니가 겹치는 시기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