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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후반을 보내는 일

by 너구리


얼마 전 90세를 목전에 둔 아버지가 홀로 되셨다.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하면서 지내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자식으로서 함께 살아야 하는 게 맞지만 그 같은 상황을 허락하기에는 삶의 무게가 아직은 꽤나 무겁다. 논의 끝에 당분간 혼자 지내시기로 결정하면서 자식으로서 고민이 많아졌다.


90세가 다된 노인을 혼자 지내게 하는 게 결코 정상적이지 않다. 남들보다 꽤나 건강하신 분인데 아무리 정정하시다고 해도 혼자 지내는 일이 쉬울 리 없다. 주민센터와 사회복지센터에 문의해본다. 홀로 계신 노인분을 케어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이런저런 가능성을 타진해본다. 가끔 전화를 걸어주거나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방문 혹은 생활에 도움을 주는 일을 해주는 시스템은 없는지 물어본다. 결론적으로 치매나 중증장애가 아니고서는 행정에서 지속적으로 케어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에 아쉽게 전화를 끊었다. 다행히 여기저기 전화한 끝에 일정 비용을 주면 일상생활에 대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알려왔다. 그나마 비용을 들여서라도 홀로 계신 분을 돌봐야 한다는 걱정에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다가올 시간이 걱정이다. 아이들의 교육이나 자신의 삶의 문제를 지역이나 주변 사람들과 함께 논의하며 풀어가는 일에는 거의 경험이 없는 삶을 사셨다. 모든 일들은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던져지며 이를 헤쳐 온 삶을 살아오신 때문이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공동체나 지역과 함께 살아가는 삶에는 여전히 낯설고 경험이 부족하다 할 것이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거의 이렇다.


우리 사회의 많은 노인들이 인생의 후반을 기계적으로 마친다. 혼자 살기 힘들어지면 가족이나 집에서 벗어나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시간을 보낼 것이다. 병이 심해지면 중환자실에서 언제 세상과 인연을 끊을지 모른 채, 가족들은 임종을 볼 수 있을지 초조해하며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이윽고 때가 되면 병원 영안실에 머물다 어느 장례식장에서 조문객을 맞을게다. 이 과정이 자연스럽다 해도 어느 순간 자신이 살던 집은 물론 익숙한 사람들과 익숙한 장소와 익숙한 물건들을 다 버려둔 채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서 보내게 되는 인생의 말년에 대해서는 영 미덥지 않다. 이대로라면 나 역시 비슷한 과정을 겪을 것이다.


많은 고민이 함께 한다. 왜 혼자 계시는 노인들이 중증장애와 치매가 아니면 사회적으로 그냥 방치되어야 하는지 잘 모를 일이다. 최소한 그들이 어떻게 하루를 보내게 되는지 어떤 외로움에 처하면서 삶을 시간들을 보내게 되는지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다. 치료뿐 아니라 현재 살아가는 노인들이 사회와 함께 연결되어 살아갔으면 좋겠다. 국가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


평생을 살아온 집과 관계를 벗어나 낯선 곳에 놓이는 상황도 영 못마땅하다. 지역 혹은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나이가 들어서도 공동체에서 함께 지내던 사람들이 같이 늙어가고 서로를 케어하면 가장 좋을 일이다. 삶의 질을 이야기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인생의 매 순간 중요하지 않고 의미 없는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몸이 아픈 일은 무척이나 괴로운 일이지만 자신의 생활터전에서 떨어져 누군가와 함께 하지 못하는 외로움 역시 삶의 질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일은 아닐까.


나는 나의 죽음의 시간에 의사나 간호사에게만 둘러싸인 내 모습을 보이진 않았으면 좋겠다. 내 가족이나 함께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삶을 정리하는 그런 시간을 가지고 싶다. 그게 개인의 존엄을 지켜주는 일이고 삶의 존엄을 이야기하는 수준이 되기를 바란다. 커뮤니티 케어라 했던가. 노령화 사회에서 지역이나 공동체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아닐까.


이 재 근 / 컬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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