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구리 Jan 06. 2023

5. 채식카페와 식당을 다니다

채식을 선언한 지 5주. 약간의 원칙이탈을 고려하더라도 굳세게 잘 살아남고 있다. 주변에서 약간 놀라거나 놀리기도 하지만 내 처지를 아는 사람들의 경우는 그럭저럭 이해를 하는 분위기다. 다만 고깃집을 연말 회식자리로 잡았던 경우나 초밥을 즐겨 먹던 사람들의 경우 나와의 만남에서 조금은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특히 고깃집에 앉아 고기냄새 풀풀 풍기는 상황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기란 쉽지 않다. 같이 곁들여 나온 간장소스 저림 양파를 먹으라는 농담 어린 멘트를 받고 있지만 아직은 잘 버티고 있다. 흔히 후식으로 나오는 된장찌개로 식사를 때우지만 자리를 어색하게 만들 생각은 없다. 고깃집에 가서는 한두 점만 먹고 된장찌개에 밥만 말아먹던 지인의 모습이 오버랩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견딜만하다.


여전히 매 끼니마다 고민스러움이 남는 것은 마찬가지다. 평상시야 가능하면 집에서 점심식사를 해결하려고 애쓰는 편이다. 오전 일은 세상이 좋아진 관계로 온라인 회의로 정리를 하고 나머지 시간은 점심때까지 작업을 하면 된다. 오후에 나선 길을 조금 길게 끌고는 저녁에 집에 와서 그럭저럭 저녁식사를 하면 된다. 다행인 것은 연말을 맞이하여 그동안 뿌려놓았던 씨앗들이 조금씩 열매를 맺고 있고 그 과실의 부스러기가 식생활에 도움을 주고 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일 년 내내 제주 밭작물을 가지고 이런저런 프로젝트 그룹들에게 작업을 시키고 모임을 만들고 상품을 만드는 일들을 해 놓았더니 결과물이 이제 나오고 있다. 우선 제주 밭작물을 활용한 밀키트를 개발한 팀에서 상품의 결과물을 평가하기 위한 자리를 만들었다. 실제로 밥에 야채 토핑을 넣고 밥을 지어 시식하는 행사를 하고 나니 맛있는 야채밥들이 몇 봉지 생겼다. 또 밀키트와 가정 간편식을 만드는 팀에게서는 샘플이 몇 개 생기고 농부들의 모임에서는 농작물로 풍성한 저녁만찬을 즐기는 기회를 갖게 해 준다. 덕분에 남은 빵과 야채구이를 한 봉지 싸가지고 염치없이 집에 돌아온다. 사람들도 내가 채식을 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남은 음식을 싸주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내가 어디까지 동물성단백질을 먹지 않는지 궁금해한다. 나도 몰랐던 사실이지만 채식에도 종류가 많은 관계로 계란은 먹는지, 우유는 어떤지, 생선과 어패류는 먹는지, 아니면 아무것도 먹지 않는지 등등 여러 가지에 걸쳐 질문을 던진다. 사람들은 내가 무심코 불현듯 아주 우연한 기회에, 그냥 막 던지듯 시작한 채식이라는 사실을 믿기가 힘든 모양이다. 무언가 대단한 논리적 이론적 정리를 한 후 그에 맞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사실 비건들을 자주는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몇몇 인물들의 경우 논리 정연한 이론에 기초해 자신의 식생활을 엄격히 조절하는 경우를 보기도 했다.


이런 면에서는 연말에 채식을 시작하기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같은 잔치나 성찬이 매일 있을 리가 만무하다. 토요일처럼 제주에 와서 10년이 되도록 거의 빠지는 일없이 주말에 산으로 들로 나도는 내게는 이제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혼자서 무엇을 먹기가 쉽지 않은데 채식을 한다는 것이 걷거나 혼자서 헤매거나 할 때는 곤란함을 겪는다. 많은 경우 동행이 있지만 그 동행에게도 채식을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조심스럽게 동행에게 제안한다. 


"채식브런치 카페를 소개받은 적이 있는데 나쁘지 않다. 가봅시다."

 나름 유명한 식당 아니 브런치 카페였지만 같은 곳에 두 번을 연달아 가니 지겹다. 그래도 채식을 전제로 하는 장소이니 체크해 놓는다. 다른 농부로부터 소개받은 채식식당의 주소를 다시 물었다. 지난 주말에는 그곳을 찾았다. 연밥이 주메뉴인 재식식당.  장소로만 따지자면 옆의 '일관도'라고 적혀있는 커다란 종교단체와 관련 있는 식당인 듯싶지만 암튼 채식식당이니 내비로 찾아 나선다.


손님들은 젊은이들은 거의 없고 나이 드신 분들이 대부분이다. 나 역시 젊은 축에 속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언뜻 봐도 나보다 다 나이가 많아 보인다. 이 종교단체 관계자들인가. 꼭 그렇지만도 안은 듯싶다. 어찌 됐든 식사는 나쁘지 않다.


카페와 식당을 찾아 나서기 시작하면서 전에는 안 하던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요리를 해볼까 아니면 빵 굽는 일을 배워볼까. 사실 나는 요리에 관한 한 전적으로 평생을 멀리하면서 살아온 터라 내가 발효빵을 직접 구워 먹겠다거나 야채요리를 만들어 보겠다거나 하는 생각을 할 일이 단연코 단 한 번도 있지 않았다. 그런데 그걸 요즘 고민하고 있다. 마치 중산간에 작은 텃밭이 있는 집으로 이사 오면서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채집생활의 즐거움을 만끽하고서 '농사를 지어야겠어요'라는 시를 쓴 것과 유사하다. 이 시로 나는 공교롭게 지난해 시인 등단을 하게 됐다. 결국 진심을 담아야 솔직한 이야기가 나오듯 절실함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요리나 제빵에 관심이 들기 시작하다니. 근데 아직은 조금 더 집밥과 식당밥들을 섭렵해보고 진짜로 채식으로 생활유지가 가능한지 경험을 더 해봐야겠다. 


이제 한 달이 넘었으니 잘 견딘 내게 축하도 해줄 일이다. 체중도 자연스럽게 빠져 미세린 풍선 같던 몸과 손의 부기도 많이 빠졌다. 몸이 얼마나 좋아졌을지는 몰라도 일단 체중면에서는 긍정의 효과가 있으니 그거면 됐다. 다른 부작용은 없으려나 있으면 어쩌지. 몸이 너무 피곤하고 여러모로 불편한 또 다른 현상이 생겼다는 강박관념도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혹시 채식과 관련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아도 일 때문에 머리가 깨질 판인데 먹는 것조차 나에게 속 시원한 답을 주고 있지 않으니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다. 조금은 더 진행해볼 일이다. 근데 언제까지 계란이나 어패류 등은 먹지 않아야 하는 거지? 진짜 계속 안 먹는 게 맞나? 아직 잘 모르겠다. 집사람도 그건 불편한지 어패류는 먹어도 괜찮다며 자꾸 권하고 있는 중이다. 아직은 거부하고 있지만 글쎄 판단이 잘 안 선다. 기준이 없으니 판단도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막무가내가 어디까지 통할런지 일단 그것이 나도 궁금하다.


<5편 끝>

매거진의 이전글 4. 제주밭 한 끼 캠페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