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몇 살로 살아볼까?
불쑥불쑥 나이답지 않은 나이가 튀어나오곤 합니다.
행색은 어른인데 입맛은 어린이
군대 가서는 철들었다가
청소년기 마냥 방황도 하고
정교한 장난감 앞에선 키덜트
배우고 경험한 건 많아졌는데
어쩔 땐 나이 많은 청소년
대소사를 치를 땐 듬직하면서
사소함에 밤잠 못 이루고
학교를 마칠 즈음엔 성숙해진 듯하다가
직장에선 그 어느 초등학생보다 유치해지기도 여러 번
내가 낳은 자식인데
놀다 보면 정신연령이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대화하다 보면 더 감동스러운 말을 듣기도 한다
할머니인데 소녀 같고
아저씨인데 걸음걸이가 귀엽고
나이는 더해가지만
나잇값만 하며 살진 못하는 우리
이런 걸 보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곧
멈춰진 나와 새로운 나를
덧대 놓는 게 아닐까 싶다
특정 나이를 모두 소화해
해마다 리셋되는 게 아니라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언제고 꺼내 보일 수 있도록
세월을
겹쳐 두는 것 말이다
나였던 그 아이는
아직도 내 안에 산다
오늘은 몇 살로 살아볼까?
이 글은 아주 오랜만에 닭꼬치를 먹다가 시작됐습니다.
어쩌다 입가에 양념이 묻게 됐는데
그 찰나에 고등학생 때 '눈물 꼬치'를 사 먹던 기억이 났습니다.
아주 매운 양념의 닭꼬치였는데 이걸로 학업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곤 했죠.
아, 사실 맛있어서 먹었습니다.
어릴 때 먹던 음식을 오랜만에 먹으니
고등학생 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오감은 이렇듯 시절을 불러일으킵니다.
음악을 듣는 것도, 음식을 먹는 것도 그렇죠.
어른이 돼서 만난 사람들에게도 언뜻언뜻
제가 본 적 없는 어릴 적 모습이 스칠 때가 있습니다.
사소하게는
세상의 문명에 능숙하지 않은, 서툰 어른들의 질문을 받을 때
갑자기 쏟아진 비로 웃음을 띄우며 난리가 난 사람들을 볼 때
열차를 놓칠까 봐 땀을 내며 허둥지둥 뛰는 사람을 볼 때
부모님이 산처럼 커 보이지 않을 때
교복도 어울릴 것 같은 앳된 얼굴의 신랑 신부가 결혼식 버진로드를 걸을 때도 그래요.
며칠 전 오래된 인연들을 만났습니다.
청첩장을 주고받으며 MZ 세대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광고동아리 사람들이라
'아이돌 노래에 관심 있는지, 요즘은 어떤 그룹이 인기가 많은지
그 그룹 노래 중 아는 것이 있는지'를 공유하며
트렌디한 것을 잘 쫓아가고 있는지 체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MZ 세대에게 놀림받지 않으려면 좀 알아두어야 한다면서요.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이 느껴졌습니다.
과거에 저도 선배들을 나이로 놀린 적이 있거든요.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란 곡을 서른을 앞둔 언니, 오빠들에게 많이 불러줬습니다.
하지만 막상 제가 서른이 되었을 땐 오히려 듣지 않는 음악이 되었습니다.
스물다섯 살 이전엔 한두 살 차이가 크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제가 열 살을 더 먹어도 체력은 티를 낼지언정
마음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스물다섯을 쳐다보는 서른다섯의 마음을 마흔다섯에 갖게 될 것 같아요.
나이 듦.
마음은 늙지 않았는데
새로운 것들이 치고 들어와
내가 낡았다고 주장하는 건 아닐까요?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로 유명한 황현산 문학평론가는 트위터에서 이런 말을 했어요.
이 이야기에 무척 공감하며 오늘 작가의 말을 마칩니다.
내가 살면서 제일 황당한 것은 어른이 되었다는 느낌을 가진 적이 없다는 것이다. 결혼하고 직업을 갖고 애를 낳아 키우면서도, 옛날 보았던 어른들처럼 내가 우람하지도 단단하지도 못하고 늘 허약할 뿐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늙어버렸다. 준비만 하다가.
한 방송에서 VJ가 어떤 할아버지의 청소년 시기의 흑백사진을 가리키며
어릴 적 사진을 보면 어떠냐고, 조금은 의도된 질문을 던졌습니다.
예상 대답은 "어렸을 때 인물이 좋죠. 까마득합니다" 였을 거예요.
그런데 그 할아버지의 대답은 조금 의외였어요.
"나 같아요. 옛날 사진도 나 같아요."
그러고보니 그 청년은 할아버지를 꼭 빼닮아 있었습니다.
마음은 늙지 않았는데 항상 먼저 늙는 것이 외모인가 봅니다.
이 글이 당신의 삶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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