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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랑 Mar 24. 2023

우리 아기 처음 만난 날

임신 5주차, 뜻밖의 선물을 받다

까꿍이 첫 초음파 사진


결혼식 한 달 전, 뜻밖의 선물을 받다


우리 부부는 2022년 11월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런데 식을 올리기 한 달 전쯤, 우리에게 너무나 소중한 생명이 찾아왔다. 뜻밖의 소식이라 처음에는 놀랐고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우리는 감사해하며 행복해했다.

나는 나름 규칙적으로 생리를 한 편인데, 9월을 건너뛰고 10월 초까지 생리가 시작되지 않아서 의아해했었다. 그러던 중 팬티에 갈색의 혈흔이 묻어 나와 처음에는 생리혈인 줄 알았으나 계속해서 나오는 건 아니어서 나도 모르는 새로운 문제가 생긴 줄 알고 불안했다. 남편 퇴근할 시간에 맞춰 같이 산부인과에 가 보기로 했고 그곳에서 우리는 전혀 생각지도 못하게 임신 사실을 마주한 것이다. 


의사쌤은 초음파를 보자마자 임신이라고 하시며 계획한 거냐고 물으셨는데 사실 우리는 계획하지 않았어서 당황함이 컸다. 우리가 피임 없이 산 것은 아니지만, 남편과 7년을 연애하면서 결혼을 앞둔 터라 피임에 좀 마음이 느슨해진 것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임신이 되었고 나는 조금은 황당하면서도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의사쌤은 나의 당황한 표정에 걱정스러운 눈빛이었지만 임신을 축하드린다며 곧바로 임신확인서를 발급해 주셨다.




'오빠 아빠 됐네.'


진료실을 나오자마자 내가 남편을 보고 한 첫마디는 '오빠 아빠 됐네.'였다. 남편은 무슨 허깨비를 본 듯한 표정으로 두어 번 되물었고 나는 초음파 사진을 보여주면서 정확히 얘기했다. 우리가 부모가 되었다고. 조용한 산부인과에서 소란을 떨고 싶지 않았으므로 얼른 진료비를 계산하고 밖으로 나왔다.

남편은 산부인과를 나와 건물 복도 한 편에 잠시 서더니 초음파 사진을 빤히 보곤 갑자기 펑펑 울기 시작했다. 7년을 사귀면서 남편의 우는 모습을 본 횟수는 다섯 번도 채 안 되는데 그중 한 번을 그때 보았다. 남편은 자기 인생에 아기는 없을 줄 알았다며 감격스러워했고 자기가 아빠가 된다는 생각에 중학생 시절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난다며 펑펑 울었다.


남편의 우는 모습을 보니, 이렇게나 감격하고 좋아할 줄 알았으면 아기 없이 딩크족으로 살자는 얘기는 섣부르게 안 했을 텐데 결혼하면 아이 없이 살자는 내 말에 그동안 티는 못 내고 속으로 아쉬워했을 걸 생각하니 미안해졌다. 더불어 남편의 모습에 나 또한 울컥하면서 좋은 엄마, 부모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우리 아기 태명 '까꿍이'


임신 5주차였고 초음파상으로 난황과 아기집이 보이는 상태였다. 아기집 위치도 좋다고 했고 자궁도 깨끗하다고 했다. 너무 다행이었다. 이때만 해도 극초기여서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될지 모든 게 다 미지의 세계였지만 내 인생에 나와 사랑하는 사람을 닮은 아기가 생겼다니 생각지 못했던 축복 같은 일이 내게도 일어나서 그저 신기하고 감사했다.


사실 우리 부부 인생에 아기가 있어야 한다면 그때가 가장 적기였다고 할 수 있었다. 나도 그렇고 남편도 그렇고 둘 다 몸과 마음이 가장 건강하고, 결혼을 앞두고 있고, 신혼집도 괜찮은 집을 구한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결혼식 전까지 10키로를 빼기 위해 매일같이 운동과 식단을 병행하고 있었고, 결혼식 한 달 남은 그 시점까지 9키로를 감량한 상태였다. 남편 역시 매일같이 운동, 식단을 같이 하고 있었다. 

나는 2년간의 공무원 시험 준비를 끝내고 새로운 일을 해 보려고 준비 중인 때였고 나의 마음과 정신은 직장인이었을 때보다, 공시생이었을 때보다 훨씬 안정적이었고 늘 겪던 불면증과 우울증도 거의 없던 상황이었다. 아마 우리의 몸과 마음이 가장 안정적이고 편안했고 건강했기에 아기 천사도 마치 그걸 안다는 듯이 찾아와 준 게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가 이전보다 조금 더 나아진 지금 찾아와 줬다는 점에서도 아기 천사에게 너무 고마웠다.   


남편과 건물을 나와서 늦은 저녁을 함께 먹으며 두런두런 얘기했다. 같이 건물 복도에서 한바탕 눈물 쇼를 언제 벌였냐는 듯, 걱정 반 설렘 반으로 임신에 대해 우리끼리 소소하게 자축도 했다. 그때 태명을 지었고 나는 깜짝 놀래키듯 우리에게 온 아이니 '까꿍'이라고 짓자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까꿍이를 처음 만났고 결혼식 한 달 전, 너무나도 큰 선물을 받았다. 시간이 좀 흐른 뒤에 이 글을 쓰고 있지만, 아직도 그날의 감정들을 잊지 못한다.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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