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5주차, 뜻밖의 선물을 받다
우리 부부는 2022년 11월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런데 식을 올리기 한 달 전쯤, 우리에게 너무나 소중한 생명이 찾아왔다. 뜻밖의 소식이라 처음에는 놀랐고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우리는 감사해하며 행복해했다.
나는 나름 규칙적으로 생리를 한 편인데, 9월을 건너뛰고 10월 초까지 생리가 시작되지 않아서 의아해했었다. 그러던 중 팬티에 갈색의 혈흔이 묻어 나와 처음에는 생리혈인 줄 알았으나 계속해서 나오는 건 아니어서 나도 모르는 새로운 문제가 생긴 줄 알고 불안했다. 남편 퇴근할 시간에 맞춰 같이 산부인과에 가 보기로 했고 그곳에서 우리는 전혀 생각지도 못하게 임신 사실을 마주한 것이다.
의사쌤은 초음파를 보자마자 임신이라고 하시며 계획한 거냐고 물으셨는데 사실 우리는 계획하지 않았어서 당황함이 컸다. 우리가 피임 없이 산 것은 아니지만, 남편과 7년을 연애하면서 결혼을 앞둔 터라 피임에 좀 마음이 느슨해진 것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임신이 되었고 나는 조금은 황당하면서도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의사쌤은 나의 당황한 표정에 걱정스러운 눈빛이었지만 임신을 축하드린다며 곧바로 임신확인서를 발급해 주셨다.
진료실을 나오자마자 내가 남편을 보고 한 첫마디는 '오빠 아빠 됐네.'였다. 남편은 무슨 허깨비를 본 듯한 표정으로 두어 번 되물었고 나는 초음파 사진을 보여주면서 정확히 얘기했다. 우리가 부모가 되었다고. 조용한 산부인과에서 소란을 떨고 싶지 않았으므로 얼른 진료비를 계산하고 밖으로 나왔다.
남편은 산부인과를 나와 건물 복도 한 편에 잠시 서더니 초음파 사진을 빤히 보곤 갑자기 펑펑 울기 시작했다. 7년을 사귀면서 남편의 우는 모습을 본 횟수는 다섯 번도 채 안 되는데 그중 한 번을 그때 보았다. 남편은 자기 인생에 아기는 없을 줄 알았다며 감격스러워했고 자기가 아빠가 된다는 생각에 중학생 시절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난다며 펑펑 울었다.
남편의 우는 모습을 보니, 이렇게나 감격하고 좋아할 줄 알았으면 아기 없이 딩크족으로 살자는 얘기는 섣부르게 안 했을 텐데 결혼하면 아이 없이 살자는 내 말에 그동안 티는 못 내고 속으로 아쉬워했을 걸 생각하니 미안해졌다. 더불어 남편의 모습에 나 또한 울컥하면서 좋은 엄마, 부모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임신 5주차였고 초음파상으로 난황과 아기집이 보이는 상태였다. 아기집 위치도 좋다고 했고 자궁도 깨끗하다고 했다. 너무 다행이었다. 이때만 해도 극초기여서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될지 모든 게 다 미지의 세계였지만 내 인생에 나와 사랑하는 사람을 닮은 아기가 생겼다니 생각지 못했던 축복 같은 일이 내게도 일어나서 그저 신기하고 감사했다.
사실 우리 부부 인생에 아기가 있어야 한다면 그때가 가장 적기였다고 할 수 있었다. 나도 그렇고 남편도 그렇고 둘 다 몸과 마음이 가장 건강하고, 결혼을 앞두고 있고, 신혼집도 괜찮은 집을 구한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결혼식 전까지 10키로를 빼기 위해 매일같이 운동과 식단을 병행하고 있었고, 결혼식 한 달 남은 그 시점까지 9키로를 감량한 상태였다. 남편 역시 매일같이 운동, 식단을 같이 하고 있었다.
나는 2년간의 공무원 시험 준비를 끝내고 새로운 일을 해 보려고 준비 중인 때였고 나의 마음과 정신은 직장인이었을 때보다, 공시생이었을 때보다 훨씬 안정적이었고 늘 겪던 불면증과 우울증도 거의 없던 상황이었다. 아마 우리의 몸과 마음이 가장 안정적이고 편안했고 건강했기에 아기 천사도 마치 그걸 안다는 듯이 찾아와 준 게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가 이전보다 조금 더 나아진 지금 찾아와 줬다는 점에서도 아기 천사에게 너무 고마웠다.
남편과 건물을 나와서 늦은 저녁을 함께 먹으며 두런두런 얘기했다. 같이 건물 복도에서 한바탕 눈물 쇼를 언제 벌였냐는 듯, 걱정 반 설렘 반으로 임신에 대해 우리끼리 소소하게 자축도 했다. 그때 태명을 지었고 나는 깜짝 놀래키듯 우리에게 온 아이니 '까꿍'이라고 짓자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까꿍이를 처음 만났고 결혼식 한 달 전, 너무나도 큰 선물을 받았다. 시간이 좀 흐른 뒤에 이 글을 쓰고 있지만, 아직도 그날의 감정들을 잊지 못한다.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