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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스름빛 Jun 27. 2017

‘지금’ ‘여기’의 작동 원리를 찾아서

지그문트 바우만의 <사회학의 쓸모>,를 읽고 

사회학은 유독 인기가 없는 학문이다. ‘인문학’ 열풍이 불어도 ‘사회과학’인 사회학은 인기가 올라가지 않는다. 얄팍한 심리학 서적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는 것과 달리 사회학 서적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대학에서 인기 없는 학과들을 통폐합한다는 뉴스가 들려올 때나 사회학은 언급된다. 


그렇다면 사회학은 쓸모가 있는가. 유명한 석학이자 사회학자인 지그문트 바우만은 <사회학의 쓸모>를 통해 대답한다. 이 책은 2012년 1월과 2013년 3월 사이에 지그문트 바우만과 두 명의 사회학자가 나누었던 대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질문에 대한 바우만의 대답, 녹음 기록과 편지, 바우만 텍스트의 단편들을 모아 사회학이란 무엇인가사회학을 왜 하는가사회학을 어떻게 할 것인가사회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의 네 가지 주제로 분류하여 배열했다. 


질의응답식의 구어체로 쓰여 있지만 바우만의 사상 전반에 관한 질의응답이므로 배경지식 없이 읽기에는 어렵다. 번역의 과정을 거치면서 난해해진 부분도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현재의 사회학을 이해하고 사회학의 쓸모를 논의해야 한다면 이 책이 적합한 가이드북이다. 


사회학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인간 사회와 인간의 사회적 행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바우만은 “인간 경험과의 대화”라고 말한다. ‘인간경험’이란 경험과 체험을 모두 의미한다. “경험은 우리가 세계와 교류하면서 나에게 생기는 일이고 체험은 우리가 세계와 조우하는 과정에서 ‘살면서 내가 겪는 일’을 의미한다.”(25쪽) 경험이 객관적인 측면이라면 체험은 주관적인 측면이다. 객관적 경험과 주관적 체험의 차이로 인해 사회학 연구는 혼란을 겪지만 바로 그 혼란이 ‘사회학과 인간 경험 사이의 대화’로 이끈다. 


사회학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 대화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대화의 목표는 사회학자가 아닌, 평범한 삶을 사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널리 퍼져 있는 일반적인 습관(내 생각에 통념)을 무너뜨리는 것(28쪽)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습관의 배후에는 “깊이 생각하지 않은 채 의문 없이 받아들이는 현실”과 “세상은 원래 그런 거라며 이의를 제기하거나 저항할 능력을 상실한 무기력한 세계관”이 있다. 그런 태도는 ‘자발적 복종’으로 이끈다. 사회학적 대화는 이런 무저항을 문제 삼고 세계의 특징을 폭로하고 해명해야 하는 임무를 수행(30쪽)해야 한다. 사회학의 소명은 지금, 여기 (자본주의밖에) 대안이 없다는 거짓을 드러내고 다른 대안들을 들춰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학자는 “더 이상 낭만적일 수 없는 이 시대에 인간적 가치를 옹호하는 용기와 그에 대한 일관성 있는 태도, 그리고 인간적 가치에 대한 충성심”(75쪽)을 가져야 하며 아직 “인간이 깃들기에 더 나은 세계로 가는 지름길의 가능성은”(90쪽) 보이지 않아도 “인간 해방의 전망에 대한 ‘진실’을 훼손의 위협으로부터 보호”(92쪽)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회학은 세계에 대한 지각을 변화시킴으로써 리얼리티를 변화시키는 것”(208)을 할 수 있다그 가능성은 “삶의 전문가인 평범한 사람들”과의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인간의 경험을 감싸고 있는 ‘상식’의 교환”(231쪽)이 이루어질 때 가능하다. 인간다움에 대한 존중, 존중받을 권리 없이는 연대도 없다. 연대가 없다면 ‘사회의 핵심적 관심사’에 대한 무관심 상태에서 벗어날 기회도 없다.(230쪽) 


바우만의 사상을 66개의 질의응답으로 정리해놓은 이 책은 ‘나’의 문제를 고민할 때 사회를 빼 놓고 생각할 수 없음을 알려준다. ‘금수저’와 ‘흙수저’를 비교하며 ‘헬조선’을 자조(自嘲)하는 지금, ‘자아성찰’은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만을 통해서 가능하지 않다. ‘진짜 나’는 누구인지 궁금하다면 심리학 서적을 놓고 사회학 서적을 읽자. ‘지금’ ‘여기’에서 ‘좋은 삶’과 ‘좋은 사회’에 대한 기대(247쪽)를 접을 수 없다면 ‘지금’ ‘여기’의 작동원리를 알아야만(249쪽) 하니까. 


덧- 이 책이 어렵다면 ‘프롤로그’와 ‘역자 후기’만 읽고 이해해도 핵심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다. 덴마크의 사회학자 미켈 H. 야콥슨이 쓴 프롤로그도 훌륭하지만 노명우 사회학자의 역자 후기는 구구절절 가슴에 박힌다.

 

역자 후기 중 한 대목을 옮겨 둔다. 

삶은 100미터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다삶이라는 마라톤 경주에는 다양한 개인들이 참여한다어떤 이는 인간으로서의 완성을 위해 마라톤을 뛰면서우승을 위해 인간성을 포기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으며 다만 완주를 목표로 삼는다하지만 함께 마라톤을 뛰는 무리 중 어떤 이는 우승을 위해서라면 인간성 따위는 쉽게 내던진다아이니컬하게도 인간성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과 인간성을 내던질 수 있는 사람이 동시에 마라톤을 뛰면대부분 후자가 승리한다그리고 안타깝게도 인간성을 내던지지 않는 사람이 희생자가 된다

   

그러므로 사회학은 적어도 사람들이 이 사회에서 바보가 되거나 희생자가 되지 않는 방법을 알려주는 쓸모를 지녀야 한다또한 대부분의 사람을 희생자로 만드는 비인간적 존재가 왜 사회의 정의를 위해 심판받아야 하는지를 설명해주고 그 심판에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사회의 변호인이 되어야 한다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여기'의 작동 원리를 알아야만 한다. 아는 것은 방어술이다. 사회학 따위는 몰라도 사회를 알고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하지만, 자기 경험의 덫에 걸린 채 사회를 아는 것뿐이다. 세상에 대한 지식은 때로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이데올로기일 수 있다. 열심히 일을 하면 부자가 될 수 있고 현재의 부자는 성실했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다면, 그 사람은 제대로 알고 있다 할 수 없다. 성실해서 부자가 될 수 있었던 사례가 있다고 해도, 제비 한 마리가 날아온다고 봄이 오지 않듯이 특이 사례(개인의 직접적 체험)와 보편적 사실(객관화된 경험)은 다르다.”(248-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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