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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스름빛 Oct 13. 2017

독서교육, 어떻게 할까

- 김은하의 <독서교육, 어떻게 할까>를 읽고

가끔 사 놓고 잊어버리는 책이 있다. 소장한 책이 많지도 않은데도 보는 책들만 보는 탓이다. 다른 책을 찾으려고 책장의 가장 위쪽을 올려다 봤다가 발견했다. 아니, 이렇게 좋은 책을 홀대했다니 부끄럽다. 


이 책은 실용서+연구서다. 교육학을 전공한 작가는 교육학 이론을 접목하여 독서 교육을 할 때 느끼는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풀어 해결해준다. 유아부터 청소년 자녀가 있는 부모들이 읽으면 도움이 많이 되겠다. 


이 책은 부모들이 독서를 교육할 때 생길 의문을 각장의 제목으로 삼았다. "1장 글을 알면서도 읽어 달라고 해요"부터 "13장 전자매체 읽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까지 부모들의 질문을 제목으로 삼고 그 질문에 답하는 글이 몇 개(소제목)로 나뉘어 실려 있다. 


교육학 연구자의 글임에도 현실을 이해하고 최대한 부모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답변을 제시한다. 또 매 주제의 글이 긴 글이 아님에도 핵심이 잘 담겨 있다. 무조건 좋은 책(고전)을 읽혀야 한다는 욕심이나 만화책은 나쁜 책이라는 편견, 전자매체는 피하고 책만 읽혀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는 부모라면 더욱 도움이 될 책이다. 


몇 대목은 성인 독자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예를 들면, "3장 전집과 필독도서를 꼭 읽혀야 하나요"와 "5장 정독과 다독 중에 무엇이 더 좋은가요?", "11장 고전은 어떻게 읽혀야 하나요?"가 그렇다.


책을 읽으며 공감한 몇 대목을 옮겨 본다.


"유창하게 읽기는 글자를 안다고 심봉사 눈 뜨듯 단박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많은 연습이 필요하지요. 어른들이 영어 알파벳의 음가를 알아도 익숙하지 않은 단어와 문장 구조의 글을 유창하게 읽으려면 연습이 많이 필요하듯이요. 독서 발달의 대표적인 이론가인 리니아 에리는 유창성을 높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음성 언어로 들었을 때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스스로 읽는 거라고 말합니다. 쉬운 어휘와 표현으로 구성된 글을 읽으면, 독해에는 에너지를 조금만 쓰면서 해독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해독 속도가 빨라지는 거죠." (18쪽)


그러니 자기 수준에 맞는 글을 읽어야 하겠다. 이는 성인 독자도 마찬가지일 테다.


"초등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스스로 책을 선택할 수 있는 아이는 주어진 책만 읽는 아이보다 빠르고 효과적으로 정보를 찾았습니다. 책을 덜 뒤적이며, 훨씬 더 계획적으로 불필요한 정보를 뛰어넘고, 주요 용어를 단서로 필요한 정보를 찾았습니다. 주제에 대한 흥미와 사전 지식을 바탕으로 한 선택이 좀 더 효과적인 독해 결과를 낳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67쪽)


성인 독자가 스스로 책을 골라야 하는 이유도 위와 같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책을 고를 수 있는 독자가 더 책을 잘 읽을 가능성이 높은 독자다.


"집중해도 어려운 책은 정보량이 많아 해독만 하고 독해는 못하게 됩니다. 글자는 읽었지만 이해가 되지 않아 간식도 밥도 보약도 아닌 설사가 되지요. 읽고 난 뒤 아무런 영양소도 남기지 않는 거죠.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이해하지 않으면서 글자만 읽는 습관이 들거나 읽기 자체를 거부하며 읽기에 대한 자신감이 낮아질 수 있습니다. 아이의 읽기 수준이 또래와 달라도 자신의 '밥책'을 중심으로 읽으라고 격려해 줍니다. 사람마다 밥책이 다르니 다른 친구들과 비교할 필요는 없습니다. 소화할 수 있는 만큼의 정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서 독해 능력이 발달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131쪽)


위 이야기를 종합하는 내용이다. '내 수준에 맞는 책을 스스로 골라 읽되 남과 비교하지 말아라.'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데, 성인 독자에게도 해당되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책 읽는 뇌를 연구한 매리언 울프에 따르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보고 듣는 능력은 유전적으로 부여받았으나 읽기 능력은 그렇지 않습니다. 읽기 능력은 인간의 유전적 한계를 뛰어넘는 일이라 배우고 익혀야만 합니다. <중략>


울프는 읽기의 가장 큰 특징으로 '혼자 힘으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스스로 글을 읽는 행위는 해독과 독해의 두 가지 과정을 반드시 거치는데, 이는 앞서 서술한 것처럼 생래적으로 갖춘 능력이 아니라 배워야 하는 능력입니다. 읽기를 막 배운 초기 독자는 시간을 갖고 집중해야 글자의 모양을 보고 읽으면서 의미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낯선 외국어 문구를 읽을 때 집중을 해야만 글자의 모양과 의미 파악을 할 수 있듯이요. 그리고 이렇게 의미 파악을 위해 홀로 집중하는 시간을 갖고 오래도록 연습해야 하지요. 하루 이틀 배운다고 단번에 생기는 능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56쪽)


"읽기"가 타고난 능력이 아니라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말은 독서는 훈련이 많이 필요한 영역이라는 말과 같다. "오래도록 연습"해야 하므로 단시간에 독서를 배우기는 어렵다.


작가의 말이 마음을 울리는 작가를 좋아한다. 이 작가도 그랬다. "닫는 말"에 공감이 많이 되었다. 우선 '독서 교육의 목적지를 멀리 둡시다'라며 이렇게 말한다.


"책을 많이 읽은 아이는 나중에 공부도 잘하나요?", "옆집 아이가 어릴 때 책 많이 읽었다던데, 들어간 대학을 보니 독서 효과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이런 이야기는 암묵적으로 독서교육의 최종 목적지를 '대입'과 '취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날 때부터 클 때까지 열심히 책을 읽어 대입이나 취업에서 효과를 보자는 거지요. 저는 이 단기적인 독서교육의 목적지를 좀 더 멀리 두었으면 합니다. 아이가 사십, 육십, 팔십에도 책과 함께 성장하는 사람이 되도록이요. <중략>


스스로 배움의 주체가 되어야만 행복한 삶을 누리고 개인으로서, 시민으로서 지혜로운 판단을 할 수 있겠지요.

독서교육의 목적지를 입시와 취업까지만 한정한다면 아이에게 지금 책을 읽히도록 하겠지요. 자발적이든 강제적이든 당장 내 눈앞에서 읽게 할 겁니다. 그러나 그 목적지를 '평생 독자'로 확대한다면 당장 아이의 읽기 양을 늘리기보다 독서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와 내적 동기, 독자로서의 주인 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애쓰게 됩니다. 단기적으로는 싫어도 읽을 수 있고 잘 읽을 수도 있지만, 평생 그렇게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싫어하는 방법을 통해서 뭔가를 좋아하고 사랑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아이들을 평생 독자로 키우려면 흥미로운 책을 만나 다른 사람과 책 이야기를 재미있게 나누고, 책이 자기 삶에 영향을 주는 경험을 하게 해 줘야 합니다." (267-268쪽)


'독서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들자'며 이렇게도 말한다.


"좋은 책을 고르는 눈 밝은 독자가 많아야 좋은 책이 계속 만들어집니다. 그런 안목을 가진 독자는 평가와 경쟁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서 길러집니다. 학교도서관에 사서교사가 있어야 아이들이 좋은 책으로 안내되고 제대로 된 독서교육과 정보 활용 교육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집 가까이에 도서관이 있고 풍부한 자료가 마련되며 책과 독자를 매개하는 사서와 프로그램이 있어야 누구도 돈 없이도 평생 책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아이의 책 읽기에 기울이는 관심의 일부를 독서 생태계에도 기울였으면 좋겠습니다. 이 생태계가 결국 내 아이의 책 읽기 미래를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도서관과 독서문화, 독서교육 정책에 독자로서 시민으로서 목소리를 내고 투표하고 후원하고 참여하길 바랍니다."(268-269쪽)


무엇보다 와 닿았던 부분은 "왜 책을 읽나요"에 대한 대답이었다.


"제가 왜 책을 읽을까요? 그리고 왜 사람과 책의 만남을 주선할까요? 저는 좋은 삶을 살기 위해 책을 읽습니다. 책에서 얻은 신선한 시점과 고도는 굉장한 웃음과 즐거움과 깨달음을 줍니다. 다른 한 인간의 내면, 다른 시대나 지역에 사는 인물이나 동식물, 지구의 입장이나 다른 세계관 혹은 다른 발상을 통해 보면 익숙한 세계가 달리 보입니다. <중략> 책은 정보와 이야기의 모음이 아닌 관점이 있는 정보와 이야기를 제공함으로써 한 인간으로 누릴 수 있는 사고와 경험의 한계를 넓혀 줍니다. 새로운 관점이 주는 유머와 발상의 전환, 상상력은 웃고 위로하고 생각하게 합니다.


또한 저는 노예가 아닌 자유로운 시민으로 살고 싶어서 책을 읽습니다. 세상이 강요하는 교조와 편견에 복종하기보다 삶과 사회의 결정권을 가진 주인으로 살고 싶습니다. 공동체의 문제에 대해 말하고 쓰면서 자신을 표현하고, 듣고 읽으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주인들의 사회에 살고 싶습니다. 인문학·과학적 진실을 다루는 책은 거짓에 함부로 속아 넘어가지 않는, 매수되지 않는 정신을 갖도록 도와줍니다. 역사적으로 책이 특정 계급과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까닭은 책을 통한 합리적인 판단력이 주인이 아닌 자에게는 불필요하고 위험한 덕목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게 책은 정치적 선전과 종교적 교조, 자본의 유혹, 성공에 대한 일원적 잣대에 깃털처럼 휘둘리지 않는 중심을 갖도록 도와줍니다.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떤 가치를 갖고 살 건지, 어떤 사랑을 하고,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어떤 공동체 속에서 살고 싶은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도록 용기를 줍니다.

 

책은 제가 개인으로 시민으로 행복하고 좋은 삶을 추구하도록 가르치는 선생입니다. 제게는 책 말고도 여행, 자연, 사람, 노래, 그림, 살림, 텃밭이라는 선생이 있습니다. 저는 이 선생들의 협력 수업을 들으면서 보기 넷 중에 정답을 맞히는 퀴즈 말고 삶을 위한 진짜 공부를 합니다."

"여러분의 대답은 무엇인가요?" (270-271쪽)


위 글이 무엇보다 좋았던 이유는 "단지 책"만을 강조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책 말고도 여행, 자연, 사람, 노래, 그림, 살림, 텃밭이라는 선생"이 있다는 말. 나 역시 책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책만 읽는 것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책 안에 갇히기보다는 여러 형태를 가진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사람과 만날 때에야 '진정한 성장'이 가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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