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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폼폼토스 Jan 08. 2025

버티는 계절

해가 뜨지 않는 인도의 겨울 

 종종 회색빛을 띠는 하늘은 곧 계절이 가을에서 겨울로 바뀔 것을 예고하는 전령사(傳令使)이다. 햇빛은 전처럼 땅에 가까이 다가앉지 않고 멀리서 비추며 좀처럼 그 온기를 나눠주지 않는다. 두꺼운 외투를 꺼내야 하는 강추위가 찾아오려면 아직 멀었건만 아침저녁의 불친절하고 스산한 추위에 마음이 움츠러든다. 공휴일 하루 없는 자비롭지 않은 그 계절은 바로 한국의 11월이다. 영하도 아닌 10도 언저리의 애매한 그 추위가 너무 매서워서 추위를 잘 타는 나는 한국에 있을 때 11월만 되면 어김없이 아팠다. 인도 북부의 겨울은 그런 추위와 스산함이 지리하게 이어지는 계절이다. 그런데 이제 엄청난 스모그를 곁들인. 그래서 해조차 제대로 볼 수 없는. 

 

 인도에서 두 번째 맞는 겨울이지만 회색의 하늘과 베란다 밖으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자욱한 연기는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매일의 풍경이다. 스모그 때문에 해를 제대로 볼 수 없으니 생기가 떨어지고 별 다른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쉽게 지친다. 고위도 지방에 찾아오는 극야(極夜)가 이런 것일까? 그러나 극야의 그곳엔 적어도 스모그는 없을 것이다. 

왼쪽이 12월, 오른쪽이 10월. 저렇게 하늘이 파랗던 적이 있었다. 12월도 그나마 공기가 괜찮은 날이 이 정도다. 

 상상초월 인도 북부의 미세먼지는 겨울 내내 이어지고 1월이 가장 심하다. 공기청정기는 하루 종일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1월 들어 내내 주황색과 빨간색 불빛을 오가고 있다. 그래도 그 정도면 공기가 좋은 편이다. 빨간색과 보라색을 왔다 갔다 하는 무서운 날도 있다. 박스테이프로 창문 틈을 다 막았건만 허술한 홑창 새시 어딘가를 뚫고 미세먼지는 집안으로 계속 들어온다. 아침에 일어나면 집안에서 탄 냄새도 맡을 수 있을 정도다. 집안도 이런데 바깥공기는 대체 얼마나 안 좋다는 것일까? 그 공기청정기 불빛을 보고 있으면 또 우울해진다. 

공기청정기의 초록빛을 본 게 언제였나. 공기청정기의 보라색 불빛을 인도에서 처음으로 보았다. 

 공기가 이러니 바깥 활동도 당연히 할 수 없다. 사실 갈 데도 없다. 공원이 별로 없기도 하지만 있다 해도 들개와 원숭이 떼가 출몰하고, 길거리를 걷고 싶어도 인도가 제대로 없는 곳이 대부분이라 걸을 수가 없다. 곳곳에 널린 쓰레기와 쉴 새 없이 길가에서 울려대는 경적 소리, 릭샤꾼의 호객 때문에 길거리 나가면 더 스트레스만 받는다. 쇼핑몰? 그 역시 별로 없기도 하거니와 인구 14억 나라답게 사람들로 꽉꽉 차 있고, 쇼핑몰 안조차 스모그로 자욱하다. 거짓말이 아니다. 집안이 제일 낫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데 문제는 집도 너무너무 춥다. 바깥 기온은 최고가 18도, 최저가 10도 정도로 그렇게까지 춥지는 않지만 그런 애매한 추위의 날씨에는 실내가 더 추운 법이다. 게다가 인도 집 바닥은 대부분이 대리석. 깜짝 놀랄 정도로 차가워서 슬리퍼를 신지 않으면 발끝부터 전해오는 냉기를 경험할 수 있다. 기모 있는 실내복은 필수다. 한국의 보일러가 간절히 그리워진다. 바닥이 따뜻하면 집안 전체가 훈훈한데, 한국 보일러 같은 건 당연히 있을 리가 없다. 히터가 있어서 틀어보지만 얼굴이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지는 듯한 건조함 때문에 껐다 켰다를 반복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또 피곤해진다. 


 건조하니까 물을 많이 마시게 되는데 그러면 화장실에 자주 가는 것도 당연지사. 그런데 화장실은 바닥이고 벽이고 전체가 다 타일이라 더 춥다. 게다가 인도집 화장실은 쓸데없이 왜 그렇게 큰지. 큰 만큼 더 추워서 마치 실외에 있는 화장실 같다. 


 그래서 인도의 겨울은 있는 힘을 다해 버티는 계절이다. 1월이 얼른 지나가기를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버티는 방법은 특별한 게 없다. 


 -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지만 알람 맞춰 놓고 일찍 일어나 신체 균형 유지하기

 - 출근하는 남편 건강식 아침 도시락 싸기 

 - 집안 어수선하지 않게 수시로 정리하기

 - 좋은 식재료로 맛있는 집밥 만들기

 - 바깥의 자욱한 연기가 보이지 않게 창문을 등지고 앉아 좋은 책 읽기

 - 건조하지 않게 수시로 물 마시기

 - 향기 좋은 핸드워시로 손 씻으며 화장실 추위 이겨내기

 - 귀찮음을 떨치고 아파트 피트니스 센터 가서 30분이라도 뛰고 땀 흘리기

 - 가족들과 함께 주말 저녁 볼 영화 리스트 고심해서 고르기 

 - 어떻게 해도 마음이 힘든 날엔 소중한 한국 봉지 과자 하나 뜯어먹기 


 평소보다 더 정성을 다해 일상을 바쁘게 살아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하루가 가고, 일주일이 간다. 힘들다고 무너져서 우울해하고 있기에 인도의 겨울은 너무 길다. 


 지루한 이런 일상을 사는 것, 한국에서 살 때는 가지고 싶어도 바빠서 가질 수 없었던 시간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해가 들지 않는 이 시간조차 감사하다. 그래서 하루하루 더 소중하게 살아내 보려 한다. 햇빛이 없다고, 미세먼지로 가득하다고 나는 인도 너 따위에 절대 지지 않는다. 이 겨울이 하루하루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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