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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올려 주는 사람, 좋은 사람

귀인과 함께 한 인생 첫 필드

by 폼폼토스 Mar 17. 2025

 용기 내어 필드에 데려가 달라고 하니, 언니는 어떻게 생각이 바뀌었냐며 당장 날을 잡자고 반가워했다. 언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누구와 처음 필드를 나가게 되었을까. 요즘에 와서 더욱 크게 느끼게 된 것이지만 주재 초반에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는 남은 주재 생활을 좌우할 만큼 아주 중요하다. 언니를 만난 것은 골프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면에서도 나의 인도 생활의 큰 행운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언니에게 고맙고 또 고맙다. 그렇지만 그때는 그게 그렇게 고마운 일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를 데리고 필드에 나가는 게 얼마나 수고스럽고 때로는 인내해야 하는 일인지 알지 못했다. 그저 올드마담들의 조언은 새겨들으면 뭐라도 득이 되겠거니 해서 다시 연락한 것이었다.


 우리는 필드에 나갈 날을 잡았고, 그날은 나의 실력이 더디 느는 것에 비해 바삐 다가왔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아이언 비거리는 단시간에 늘리기 어려우니 포기한다 치고 몇 번 잡아본 적 없는 드라이버가 더 문제였다. 드라이버 연습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두 달 친 주제에 필드에 나가서 잘 쳐야겠다는 마음 따위는 없었다. 최대한 민폐는 끼치지 말자는 생각에 매일매일 2시간 이상 연습했다.


‘처음 필드 나갈 때’와 같은 키워드로 첫 라운딩의 주의 사항도 검색해 봤다. 동반자의 샷을 칭찬하고, 순서를 지켜 공을 치고, 퍼팅 그린에서 뛰지 않는 등 여러 가지 주의 사항이 있었다. 첫 라운딩이라면 동반자의 간식을 챙겨가는 것도 좋다고 했다. 언니가 필드에 데려가 주시는 게 고마우니 간식 꾸러미를 준비했다. 약과, 초콜릿, 사탕 등 당 떨어질 경우를 대비한 달콤한 간식들을 지퍼백에 담아 준비하고, 골프공, 롱티, 숏티 등 빠짐없이 챙겼는지 거듭 확인했다.


 드디어 난생처음 필드에 나가는 날이다. 처음 가본 골프장은 온통 초록빛이었다. 고운 잔디가 양탄자처럼 펼쳐져 있었고, 곳곳에 수풀이 우거진 나무가 가득했다. 그동안 길가의 쓰레기와 경적소리에만 익숙해져 있다가 새소리와 바람소리 가득한 이런 곳에 오니 마치 딴 세상 같았다. 너무너무 긴장되었지만 그 초록의 색깔을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상쾌해졌다.

<이미지 출처: Pinterest><이미지 출처: Pinterest>

 언니는 능숙하게 카트를 몰아 1번 홀 티박스 앞에 주차했다. 때마침 홀은 비어 있었다. 언니는 기다리지 않아도 돼서 너무 잘되었다며 좋아했다. 언니가 먼저 힘차게 티샷을 했다. 공은 뻥하고 하늘을 가르며 시원하게 날아갔다. 감탄과 박수가 절로 나오는 샷이었다. 드디어 내가 티샷할 차례. 그런데 그때 우리 뒤쪽으로 카트가 한 대 와서 섰다. 부부로 보이는 나이가 지긋한 남자와 여자가 카트에 앉아 우리가 치고 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설마 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티샷을 해야 하는 건가?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안 그래도 언니랑도 이제 안 지 얼마 안 되어 같이 치기 편하지 않은데 모르는 사람들까지 있는 가운데서 쳐야 한다니 부담이 정말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는 덜덜 떨며 드라이버를 잡고 첫 스윙을 날렸다. 공이 어디 갔지? 놀랍게도 공은 티 위에 그대로 있었다. 헛스윙이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다.


“괜찮아! 천천히 다시 한번 쳐봐!”


 언니가 용기를 북돋아줬다. 뒤에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얼른 치고 나가야 했다. 나는 정신없이 두 번째로 드라이버를 쳤다. 공은 티 위에서 힘없이 또르르 굴러 떨어졌다. 공은 아직 티박스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머릿속이 하얗게 질렸다. 우리 뒷팀은 무슨 일인가 하고 나를 계속 보고 있었다. 이럴 땐 대체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 아직 낯 가리는 사이였지만 여기서 믿을 사람은 언니밖에 없었다. 울상이 되어 언니를 바라보니 언니가 외쳤다.


“드라이버 말고 7번으로 쳐보자! 7번은 칠 수 있지?”


 나는 정신없이 다시 티를 꽂고 7번 아이언을 휘둘렀다. 이번에도 공은 빵 뜨진 않았지만 굴러 굴러서 20야드쯤은 나간 것 같았다. 어쨌든 티박스를 벗어나긴 한 것이다. 나는 너무 부끄러워서 7번 채를 들고 공을 향해 뛰어갔다. 정신없이 또 휘둘렀다. 공은 역시 뜨지 않고 굴러서 이번에는 한 30야드 나간 것 같았다. 어느새 언니가 카트를 몰고 옆에 와 서 있었다.


 “빨리 타. 처음부터 걸어 다니면 지쳐.”


 언니가 한 번 치는 동안 나는 세 번쯤 치는 것 같았다. 초짜 주제에 감히 언니와 나의 실력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다. 스크린 골프장에서 연습했던 시간은 대체 다 뭐란 말인가. 안 맞아도 이렇게 안 맞을 수가 없었다. 심심하면 나오는 헛스윙에 뒤땅은 기본이요, 게다가 1번 홀에서의 악몽 때문에 다음 홀로 넘어가도 티샷을 드라이버로 할 수 없었다. 나는 점점 허둥거렸다. 뒷팀 신경 쓰랴 언니 눈치 보랴 스윙에 집중할 수 없었다. 정작 언니는 눈치도 안 주고 계속 용기를 북돋워 주고 있었는데 말이다.


 “서두르지 말고 공을 끝까지 봐.”


 공을 끝까지 보는 것, 그건 아직도 나에게 어렵다. 성격이 급한지라 공보다도 시선이 먼저 공이 날아가는 방향을 보고 있다. 캐디들이 맨날 외치는 ‘헤드업’이다. 이렇게 허둥거릴 일이 아니었다. 오늘 필드 나오고 골프 끝낼 건가? 공이라도 띄워 보고 가는 거다. 필드에 나와 보니 스크린 골프장과 잔디밭은 완전히 다른 환경이었다. 매트가 없으니 공과 나 사이의 간격도 얼마나 둬야 하는지 모르겠고, 무엇보다도 어느 방향을 보고 쳐야 하는지 전혀 감이 없었다. 그러나 그간 연습한 것들을 어떻게든 떠올려야 했다. 머리를 최대한 고정하고 배운 대로 어깨를 돌렸다. 드디어 공이 떴다. 필드를 가로질러 빵 뜬 공이 정말 내가 친 게 맞나? 그 샷 하나로 갑자기 그간의 삽질과 마음고생을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두 달간 연습한 시간들이 그저 버려지는 시간은 아니었구나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이미지 출처: Pinterest><이미지 출처: Pinterest>

“야 진짜 너무 잘 쳤다!”  


 고마운 언니가 더해준 칭찬에 나는 아주 조금 자신감이 붙었다. 이제 남은 홀은 여섯 홀. 나는 그전까지 티샷을 아이언으로만 하고 있었다. 나는 용기 내어 드라이버를 들었다. 이제 골프 배운 지 두 달이고 이제 처음 필드에 나왔는데 못 치는 게 당연하다. 뭔가를 굉장히 못하는 경험은 초등학교 때 스케이트를 배우며 넘어졌을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것부터 인정해야 했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뭐든지 잘해야 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빠른 시간 내에 익혀 잘하는 것처럼 보여야 하는 삶에 익숙했다. 나는 드라이버를 쳤고 공은 멀리 가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떠서 앞으로 날아갔다. 골프는 공을 앞으로만 보내면 되는 것이었다.


 어프로치를 어떻게 했는지, 퍼팅은 몇 개를 쳤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능숙한 언니의 인도로 한 타 한 타 쳐 나갔고 공을 앞으로 보냈다. 뒤로 가거나 옆으로 가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이었나 싶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18홀이 끝나 있었다. 충격과 공포의 인생 첫 라운딩을 이렇게 마쳤다.


 이런 좌충우돌 인생 첫 라운딩이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는 이유는, 전적으로 동반자 덕이 컸다는 것을 라운딩을 거듭할수록 알게 되었다. 언니는 취미 골퍼 치고는 굉장한 실력자이기도 했지만, 초보자를 안심시키고 이끄는 데 재능이 있었다. 허둥거리는 나를 다독여주고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전전긍긍할 때 공치는데만 집중하라고 배려해 주었다. 덕분에 나는 잡생각을 버리고 나의 플레이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좀 헤매긴 했지만 18홀이 끝나고 나서는 다음번 라운딩은 또 언제 나가지 생각이 든 걸 보니 골프를 계속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 분을 첫 필드의 동반자로 만났으니 정말 행운이었다. 그 후로 언니를 만날 때마다 나는 그때 날 데리고 나가 줘서 너무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건 마음에서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였다. 그런 내게 언니가 말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잖아. 너도 이다음에 누군가 처음 필드에 나갈 때 데리고 나가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돼.”


 이런 멋진 사람을 다 봤나. 그래서 나는 그 후로 결심했다. 나도 앞으로 실력을 갈고닦아 누군가 처음 필드에 나간다고 할 때 기꺼이 함께하는 사람이 되기로. 그게 내가 받은 배려와 도움에 대한 인류적 차원의 보답이라고. 그러나 실력을 갈고닦으려면 스크린 골프장에서 연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남편이 뭐라고 했는가. 인도에서 가장 좋은 점이 ‘마음껏’ 골프를 치는 것이라고. 첫 필드 경험 이후로 나는 '마음껏' 필드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러나 그러기 전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었으니, 그건 골프를 칠 또 다른 동반자였다. 이곳에서 골프를 치는 사람들끼리 ‘고정 멤버’를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이제 막 필드에 나간 생초보 골퍼는 어디서 어떻게 멤버를 구한단 말인가?


(다음 화 '골프를 치려는 자, 먼저 멤버를 구해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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