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한 번 치실래요?
이제 골프에 대한 ‘마음’이 생겨 버린 나는 계속 필드에 나가고 싶었다. 그렇게 마음이 생긴 이유는 잘 맞은 공을 쳤을 때 손맛을 잊을 수 없고, 칩샷이 기막히게 잘 되어 핀에 가까이 붙였을 때의 쾌감도 아니었다. 그런 걸 느끼기에 내 실력은 아직 너무 미천했다. 그저 초록빛의 골프장이 마음에 들었을 뿐이었다.
‘그래, 인도에서 제일 깨끗한 곳은 바로 골프장이야. 꼭 정기적으로 가서 나의 정신을 정화하는 거야.’
자, 그렇다면 이제 함께 할 멤버를 구할 차례다.
“골프 치세요? 언제 한 번 치러 가요.”
누군가 나에게 했던 이 말을 이젠 내가 하고 다니게 되었다. 이제 겨우 한 번 필드에 나갔을 뿐인데 내가 민폐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잠시 접어 두기로 했다. 단 한 번이라도 필드에서 쳐봤으니, 이제 나는 누군가 먼저 치자고 말해주길 기다리는 필드 경험 전무한 부담스러운 초보는 아니었다. “몇 번 나가봤어요. 그런데 아직 잘 못 쳐요, 호호호” 하면 될 일. 일단 멤버를 구해야 필드에 나갈 수 있으니, 멤버부터 구해놓고 연습은 꾸준히 하면 되지 뭐. 은인 언니의 조언도 한몫했다. 필드에서 스윙의 감을 익히는 게 가장 중요하니 누구와도 기회가 되면 무조건 필드에 나가라는 것이었다.
운 좋게 아이 학교 친구들 엄마 무리에 낄 수 있었다. 그분들은 나보다 1-2년 정도 골프를 먼저 친 선배들이었지만 정기적으로 필드에 나간 적은 없어서 내가 마침 멤버를 찾아 나섰던 시기에 본격적으로 필드에 나가고 있던 참이었다. 그 무리에 끼게 된 건 대단한 행운이었다.
그게 왜 행운이었냐면 아이 엄마들끼리 골프를 정기적으로 함께 치려면 여러 가지 조건이 잘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첫째, 골프장에 갈 차가 있어야 하고, 둘째, 아이들 등하교 시간이 비슷해야 하며, 셋째, 회원권이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 친다면야 내가 직접 운전해서 골프장에 가면 되지만 여기는 기사가 운전을 해야 하는 인도다. 엄마들이 골프를 칠 수 있는 시간은 남편과 아이가 모두 회사와 학교에 간 시간인데, 골프를 치러 가려면 차를 늘 쓸 수 있어야 하거나 남편이나 아이를 데려다주러 간 차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거나 아니면 누군가의 차를 얻어 타고 가야 한다. 그 세 가지 경우의 수에 또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바로 아이들의 등하교 시간이다.
우리 아이는 초등학교 저학년이기 때문에 스쿨버스를 타고 내릴 때 부모가 반드시 인계해야 한다. 스쿨버스를 타지 않고 자차로 등하교하는 아이들은 엄마가 학교로 데려가고 데려다줘야 한다. 그런 경우에는 아이가 학교에 간 시간 동안 부리나케 골프를 치고 아이를 데리러 학교로, 또는 스쿨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를 받으러 집으로 가야 한다. 누군가는 아이가 스쿨버스를 타고 가서 골프장으로 빨리 출발할 수 있는 반면, 학교에 데려다줘야 하는 경우는 그만큼 늦게 출발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골프는 18홀 다 치면 최소 네 시간, 대기가 길면 다섯 시간까지 걸린다. 게다가 차를 타고 오고 가는 시간까지 합치면 두 시간 혹은 그 이상이니, 같이 치는 멤버들의 시간이 잘 맞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때로는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 해서 18홀을 다 못 치고 퇴장하는 경우도 있고 아쉬운 대로 9홀만 치고 끝나는 경우도 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조건은 바로 회원권. 사실 필수는 아니지만 있으면 그만큼 좋은 점이 많다. 인도에서 골프 치는 비용은 한국보다 매우 저렴하지만, 회원권을 끊으면 더 저렴하게 칠 수 있어 많은 한국 사람들은 인도에서 골프 회원권을 구매한다. 헬스장 비용이나 여가 생활 비용이라고 생각하면 주재 기간 동안 투자할 만한 금액이다. 회원권이 있어서 좋은 점은 저렴하게 칠 수 있다는 것 외에도 또 있다. 바로 멤버를 구하기 쉽다는 것. 같은 골프장 회원이면 언제 같이 치러 가자고 부담 없이 물어볼 수 있다. 또한, 회원권이 있으면 온 가족이 골프를 치기에도 좋다.
나는 회원권을 끊기에 앞서 앞의 두 가지 조건들을 나름 정확하게 따져 보느라 약 6개월 동안 이 골프장 저 골프장 다니며 게스트로 쳤다. 그리고 마침내 고정 멤버 모임을 꾸릴 수 있겠다 싶었을 때 회원권을 샀다. 일주일에 한 번 혹은 두 번 정해진 요일에 필드에 나가는 것, 그건 골프 스코어를 떠나 여가 시설 부족한 인도에서의 거의 유일한 활력소가 되었다.
작년 초 회원권을 끊고 나서는 40도가 넘는 폭염에도, 하루 종일 비가 내리는 우기에도, 미세먼지 세계 1등에 빛나는 한겨울에도 거르지 않고 항상 주 2회 또는 3회 필드로 나갔다. 물론 인도에 이런 날씨만 있는 건 아니다. 2, 3, 9, 10월은 인도에서 1년 중 가장 날씨가 좋은 때. 파란 하늘과 몽실몽실한 구름, 적당한 바람으로 그야말로 환상적인 골프를 즐길 수 있다. 그럴 때면 “와, 인도도 정말 살만한 곳이구나!” 하는 감탄과 감사가 절로 나온다. 거기다 샷까지 좋으면? 인생에 감사하게 된다.
지금도 나는 점수에 대한 욕심보다는 골프장의 풍경이 좋아 골프를 친다. 휴일이나 학교 방학 등으로 골프를 오랫동안 못 치고 나서 오랜만에 나가는 때면 ‘오늘은 또 얼마나 안 맞을까’를 걱정하긴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까지 큰 스트레스는 아니다. 그보다는 1번 홀 옆의 호수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수, 무성한 야자수, 초록빛 잔디가 깔린 탁 트이고 굴곡진 언덕이 주는 평화가 더 설렌다.
그런데 필드에 몇 번 나가지 않았던 완전 골린이 시절에는 이런 풍경이 당연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1번 홀 옆의 호수는 슬라이스라도 나면 바로 공이 빨려 들어가고, 무성한 야자수는 피해서 친다고 치지만 어김없이 나무를 향해 샷을 날리고, 굴곡진 언덕은 대부분 파 5라 드라이버 시원치 않게 치면 그 뒤로 레스큐를 끝도 없이 쳐야 한다. (꼭 파 5에서 드라이버는 기가 막히게 못 친다) 벙커는 또 왜 이렇게 많고 깊은지. 내가 가는 골프장은 특히 벙커가 많다. 드라이버 슬라이스 나는 위치에 기가 막히게 벙커가 있고, 그린 주변에 벙커가 다섯 개쯤 있기도 하다. 그럴 때면 저 벙커들을 피해 그린을 향해 똑바로 쳐서 온하는 게 가능한 일인가 싶기도 하다. 어쩔 때는 몇 개 홀만 빼고 한 홀도 빠짐없이 벙커에 들어간 적도 있다. 일단 벙커에 빠지면 정신적 타격감이 장난이 아니다. 벙커에 들어가고 나오느라 몸도 더 지친다.
골프장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게 된 때는 언제였을지 생각해 보면, 그건 내가 어느 정도 골프를 안정적으로 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여전히 똑같은 양파지만 파 4에서 10개 치던 걸 8개로 줄이고, 트리플로, 더블로, 그렇게 줄여가는 과정에는 정말 피나는 연습의 시간이 있었다. 골프장 풍경을 즐기며 나들이 삼아 골프를 치기에 나는 너무나 심각하게 골프를 못 쳤었다. 그러면 연습하는 수밖에. 그렇다. 연습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그리고 연습의 결과는 분명히 드러난다. 한 타라도 줄이려면 연습을 계속해야 하는 건 누구나 아는 진리다. 그러나 연습의 시간은 참 고되고도 힘들다.
(다음 화 '연습, 끝없는 연습'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