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번 홀 울렁증
길게 늘어선 카트와 트롤리의 무리들, 드라이버를 잡고 삼삼오오 모여 있는 사람들, 어드레스 하는 누군가와 일순간 숨죽여 그를 지켜보는 모두들.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받는 골프장 1번 홀 풍경이다. 골프장에 갈 때마다 1번 홀에 사람이 없기를 얼마나 바라고 바라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한 바람이다.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누군가와 끊임없이 경쟁하고 비교당하는 우리의 인생처럼.
티박스에 서면 뒤에서 대기하는 사람들 모두가 ‘어디 얼마나 잘 치나 보자.’ 하고 내 샷을 보는 것만 같다. 그렇게 생각할 때면 마음이 막 쪼그라드는 것 같다. 내가 뒷팀일 때는 내 앞팀의 스윙을 보면서 나보다 못 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드라이버 미스샷이라도 나는 걸 보면 ‘저 사람도 떨리나 보다.’ 하고 묘한 동질감과 연민을 느끼기도 했다.
그날의 첫 샷을 앞두고 떨리지 않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단언컨대 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울렁증을 극복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1번 홀에 대기 인원이 없는 날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는 마인드 컨트롤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 티박스 위에는 나와 공 둘뿐이다, 티박스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 귀를 닫고 눈을 고정하는 거다. 스윙하라,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필드에 나간 지 몇 달 안 되었을 때 나는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늘 1번 홀에서는 망샷을 쳤다. 내가 다니는 골프장은 1번 홀에 대기할 만한 공간이 유독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티박스 옆이나 뒤로 바글바글 모여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필드를 50번쯤 나가고 스윙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때 저절로 알게 됐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남의 스윙에 별 관심이 없다. 그건 나를 봐도 알 수 있다. 앞팀에서 누가 티샷을 하고 있든 말든 이제 사실 별로 안 궁금하다. 빨리 치고 나가고 싶으니 내 차례가 언제 올지가 궁금할 뿐. 그만큼 나의 골프 실력이 늘어 마음의 안정도 찾아온 것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1번 홀에서 그렇게 덜덜 떨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번 홀은 늘 떨린다. 첫 스윙이기도 하고, 아무리 익숙해졌다고 해도 뒤에 늘어서 있는 다른 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기는 힘들다. 그럴 때 나는 정말로 나와 이 공 외에 골프장에는 아무도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봤자 어드레스 하고 연습 스윙 한 번 하고 첫 스윙하는 시간 15초 정도다. 15초 정도 이런 마인드 컨트롤하는 건 할 만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내가 스윙할 때 가장 고질적으로 안 되는 부분을 머릿속으로 계속 생각한다. 나의 경우는 헤드업. 끝까지 눈을 공에 고정해야지 다짐하고 스윙을 날린다. 내가 이제까지 필드에 나간 게 몇 번인데, 그런 약간의 자만심도 이 순간에는 도움이 된다. 그 시간들을 믿고, 잘 친 샷들을 믿고, 나를 믿고 스윙하는 거다. 그러면 적어도 망샷은 나오지 않는다.
결국 망샷을 만들어내는 건 나의 마음이다. 주변 사람이 신경 쓰인다고, 연습량이 부족했다고, 지난 라운딩 때 잘 안 맞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말리는 거다. 이런 생각은 사실 필드 경험이 몇 번 없을 때 주로 했던 것 같다. 이런 마음으로는 샷이 잘 나올 수가 없다. 무조건 좋은 샷이 나올 거라고 믿고 쳐야 한다. 그래서 골프는 멘탈 스포츠라는 거다.
요즘은 어찌 된 일인지 1번 홀에서 제일 드라이버를 잘 친다. 뒤에 누가 있어도 꽤 아무렇지도 않다. 어차피 그 사람들은 내 스윙을 보고 있지 않다(고 상상한다). 아, 내가 또 이 아름다운 골프장에 왔구나. 18홀 치는 시간 동안 폭신폭신한 잔디를 마음껏 밟고, 맑은 공기와 날씨를 즐기고, 한 타 한 타 최선을 다하고, 잘 안쳐지면 돈 많이 냈으니 최대한 스윙 많이 하고 가야지 하고 다짐한다. 그리고 공에 눈 고정, 힘은 평소의 60%만 주려고 한다. 아직도 너무나 어렵긴 하다. 그러나 1번 홀 울렁증은 어느 정도 극복한 것 같다. 빨리 티샷하고 나가고 싶다. 골프장은 인도에서 제일 깨끗하고 아름다운 곳이니까.
필드에 나왔다면 이런 여유로운 마음은 기본으로 가지고 공을 쳐야 한다. 내가 중심을 잡아야 크게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로는, 아니 매우 자주 나의 플레이를 흔드는 또 하나의 요인이 있으니 그건 바로 동반자다. 동반자가 없이는 할 수 없는 운동이 골프다. 아는 사람 없이 혼자 치러 가더라도, 반드시 누군가와 함께 치게 되어 있다. 때로는 아는 사람과, 때로는 모르는 사람과 칠 때도 흔들림 없는 플레이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필드에서 여전히 배우는 중이다.
(다음 화, ‘남의 스윙을 대하는 자세’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