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자에 대한 예의
골프는 희한한 스포츠이다. 나 혼자서 칠 수 있지만 나와 한팀이 될 누군가가 반드시 있다. 그들과 경쟁해야 하는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점수를 매겨서 누가 더 잘 쳤는지 알 수 있지만, 점수 상관없이 그저 즐길 수도 있다.
그렇다면 팀원끼리 협력이 필요한가? 그건 아니지만 예의는 필요하다. 함께 하는 누군가의 플레이에 반드시 영향을 반드시 받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의 속도와 스타일에 맞춰 치되, 함께 치는 사람도 생각해야 하는 까다로운 스포츠 골프. 골프에서 동반자끼리 예의가 중요한 이유다.
나는 주재원 와이프 특성상 대부분 고정 멤버와 치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과 밥 먹는 대신 골프를 치기도 하고, 때론 전혀 모르는 사람과 함께 칠 때도 있다. 삶의 특정한 시기마다 만나는 사람이 달라지듯 골프 동반자 또한 그러하다. 골프를 같이 쳐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이 어느 정도 보인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러할 것이다. 중요한 건 동반자 성격이 어떻든, 플레이가 어떻든 휘말리지 않고 나의 플레이를 하면 된다는 것, 그리고 내가 정한 기준을 지키면 된다는 것이다. 2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필드 경험을 쌓으며 내가 정한 플레이 기준은 대략 세 가지 정도다.
골프를 치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스윙을 숨 쉬듯이 지적한다.
“너무 오버 스윙한 것 같아”
(필드 나가면 멀리 보내고 싶어서 자꾸 오버 스윙하는 것, 나도 안다)
“왜 공이 똑바로 안 나가지?”
(나는야 슬라이스의 여왕, 나도 안다)
“그립을 이렇게 쥐어 봐. 헤드를 좀 더 세워 봐.”
(.............)
그럴 때면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 너나 잘하세요.’
다른 사람의 스윙을 지적하는 건 “넌 왜 그렇게 사니?”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각자의 인생이 있는 것처럼, 저마다 다른 다양한 스윙 스타일이 있다. 내 스윙을 지적할 수 있는 사람은 필드 레슨을 같이 나간 코치뿐이다.
구력이 오래된 분들과 쳐보면 알 수 있다. 오버 스윙에 폼이 희한한데 뻥뻥 거리가 나는 분들, 스윙이 굉장히 빠르거나 혹은 느린데 정타를 치시는 분들, 비거리가 길지 않은데 망샷이 하나도 없어서 파하고 버디 하시는 분들. 그런 분들과 칠 때면 나는 인생은 겸손해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배운다. 누구나 나만의 스윙이 있고, 그걸 함부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가끔 조인하게 되는 엄청난 구력의 인도 할아버지들이나 N번째 주재인 한국 마담들 중에서 남을 지적하는 사람들을 한 명도 본 일이 없다.
골프는 그날 그날 다르다. 어제 그제 잘 맞다가도 오늘은 안 맞을 수 있고, 몇 주 혹은 몇 달째 슬라이스가 날 수도 있으며, 그린 스피드에 적응이 안돼 퍼팅을 남발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날의 모습만 가지고 함부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건 위험하다. 그럴 시간에 나나 잘하자.
솔직히 말해 나는 남의 스윙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이제 필드 나간 지 2년도 안 된 햇병아리 골퍼가 감히 누구의 스윙을 판단할 수 있을까.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지적한다. 그럴 때면 난 또 마인드 컨트롤을 한다. 동반자에게는 미안하지만 ‘저 사람은 오늘 한 번 보고 말 사람이다.’ 생각하고 나의 플레이에 집중한다.
골프를 칠 때 우리의 기분을 망치게 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가장 큰 요인은 단연코 ‘나의 플레이’라고 생각한다. 드라이버 슬라이스가 나는 것도, 어프로치가 제대로 안 되는 것도 모두 나의 탓이다. 연습이 부족했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이유는 다양하다. 그런데 치다 보면 마음대로 플레이가 안된다고 화를 내거나 기분이 가라앉는 동반자를 만날 때가 있다. 심지어 캐디 탓도 한다…
물론 자기 혼자 화내는 거지만 그 태도는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준다. 특히 같이 카트 타고 다닐 때 더하다. 어느 순간 말이 없어지고 침울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면 눈치가 보이기도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나도 골프 시작한 초반에 그럴 때가 있었다. 못 치는 게 당연할 때인데 그런 식으로 굴었다니, 지금은 마음 깊이 뉘우친다. 같이 치는 사람이 얼마나 불편했을까. 내가 그런 사람을 한 번 겪고 나니 절대로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왕 골프를 치러 왔으면 기분 좋게, 명랑하게 치자. 어차피 내가 프로도 아니지 않은가. 점수는 점수일 뿐, 그것에 연연하지 말고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예의를 다해야 한다. 그게 나의 플레이를 위해서도 결국은 좋다. 잘 안쳐지는 날이면 나는 꼭 이 점을 생각한다. 못 쳤다고 돈 아깝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돈 많이 냈으니 스윙 최대한 많이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져본다.
“굿샷~”
내가 골프장 가면 항상 달고 다니는 말이다. 물론 누가 봐도 잘 못 쳤을 경우는 제외다. 어느 순간 버릇이 되어서, 동반자가 스윙하면 자동으로 그 말이 튀어나온다. 그 말해서 안 좋을 게 없다. 적당한 칭찬은 게임 분위기를 좋게 하고, 상대방 플레이도 좋게 한다. 모르는 사람과 칠 때도 마찬가지다.
상대의 스윙을 기다려 주는 것도 아주 중요한 예의다. 비슷한 거리에 공이 떨어졌을 때 다른 사람이 스윙을 하든 말든 본인 스윙 연습에 집중하는 분들이 있다. 그런 모습은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늘 남의 공이 어디 있는지 잘 봐야 한다. 초보 때는 내가 훨씬 더 스윙을 많이 하니 동반자가 기다려 주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은 내가 기다릴 때도 있는데 그럴 때 나는 내가 초보 때 받은 배려를 생각한다. 급하게 쳐서는 절대 잘 칠 수가 없다는 걸 아니까 천천히 여유 있게 치시라고 한다. 그러는 사이 나도 한 템포 숨 돌릴 수 있어 좋다.
골프의 매력은 내가 동반자보다 좀 더 잘 친다고 마구 앞서갈 수 있는 운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반드시 기다려야 하고 상대방과 속도를 맞춰야 한다. 참으로 공평하고 관대한 운동이 아닐 수 없다.
멀리건은 얼마나 써야 할까? 규칙을 찾아보면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베푸는 호의이고, 먼저 달라고 하는 건 예의에 어긋난다고 나와 있지만 나는 주로 친목 골프를 치기 때문에 적당한 선에서 사용하는 편이다. 아주 친한 고정 멤버와 칠 때는 뒷팀이 기다리지 않는 한, 서로 권장(?)을 하지만, 적당히 아는 사람 및 모르는 사람과 칠 때 2개를 넘기지 않으려고 한다. 상대의 차례인데 누가 봐도 못 친 티샷이 나왔을 때는 먼저 권하는 편이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가 잘 못 쳤을 때 멀리건을 권해 주신다.
내가 쓰고 싶을 경우는 반드시 동반자의 양해를 구하고 친다. 이건 기본 예의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만날 때도 있다. 티샷 순서가 나보다 앞인데 양해도 구하지 않고 곧바로 다시 치는 사람을 만났을 때는 딱히 기분이 유쾌하지는 않지만 그러려니 한다. 그래 봤자 1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사람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기다려야 한다. 그러니 양해를 구하는 게 맞다.
이렇게나 생각할 게 많다니, 골프는 늘 어렵다. 나만 잘 쳐서 되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를 동시에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고정 멤버가 정말 중요하다. 나와 마음 맞는 고정 멤버, 그들을 만난 건 인도 생활의 행운이다.
(다음 화, ‘오늘도 19홀까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