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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홀을 1번 홀처럼

지금까지의 홀은 잊어라

by 폼폼토스

얼마 전 SNS에서 ‘골프 칠 때 우리의 모습’이라는 짧은 영상을 보았다. 푸른 바다에 떠 있는 크루즈 갑판에서 여유롭게 춤추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1번 홀 시작할 때 나의 모습이고, 그 후 이어지는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 위에서 말 안 듣는 배를 조종하며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모습은 2번 홀부터 18번 홀까지 내 모습이라는 거다. 너무 웃겨서 골프 멤버들에게 공유했더니 다들 공감하며 재미있어했다. 골프장에 도착해서 1번 홀 티박스에 서는 순간은 떨리기도 하지만, 왠지 “오늘 라베하는 거 아니야?”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긴다. 비록 그 자신감이 1번 홀 치고 난 후에는 사라질지언정 말이다. 역시, 마음대로 안 되는 게 골프다.


그러나 골프를 치다 보니 어느 정도의 자신감은 꼭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여기서 중요한 건 평소 꾸준히 연습하는 걸 전제로 한다) 그 자신감은 1번 홀에서만이 아니라 매 홀 필요하다. 나를 믿어야 하고, 연습할 때 쳤던 수많은 샷을 믿어야 한다. 샷이 좀 안 맞는다고, 이번 홀 성적이 좋지 않았다고 그 기분을 다음 홀까지 끌고 가는 것이야말로 피해야 한다. 빨리 마음을 다잡지 못하면 어느새 그날 경기가 엉망이 되는 걸 볼 수 있다.


골프는 치면 칠수록 나 자신과 싸우는 운동이다. 슬라이스나 훅이 나는 것도, 탑볼이나 뒤땅을 치는 것도 내 스윙이 뭔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잘못된 샷을 복기하고 다음 샷은 또 다르게 쳐 보는 거다. 그렇게 잘못된 점을 찾아서 다음 타는 제대로 맞추는 걸 목표로 삼는다. 그런데 그걸 방해하는 외부 요인도 있다. 훈수 두는 동반자(그런데 그 동반자는 나보다 잘 친다), 또 한 마디 더하는 캐디, 그리고 요즘 같은 인도 날씨. 40도를 넘는데 습하기까지 하니 머리에서 김이 난다. 내 점수가 안 나오는 핑계를 대려면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을 이겨내고 경기를 운영하는 건 오롯이 내 몫이다.


“자. 지금부터 1번 홀이다.”


전반 홀을 끝내고 10번 홀에 들어가기 전 나와 멤버들이 꼭 하는 말이다. 그리고 다시 자신감을 장착한다. 이 효과는 생각보다 강력하다. 잘 쳤던 샷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그대로 스윙해 본다. 못 쳤던 샷은 빠르게 잊고 그다음 샷을 수정해 본다. 첫 홀에서의 희망찬 마음을 잊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래서 골프는 치면 칠수록 인생과 같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주변 상황이 어떻든 자신을 믿고 꾸준히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 벙커 투 벙커해도 짜증 내지 않고, 퍼팅을 세 번 해도 신경질 내지 않는다. 그 모든 게 다 내 실력이니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내 몸에 밴 못된 습관은 잘 고쳐지지 않아서 정말 힘이 든다. 분명 공을 끝까지 본다고 봤는데 머리를 먼저 들고, 클럽을 던졌다고 생각했는데 당겨서 공이 왼쪽으로 날아가는 등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일상에서 작은 생활 습관 하나 고치는 게 그렇게 힘이 들 듯 말이다. 골프도 인생도 꾸준히 노력해야 조금이라도 발전할 수 있다는 인생의 진리를 깨닫는다.


그리고 그렇게 준비된 사람에게 기회가 찾아와 빛을 발하듯, 골프도 어느 순간 실력이 쌓여 파도 버디도 찾아온다. 나에게 절대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았던 기적 같은 순간, 이 맛에 골프 친다.


(다음 화 '파3 버디 vs 파5 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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