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더 기분 좋을까?
파 3 14번 홀. 레스큐를 들고 티박스에 섰다. 매주 치지만 매번 떨리는 바로 그 홀. 파 3라 그린까지의 거리는 100m 남짓이지만, 티박스와 그린 사이를 연못이 가르고 있기 때문이다. 저 연못에 빠뜨린 공만 대체 몇 개인지. 그냥 땅이면 이렇게까지 떨리지 않을 텐데 눈앞에 보이는 물의 위력은 꽤 크다. 꼭 공이 미스샷이 나서 물로 빨려 들어간다. 멤버들은 물이 없다고 생각하라며 응원을 보낸다.
드디어 티샷! 부드럽게 잘 맞은 공이 연못 위를 가르고 날아가 그린 위에 떨어졌다. 물에만 안 빠져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린 온이라니. 신나게 카트를 몰고 그린으로 달려갔다. 아 애매한 거리다. 신중하게 연습을 하고 퍼팅했다. 홀인. 인생 첫 버디였다!
공이 홀컵에 쏙 들어갈 때의 짜릿한 기분이 지금도 생각난다. 때는 작년 5월. 그때도 어렵고 지금도 여전히 어려운 연못이 있는 파 3 14번 홀에서 일어난 기적(?)이었다. 당시 나는 동반자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매일 연습에 매진하고 있었다. 열심히 연습한 결과라고 생각했지만, 그땐 골프 친지 1년 정도밖에 안 되었을 때라 얻어걸렸다는 느낌도 있었다. 그 후로는 한 번도 버디를 한 적이 없다.
그런데 바로 지난주, 파 5에서 파를 했다. 그 기분은 파 3 버디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파 5 파가 파3 버디보다 훨씬 기분이 좋았다.
나는 장타자가 아니다. 대신 공이 크게 엉뚱한 데로 가지 않고 꼬박꼬박 앞으로는 가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아주 정직하게 파 4면 4온, 파 5면 5온 정도 한다. 퍼팅을 2번에 끝낸다고 하면 더블보기다. 그런데 4온, 5온하지 못하는 홀도 있고 퍼팅을 3번 하기도 하니 이렇게 치면 늘 110타 언저리다. 비거리를 늘리고 어프로치를 정확히 하고 퍼팅도 2번 이내에 해야 타수를 줄일 수 있다. 결국 골프는 뭐 하나만 잘 쳐서 되는 게 아니라 골고루 잘해야 한다.
그런데 지난주엔 오랫동안 고장나 있던 드라이버가 제법 잘 맞기 시작했다. 내 드라이버 샷은 거의 6개월 이상을 오른쪽으로 가고 있었다. 첫 샷을 그렇게 하니 거리는 당연히 까먹고 타수는 늘어나고 자신감은 떨어지기 마련. 그래서 한동안 게을리했던 연습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페어웨이 정중앙으로 떨어지는 잘생긴 드라이버 샷을 치는 게 얼마만인지. 거리 까먹지 않고 첫 샷을 잘 치니 그다음 샷들은 크게 망하지만 않으면 그린을 향해 쭉쭉 날아갔다. 그렇게 해서 4온. 핀 바로 옆 오케이 거리에 온했다.
파 4나 파 5에서 파하는 동반자들을 보며 나도 과연 언제 저렇게 칠 수 있을까 늘 생각했는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게다가 같은 날, 다른 파 5 홀에서는 두 번이나 보기를 했다. 이건 파 3 버디와는 기분이 완전히 다르다. 그날 유독 잘 치긴 했지만 작년 5월보다는 확실히 실력이 더 나아졌다는 걸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열심히 골프를 치는 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을 때가 있다. 특히 공이 너무 안 맞을 때, 분명 열심히 연습하고 왔는데 생각대로 안될 때 그렇다. 그러나 취미 골퍼에게 골프란 쉽게 실력이 늘지 않는 데 그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주 2-3회 필드에 나가도, 그 외의 시간을 연습에 투자해도 짧은 시간 안에 실력은 절대로 늘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하다 보면 아주 조금씩 나만 알 정도로 실력이 는다. 뭔가 이렇게 더디게 성장하는 경험은 참 오랜만이다. 그러고 보니 골프를 꾸준히 친 지 벌써 3년 째다. 회사 다니는 것 외에 뭔가를 이렇게 끊임없이, 성실하게 해 보는 경험 또한 오랜만이다.
그렇지만 방심은 금물. 골프란 놈은 앞모습을 보여줬다가도 늘 뒤통수를 치니 말이다. 지난주는 잘 쳤지만 이번 주는 또 어찌 될지 모른다. 그러나 잘 칠 때도 있어야 계속 골프 칠 맛이 나는 거 아니겠는가. 인생이 안 풀릴 때도 있지만 모든 게 잘 풀리는 좋은 시기가 있는 것처럼. 그 좋은 시기는 준비된 사람에게 찾아온다는 걸 느낀다. 그러므로 또 연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