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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19홀까지

고정 멤버의 중요성

by 폼폼토스

“오늘 점심은 또 뭘 먹을까?”


전반 9홀을 마치고 후반 9홀에 들어가며 시작되는 행복한 고민. 이런 고민이 늘 즐거운 건 마음 맞는 골프 친구가 있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골프장에서 보는 돈독한 사이. 나의 고정 멤버 그녀들.


감사하게도 나는 인도에 와서 좋은 친구들을 만났다. 그런데 이 친구들과 골프까지 함께 친다. 정말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골프 친 후 동반자 때문에 묘하게 기분 나빠진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좋은 멤버가 있으면 나의 플레이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망샷이 나와도 부끄럽거나 마음이 불편하지 않다. 18홀을 마치고 속칭 ‘19홀’ 점심까지 다 먹었을 때 집안일과 육아로 돌아갈 힘이 생긴다. 아름다운 초록의 골프장에서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플레이하면 내 샷 좀 안 맞아도 괜찮다.


이 행운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는 않는다. 잘 모르는 사이에 섣불리 만들었다가 흐지부지 되는 경우도 많고, 멤버가 없어서 항상 동반자를 찾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겪어 보기 전엔 그 사람을 모른다. 잘 모르지만 함께 쳐 보는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나의 골프 친구들이 오래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그들은 앞선 글에서 말한 미덕을 모두 갖추었다. 입만 열면 굿샷을 남발하고, 남의 스윙을 함부로 지적하지 않는다. 잘 안 맞아도 늘 명랑하게 임하며, 남의 멀리건에 관대하다. 때로는 내가 서두르는 걸 귀신같이 알아서 천천히 치라고 말해 준다. 그래서 나의 고정 라운딩은 늘 편안하고 기분 좋다. 사실, 내가 꼽은 미덕은 그녀들에게서 배운 것이다. 나도 새롭게 함께 치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대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슬프게도 그 고정 멤버가 이제는 한 명 밖에 남지 않았다. 그 한 명의 멤버마저도 이번 여름에 한국으로 돌아간다. 한 명씩 귀임할 때마다 귀임하는 당사자들은 남은 멤버들 걱정을 해 준다. 그리고 남은 멤버를 위한 고정 멤버 만들어주는 데 열을 올린다. 그런데 그 또한 쉽지는 않다. 이미 고정 멤버가 있거나, 다른 골프장 회원이거나. 사람 좀 안 맞아도 대충 골프 같이 칠 수 있는 사이면 고정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것을 어쩌랴. 나는 골프보다 사람이 더 먼저인가 보다.


인도에 온 첫 해 5월부터 골프장에 나가면서 고정 멤버 그녀들과 숱하게 많은 공을 쳤다. 그러면서 인도의 더위와 미세먼지에 적응하고, 없는 재료로 요리하는 고민을 나누고, 실없는 농담도 하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3년 차. 골프 때문에, 그리고 고정 멤버 때문에 쉽지 않은 이곳에 적응할 수 있었다. 감사하다.


지난주, 유일한 고정 멤버 그녀 없이 혼자서 골프장에 갔다. 생각보다 외롭지 않았고 혼자서 조용히 치는 게 꽤 괜찮았다. 그녀는 이제 곧 떠나겠지만 또 누군가 오리라고 생각한다. 헤어짐이 있으면 만남이 있는 법이니까. 그리고 그 사람 또한 소중한 인연이 되길 소망해 본다. 숱하게 치다가 잘 맞아 뻥 날아가는 공처럼, 수많은 지나가는 만남 속 누군가 내 인연이 될지 모를 일이다.


지난주부터 인도의 더위가 심상치 않아 졌다. 40도를 웃도는 날씨에 열풍이 불어온다. 그러나 의지의 한국인은 이런 날씨에도 필드에 나간다. 골프가 좋아서기도 하지만, 같이 하는 사람들이 좋아서가 더 크다. 함께할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쉽지만 감사하는 마음으로, 한 타 한 타 더 정성 들여 치고 점심 메뉴 고민도 더 치열하게 해 봐야겠다.



c07246d411ad62dbe90d0c63f75c2282.jpg <이미지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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