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폐를 끼치지 말자
총체적 난국이다. 드라이버는 어떻게 잘 맞긴 했는데 레스큐가 단 한 번도 시원하게 안 맞는다. 뒤땅 치거나 탑볼 나거나 뽕 뜨거나. 그린 주변에서 칩샷을 까서 그린을 넘기고 퍼팅은 3 퍼팅이 기본. 단 한 개도 문제가 아닌 샷이 없다. 동반자들은 나 두세 번 칠 동안 한 번 친다. 퍼팅은 옛날에 다 끝내서 다들 나를 기다리는 중이다. “천천히 끝까지 쳐.”라고 말들은 해주지만 나는 이미 미안해서 안절부절. 이대로 치다가는 고정 멤버에서 퇴출될 것 같다.
물론 나의 동반자들은 그러지는 않았다. 멤버 중에서 골프를 가장 최근에 시작한 내가 헤매는 건 당연했지만 계속 헤매는 게 당연한 것도 결코 아니었다. 내가 몇 개 쳤는지 점수를 생각할 수도 없었다. 동반자들과 어느 정도 속도를 맞추고 나 때문에 게임이 지연되는 걸 막는 게 급선무였다. 그러려면 연습밖엔 답이 없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필드를 나가기 시작한 작년 한 해는 골프에 몸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립을 잡을 때 잘못 힘을 줘서 내 오른쪽 엄지 손가락 안쪽은 늘 살갗이 벗겨져 있었다. 그럴 때는 압박 밴드를 감고 연습했다. 몇십 번 스윙하면 그 밴드가 떨어져 나갔다. 그럼 또 감고 연습했다. 시간이 지나 그립 잡는 법에 익숙해지고 왼손을 주로 쓰게 되었을 때는 왼손 중지부터 약지까지 굳은살이 박였다. 그 시간은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이기도 했다. 골프를 더 잘쳐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동반자들에게 민폐는 끼치지 말자는 마음으로 연습에 임했으니 당연히 즐겁지 않았다. 게다가 워낙 비거리가 안 나오는데 더 이상 늘어날 기미도 안보였으니 연습하면 언젠가는 늘긴 하는 건가 생각했던 순간들이 더 많았다.
모든 방법을 총동원했다. 연습 다니는 스크린 골프장에서 매일 코치를 붙들고 원포인트 레슨을 받았고, 필드 레슨도 나갔다. 스크린 골프장은 공이 날아가는 모습을 실제로는 볼 수 없기 때문에 꾸준히 야외 골프 연습장도 갔다. 야외 골프 연습장도 타석에는 대부분 인조 잔디 매트가 깔려 있기 때문에 잔디가 깔린 타석에서도 연습했다. 필드에 나가는 날, 아직 멤버들이 도착하지 않아 기다려야 할 때는 드라이빙 레인지에 가서 20개라도 공을 치고 필드로 나갔다. 골프는 결국 숏게임이라 어프로치 연습에만 매진한 날도 있었다. 골프에 거의 내 모든 시간을 바쳤다. 바쁜 한국에서였다면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조금씩 비거리가 늘어나고 스윙 자세도 안정적으로 바뀌어 갔다. 연습할 때 공이 좀 잘 맞은 날이면 어서 빨리 필드에 나가 달라진 나의 실력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고 나서 필드에 나간 날이면 여지없이 나의 기대는 산산조각 났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내 인생에 두 가지가 있었으니, 하나는 육아요 다른 하나는 골프였다.
‘아니, 연습할 땐 잘되었는데 도대체 오늘 왜 이런 거야.’
멤버 중 제일 실력이 달리는 나는 속에서 부아가 치밀었다. 연습의 시간은 배신하지 않는다는데 대체 나는 왜 이 모양인지. 공은 분명 가만히 있는데 안 맞는 걸 보면 역시나 또 내가 문제다. 자기혐오와 반성을 오가는 이 시간은 마치 오랜 친구처럼 찾아온다. 그럴 때 의기소침해서 무너져 있으면 안 된다. 그러면 결국 남은 홀을 망치게 될 뿐이다. 얼른 정신을 차리고 연습했을 때 잘 맞았던 샷을 머릿속으로 복기해야 한다. 내가 오버스윙하지 않는지, 체중이동은 제대로 했는지, 헤드를 떨어뜨렸는지 이런 것들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스윙하기 직전에 너무 많은 것들을 생각하면 오히려 샷을 망친다. 막상 어드레스 하고 백스윙을 하면 그때는 그동안 내가 연습했을 때 쳤던 수많은 샷을 믿고 심플하게 쳐야 한다. 내가 운동을 하는 건지 정신수양을 하는 건지. 그래서 나는 결론 내렸다. 골프는 운동이 아니다. 골프는 멘탈 스포츠이다.
피나는 연습의 시간 끝에 7번 아이언 비거리가 늘어나고 안정적으로 칠 수 있게 되었다. 7번 아이언은 날 배신하지 않는다는 나만의 통계에 근거한 믿음도 생겼다. 그때 나는 레스큐를 잡았다. 더 멀리 공을 보내고 싶었다. 인간의 욕심이란! 레스큐를 치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의 골프는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7번 아이언과 레스큐는 치는 방법이 완전히 달랐다. 내가 또 왜 이 고생을 하고 앉아 있을까. 레스큐에 익숙해지는 연습을 또 죽어라 해야 했다. 필드에 나갔는데 단 한 번도 시원하게 맞지 않은 날도 있었다.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그 때 나는 잘 안쳐진다고 마냥 망연자실해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아니다. 18홀이 끝나기 전까지 제대로 맞는 느낌은 한 번이라도 느껴보고 가야겠다는 마음으로 매 스윙에 임한다. 공과 조금 가까이 서보기도 하고 멀리 서보기도 하고, 공을 때린다는 느낌보다는 어깨를 돌려 지나간다는 느낌으로, 늘 고질적인 문제인 헤드업을 안 하기 위해 왼쪽 눈은 끝까지 공을 주시하는 등 연습 때 중점을 두었던 모든 사항을 필드에서 모조리 꺼내 본다. 여전히 내 몸은 말을 듣지 않아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한 타 두 타 치다 보면 공이 맞았다는 느낌도 없이 뻥하고 시원하게 날아가는 장타를 볼 수 있다. 저게 진짜 내가 친 샷이 맞나? 날아가는 샷을 황홀하게 구경하는 나와 그런 나를 향해 굿샷을 외쳐 주는 동료들의 목소리.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다. 이 맛에 골프 친다!
민폐를 끼치지 말자는 신념은 자연스럽게 실력 향상으로 이어졌다. 다행이다. 나는 점수에 욕심내는 사람도 아니지만, 만약 점수에 욕심 냈었다면 일찌감치 나가떨어지고 말았을 것이었다. 점수는 하루아침에 오르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민폐를 끼치지 말자는 생각은 어찌 보면 동반자와 함께 플레이해야 하는 골프라는 스포츠에 꼭 맞는 생각이 아닌가 한다. 동반자는 게임을 함께하는 경쟁자이지만, 각자의 샷을 치는 독립적인 관계, 그래서 존중하고 배려해야 할 상대다. 필드에서는 나만의 플레이에 집중하는 게 맞지만, 잘 안 맞는다고 뜻대로 안 된다고 기분이 나빠 있으면 그 기분을 곧 동반자도 알아차리게 되고 그의 플레이에도 영향을 준다. 골프는 참으로 생각할 게 많은 운동이다. 그러나 그래서 더 매력적이기도 하다.
골프는 동반자도 중요하지만, 또 생각해야 할 게 있으니 그건 바로 앞팀 뒷팀이다. 특히 뒷팀은 골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골린이에게는 너무나 무서운 존재다. 1번 홀에서 대기할 때 뒷팀이 없길 간절히 바라보지만 그건 불가능한 소원이다. 필드 나간지 얼마 안되었을 때는 1번 홀에서 늘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골프는 다른 누가 도와주는 게 아닌, 팀 플레이가 아닌, 온전히 나 혼자 하는 스포츠이니까. 그런데 도대체 1번 홀 울렁증은 어떻게 극복한담?
(다음 화 '스윙하라,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