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살 닥스훈트의 투병일지
4월 23일 토요일.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수의사에게 전화했다. 그는 엊그제 “이틀만 지켜보고 상황이 악화될 경우 바로 MRI를 촬영하자”고 했다. 그동안 MRI 촬영을 위해 수면마취를 강행했다가 깨어나지 못할까 봐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 이후 감당해야 할 수술도 가혹하게만 느껴졌다.
시간을 지체하는 사이 고통은 임계점을 넘었다. 어차피 편하게 보내줘야 한다면, 마지막으로 MRI를 촬영해 병의 실체를 확인하고 싶었다. 수면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해도 깊은 잠을 자도록 영원한 안락의 바다에 놓아줄 것이다.
수의사가 빠르게 움직였다. 일반적으로 반려동물의 MRI와 CT 촬영은 수술 병원과 연계된 별도 영상 촬영 전문 병원에서 담당한다.
이튿날 오전 10시. MRI 촬영에 앞서 간단한 피검사를 했다. 여러 항목 가운데 간 수치(ALP)가 빨간 글씨로 표기돼있었다. 정상 수치가 47에서 254 사이인데, 무려 3067이었다. 다른 항목에도 ‘빨간불’이 떴지만, 간수치가 가장 높았다. 수의사는 “장기간 약을 복용해서 몸에 무리가 갔을 것”이라고 했다.
검사를 마치고 서울 청담동의 동물의학센터로 이동했다. 마취 전문의가 기계적인 목소리로 안내 사항을 읊었다. 몇 가지 서류에 동의한 후 간호사에게 탁구를 맡겼다. MRI 촬영은 2시간 이상 소요됐다. 중간에 “정밀 소견을 위해 CT까지 촬영하는 게 좋겠다”는 수의사의 전화를 받고 추가 촬영에 동의했다.
간호사의 두 팔에 들려 나온 탁구는 몽롱한 표정을 하고 ‘여기가 어디냐’는 듯 눈을 깜빡거렸다. MRI와 CT 촬영 비용으로 150만원을 결제하고 집으로 향했다. 그로부터 4시간 후. 평온한 침묵을 깨는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수의사에게서 온 전화였다. 휴대폰 액정을 한참을 바라보다 전화를 받았다.
그는 말을 아꼈다. 핵심만 짧게 전달한 후 전화를 끊었다. 그땐 그의 말이 의미하는 바를 몰랐다. 그저 안도했다. ‘척추 디스크인 줄 알았는데 종양이라니. 참 다행이다. 종양은 수술로 제거하면 되는 것 아닌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철저한 무지에서 비롯된 생각이었다.
골육종은 ‘뼈에 생기는 악성 종양’이라고 했다. 암이라지만 자세히 아는 것이 없어 검색을 통해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했다. 종합한 내용은 이랬다. 골육종은 희귀암에 속한다. 종양은 강아지의 다리뼈에 퍼지는 경우가 가장 많으며 코·척추·골반·갈비뼈 등에도 생긴다.
전이 속도가 매우 빠르고 광범위해 다른 장기까지 망가트리며, 극심한 통증을 동반한다. 운 좋게 초기에 발견하면 해당 부위를 절단한 후 항암 치료를 병행해 생존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치료 성공 사례로 앞다리가 하나뿐인 강아지의 사진도 있었다.
심장이 고동쳤다. 수많은 물음표로 가득했던 퍼즐이 저절로 맞춰졌다. ‘척추는 다리처럼 절단할 수 없다. 그마저도 초기에 발견해야 전이를 막을 수 있는데 탁구는 말기다. 이미 탁구의 몸 곳곳에 악성 종양이 침투했다. 이미 장기까지 전이됐을지도 모른다. 수술이 불가능할 것이다.’
아마 수의사는 가소견만으로 이 사실을 모두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랬구나. 침 치료, 극저온 치료, 초음파 치료…. 어떤 재활 치료도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이미 묵사발이 된 몸을 꼬챙이로 휘젓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래서 갈수록 신경질적으로 변해간 것일까.
그 사이 탁구의 눈이 서서히 열렸다. 고통의 심연이 정곡을 응시했다. 마취가 풀리자 뼈 마디마디의 감각이 매질을 시작한 것 같았다. 가냘픈 신음소리가 귓가에서 맴돌았다. 아직 근무시간이었다. 애써 일에 집중하는데 글자가 읽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