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두 다리로 가로지르기
마라톤은 예능이 되지 못한다는 말에 동의했다. 달리기의 움직임은 (전신 근육을 쓰는 것과는 별개로) 단순해서 지켜보기에 그렇게 재밌지 않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통념상, 마라톤에는 고통이 수반된다. 아주 짧아야 두 시간, 보통은 서너 시간 이상 계속되는 타인의 고통이 어떻게 즐거움이 된단 말인가. 마라톤으로 인한 ‘감동 실화’ 영화들을 우리는 어릴 때부터 봐왔다. 마른 몸, 찌푸린 얼굴... 그리고 무엇보다 달리고 나면 쓰러질 수밖에 없을 것 같은 42.195킬로미터의 거리. 이걸 어떻게 울지 않고 볼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까 다시, 마라톤은 재미가 없을 것 같다. 최근에 예능으로 방송된 유명인의 첫 마라톤 역시 그랬다. 한 번은 감동실화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게 시리즈라면? 시청자의 외면을 피하긴 어렵지 않을까.
나는 극단적으로 고통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힘든 건 싫다. 재밌는 게 좋다. 웬만하면 꿀 빨며 살고 싶다. 그런 내게 마라톤에 대한 도전? 꿈도 목표도 아니었다. 10킬로미터를 뛰는 것도 힘이 드는데 42킬로미터를 어떻게 달린단 말인가. 내 속도로는 무조건 5시간 가까이 달려야 하는데. 뛰고 나면 분명히 다치겠지, 아프겠지. 부상을 당하는 건 순간이지만 고통은 오래간다. 클라이밍 하다가 발목 몇 번 해먹어봐서 알고 있다. 그러니까 2023년 3월 즈음까지도 나는 풀마라톤을 뛸 생각이 없었다. 하프 정도는 뛰어보고 싶었다. 안전제일주의자인 나는 늘 목표를 소박하게 잡는다. 아니, 이 문장에도 어폐가 있다. 20킬로미터… 소박하지 않은 거린데.
그러나 세상은 나의 속도를 맞춰주지 않았다. 코로나 이전에는 분명 하프 부문이 있었을 메이저 마라톤 대회들이 코로나 이후 대회에서 하프를 없애기 시작했다. 2023년의 가을 대회에서 하프를 뛸 수는 없었단 뜻이다(물론 하프 대회가 따로 생기긴 했다. 그러나 티셔츠의 디자인이 맘에 들지 않았다). 10킬로미터와 풀마라톤 사이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뛰어본 코스와 거리는 재미없었다. 심지어 두 부문사이에 참가비가 만 원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갑자기 머릿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이 참에 풀마라톤을 뛰어보는 건 어때? 그쯤이면 햇수로 삼 년을 꼬박 달린 게 됐다. 풀마라톤쯤은 뛰어봐야 러닝 해봤다고 어디서 말할 수 있지 않겠어? 진정으로 악마의 속삭임이었는데 문제는 그 목소리가 내 거였다.
이제까지 진지하게 러닝을 대한 적은 없던 것 같다. 그냥 즐겁게 꾸준하게 뛰는 게 작지만 원대한 목표였다. 그러나 이런 사람도 결국에는 풀코스를 뛰게 되는 게 러닝의 마력일지도… 대회는 접수로부터 반년 정도가 남아있었다. 반년이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경쟁을 뚫고 참가 신청을 했다. 이후 42킬로미터의 부담을 안고 혼자 훈련을 했다. 아주 혼자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대회 넉 달 전쯤 나이키런클럽 애플리케이션에서 풀마라톤 훈련 플랜 서비스를 시작했으니까… 나이키에 소속된 세계 최고의 코치들이 주마다 나를 응원해 줬다. 그 응원이 영어여서 문제지.
너무 더운 여름엔 잘 뛰지 못했다. 그래서 ‘처서매직’ 이후로 거리를 늘려 월에 백 킬로미터를 넘겨가며 뛰었다. 풀마라톤을 뛰려면 달에 이삼백 킬로미터를 뛰어야 한다는데 나는 아무리 해도 백오십 킬로미터를 넘기기가 어려웠다. 한 번에 이십 킬로미터를 넘겨 뛰기를 서너 번, 삼십 킬로미터 넘겨 뛰기를 두어 번 겨우 하고 나니 대회날이 가까워졌다. 조바심이 났다. 이 주 남기고서는 ‘첫 풀코스 마라톤 후기’를 엄청 찾아봤다. 삼십오 킬로미터를 넘기면 무조건 힘들다더라, 어디서부터는 정신력이라더라, 내리막길에는 쥐가 날 수 있는데 쥐 나면 못 뛴다… 모두 고통을 얘기했다. 더 무서워졌다. 내가 왜 이걸 신청했지? 자책을 몇 번 했더니 시간이 훌쩍 갔다.
같은 대회의 십 킬로미터 부문에 참가하는 친구를 만난 건 대회 일주일 전이었다. 그때부터는 길거리에 내가 참가하는 그 마라톤으로 인한 도로통제 안내 현수막이 붙어있었다. 서촌에서 점심을 먹을 때도 그 현수막이 보였다. 세종대로가 통제되기 때문이다.
친구와 함께 이걸 보는데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다음 주 이 시간에는 광화문 앞을 뛰는 거네.
재밌겠는데?
차로 꽉꽉 찬 도로를 달려볼 기회는 이런 메이저 마라톤 대회가 아니고서는 없을 것이다. 어차피 나는 기록에 욕심이 없다. 그저 생전 처음 달려보는 거리를 무사히, 도로 통제가 끝나기 전에 달리기만 하면 됐다. 그거면 되는데, 쫄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지나갔다. 재밌을걸? 진짜 재밌을걸? 물론 이전에 집 근처에서 삼십 킬로미터를 넘게 달리며 사람이 이렇게 긴 거리를 달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그거고.
그래도 풀코스 후기를 찾아보는 짓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렇게 대회 전날이 되고, 대회날이 되었다. 비가 예보되어 있어 전날부터 많은 지인들의 연락을 받았다. 괜찮겠냐, 조심히 뛰어라 그런 메시지들. 이상하게 신기하고 감동적이었다. 살면서 마지막으로 이런 응원을 받아본 게 아마도… 수능 전? 아무래도 마라톤이 힘든 운동이라 그렇겠지, T같은 생각을 하면서도 F같은 뭉클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당일. 헐레벌떡 준비하고 출발선에 섰다. 새벽 내내 내리던 비도 마라톤을 뛰라는 듯이 그쳤다. 긴장되어 잠을 잘 못 잤는데도 이상하게 몸이 가뿐했다. 물론 환복 하는 동안 에너지젤 하나를 잃어버리고 붙이려던 스포츠테이프도 덜 붙였고 심지어 출발 전부터 너덜거리기까지 했지만 이젠 돌이킬 수 없었다. 풀코스 출발선의 가장 후미에서 선두가 모두 출발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곧, 스타트.
연습 때 신던 신발을 그대로 신었다. 대회에서는 나도 모르게 페이스가 빨라지게 마련이라 천천히 뛰려는 노력을 해야 했다. 겁이 많아 페이스를 보수적으로 설정했다. 나는 정말 완주 만이 꼭 하고 싶었으니까. 4시간 50분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의 완주를 도와주는 페이서가 나와 비슷하게 달리고 있었다. 이 사람만 따라가야지. 그러나 중간에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내 앞에는 5시간 완주 페이서가 달리게 되었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완주가 중요하니까. 숨은 차지 않았다. 딱 조깅 페이스였다.
작년에 같은 대회의 십 킬로미터 부문을 달린 적이 있어 칠 킬로미터 정도까지는 아는 주로였다. 양화대교를 건너고, 국회의사당을 지나는. 이후부터는 아주 모르는 길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생각했다. 이거, 재밌는데?
이쯤 되면 페이스가 비슷한 사람들로 주변이 추려진다. 비슷한 속도의 여러 사람들과 달리는 일을 나는 정말로 처음 해보는 거였다. 게다가 대회니까 오 킬로미터마다 물을 주고 사람들이 응원도 해준다. 광화문 앞을 달릴 때는 비가 세차게 내렸는데, 우중런도 처음이었어서 더 재밌었을지도 모른다. 쏟아지는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천천히 뛰어 서울을 구경했다. 다 아는 길이었는데 이렇게 뛰니까 또 새롭게 느껴졌다.
이십 킬로미터가 넘어서면서는 먹을 것도 받았다. 바나나 반 개를 씹어먹으며 와 혼자 장거리 훈련할 때는 내가 다 챙겨야 하는데… 좋다… 싶어졌다. 챙겨 온 젤이 물릴 때쯤 나타나는 바나나는 오아시스 같았다. 그리고 그때쯤부터는 십 킬로미터를 펀 런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보다 멀리 뛰어봐야만 느껴지는 것들이 있더라고.
후반부로 갈수록 응원 인파가 늘었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배번에 적힌 이름을 보이는 대로 불렀다. 물이며 콜라를 마시게 해 주고 파스를 뿌려주기도 한다. 대부분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이거나 그들의 가족, 혹은 정말 일반 시민일 수도 있다. 순간 아, 이게 마라톤의 순기능이구나 싶어졌다. 서울은 아무리 생각해도 환대가 있는 도시는 아니다. 대도시인 데다 다들 바쁘고 힘들다 보니 서로를 건조하게 대하는 게 미덕인 도시가 되었다. 하지만 마라톤을 할 때의 서울은 환대의 도시였다. 나를 응원하고 맞아주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니. 서울에 살며 처음 받아보는 환영이었다. 깨달았다. 마라톤은 고통의 행사가 아니구나, 축제구나. 미디어에 노출된 건 마라톤의 극히 일부일 뿐이구나.
그러니까, 나의 첫 마라톤은 정말정말 재밌었다. 시원하고, 따뜻하고, 즐거웠다. 몸을 장시간 쓰긴 했으니 어깨며 다리가 아프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숨이 차지 않는 속도로 뛰면 다섯 시간 동안 달려도 고통스럽지 않다는 것을 몸소 느꼈다. 그게 42.195킬로미터라는 엄청난 거리라도. 여기엔 새로운 도시의 풍경이 있었다. 마라톤이 일종의 여행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왜 많은 사람들이 풀코스 마라톤을 수 번, 혹은 수십 번을 뛰는지 알 것도 같았다.
그렇게 도시를, 사람을 구경하며 나는 쉬지 않고 끝까지 뛰었다. 결승선을 통과하는 나를 본 친구가 놀라며 물었다. 왜 이렇게 멀쩡하게 들어와요? 그러게, 나도 놀랐다. 내가 너무 즐겁게, 멀쩡하게 결승선을 통과해서. 목표한 다섯 시간 안쪽으로도 거뜬히 들어왔다. 삼 년을 뛴 보람이 있었다. 결승선을 통과하니 그 간의 시간이 내 안에 있었음도 느껴졌다.
뛰어보니 알겠다. 어쩌면 마라톤은 예능이 될 수도 있다. 많은 사람이 보기에 재밌는 예능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마라톤을 뛰는 그 자신에게는 어떤 예능보다 재밌는 콘텐츠가 될 수도 있겠다. 온몸으로 도시를 만나고, 바람을 맞고, 같은 목표의 사람들을 만나는 일. 뛰어봐야만 만날 수 있는 풍경이 있다. 그리고, 이 재미는 꼭 이만큼 뛰어봐야만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