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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종혁 Nov 17. 2019

시작하는 자, 디자인의 연옥에 들어서다

 요즘 들어 부쩍 외주 작업이 늘어났다. 포스터 작업으로 시작한 디자인이지만 편집 디자인을 거쳐 어느새 또다른 '디자인'의 언저리에 도달해 있었다. 물론 생략된 수많은 시행착오와 작업물들, 그리고 나같은 열등생을 가르쳐준 유튜브, 인터넷 강의, 현장 강의 선생님들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나의 주업무는 크몽이라는 프리랜서 중개 플랫폼을 통해 윅스, 아임웹 등과 같은 웹빌더로 사이트를 디자인해 발행하는 일이었다. 코딩을 하지 못하는 미생인 탓에 웹디자인의 개념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웹빌더로 시작한 일이 어느새 2-30개의 작업물을 남기게 되었다.


 물론 도장깨기 하듯 하나 하나 정복해온 건 당연히 아니었다. 디자이너란 직업을 향해가며 방향을 잡아나갔다고 생각하면 되려나. 클라이언트들은 주로 나에게 쇼핑몰이나 포트폴리오, 그리고 정말 각양 각색의 기능을 지닌 홈페이지를 의뢰하는데 부끄럽지만 아직까지도 의뢰인의 입맛을 못 맞추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보통 클라이언트가 큼지막한 컨셉의 방향을 제시하면 이를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작업자의 개성이 담긴 예쁜 디자인을 제시해야만 하는데 이는 누구에게나(나에게만일까? 나란 사람의 문제일까.) 쉽지 않은 작업이기 때문이다. 몇 가지 시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에는 합격 목걸이를 받을 수 없다. 그럴 때마다 부족함을 실감하며 나 자신을 다그친다. "이 일이 내 일이 아닌가... 역시 비전공에게는 무리인가." 이런 생각이 들 때, 내가 있는 이곳이 바로 '디자인의 연옥'이다.


 연옥이란 '죽은 사람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남은 죄를 씻기 위하여 불로써 단련받는 곳.' 다시 말해 천국에 이르기 전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시련의 공간이다. 디자인의 연옥 역시 같은 개념이다. 남부끄럽지 않은 프로 디자이너가 되기 전, 디자인을 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실력을 재단하고 단련하는 시기. 당연해보이는 이 시기를 굳이 '연옥'이라 이름 붙인 건, 실무자가 되기 직전 혹은 된 직후 자신의 실력과 흥미 그 사이에서 굉장히 복잡다단한 감정을 느끼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미 수도 없이 많은 작업물들을 분석하고 재구성해봤기에 눈은 높아질대로 높아졌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나의 손과 머리는 그 자체로 빛을 내는 저 대단한 디자이너들의 발끝조차 따라갈 수 없다. 물론 만들어내는 결과물들은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지만 왠지 모르게 만족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문제는 약간의 좌절이 찾아온다는 점. 때로는 너무도 커진다는 점. 그래도 다행인 연옥은 지옥에 정도로 죄를 짓지 않은 자들이 가는 곳이다. 좌절해 일을 그만둘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거래의 와해나 결과물에 대한 불만족은 내가 비전공자라서 혹은 재능이 없어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타인의 기준을 온전히 맞추기에는 아직 그 정도가 여물지 않은 것일 뿐. 그저 어떤 디자이너든 거쳐가야하는 연옥의 상태일 뿐이다. 의뢰인의 마음에 들지 않는 디자인을 말로 구슬려 팔지만 않으면 된다. 연옥에 있다는 말은 다시 말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만약에 그렇지 못하다면 연옥이 아닌 지옥에 갔을 터. 연옥을 지나야 천국에 간다고 했던가. 좌절하지 말고 열심히 지속하는 삶을 살자. 이후의 가능성은 그저 지속의 문제가 아닐까.


(연옥에 대한 표현이 비유라는 건 자명하지만 반복적인 언급으로 오해를 낳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디자인을 못 한다고 안 한다고 지옥에 가는 게 절대 아니라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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