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획은 최악의 조건에서도 버틸 수 있는가.
아닌 것 같지만 생각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귀농 정책 자금에 이끌려 귀농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지자체별로 차이는 있지만, 전국 공통으로 농촌 인구 감소를 극복하고자 하는 해결 방법으로 범국가적인 귀농 정책을 시행하고 있고, 대표적으로 어느 지역에서나 예외 없이 귀농인에 대한 3억 저금리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다. 만 40세 미만 청년인 경우에는 최대 5억까지 가능하고, 경영체 등록을 완료하면 3년간 월 평균 100만원의 생활자금도 지급된다. (1년차 110만원, 2년차 100만원, 3년차 90만원)
조건만 보면 매력적이다.
물론 무조건 귀농을 했다고 덜컥 빌려주는 것은 아니다. 사업계획서를 제출해야 하고, 서류를 통과한 뒤 면접도 거친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경쟁률도 만만치 않다. 매년 연말 또는 연초에 모집을 한다.
그런데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지점이 있다.
이 과정을 통과했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선발이 되었다고 해도 대출은 농협 심사를 다시 거쳐야 하고, 원하는 만큼 실행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정책 시행 초기에는 농신보(농림수산업자신용보증기금) 보증으로 비교적 수월하게 실행되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분위기는 달라졌다. 과거보다 심사가 까다로워졌고, 원하는 금액을 모두 실행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많다.
아마도 현실적인 이유일 것이다. 상환 시기가 도래했음에도 원금 상환이 원활하지 않은 사례가 늘어났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연체율은 2018년 대비 2025년 기준 5배 이상 증가했고, 자영업자보다 높은 수준이라는 자료도 있다.
대출은 정책이지만, 상환은 금융이다.
농지 매입의 경우 담보 평가에 따라 결정되고, 시설 투자 역시 결국은 상환 능력을 기준으로 판단된다.
만약 3억 대출을 실행했다고 가정해보자. 5년 거치 동안은 연 600만원 이자를 내면 된다. 문제는 그 이후다. 거치가 끝나면 매년 약 3,000만원을 상환해야 한다. (*청년의 경우 5억, 5년 거치 20년 상환 구조이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이 농사가 연 얼마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우리는 조금 더 현실적으로 귀농해서 먹고 사는 문제를 생각해봐야 한다.
귀농을 해보니, 생각보다 전업 농부만 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농사를 짓는 규모나 작물에 따라 다르지만, 농업 소득만으로는 원하는 수준의 수익을 내기 어려워 부업이나 겸업을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 통계를 보면 순수 농업소득은 연 1천만원 내외다. 직불금, 각종 보조금, 농업인 수당 등을 합쳐야 2천만원을 넘는 수준이다. 겉으로 보이는 농가소득 5천만원에는 농외소득과 이전소득이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다. 실제로 2024년 기준 농업소득은 전체 농가소득의 20%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 숫자가 의미하는 바는 단순하다.
농사만으로는 평균적인 상환 구조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3억 대출의 연간 상환액이 약 3,000만원 이상 이라고 할 때, 이를 감당하려면 최소한 그 이상, 안전하게는 3,600만원 이상의 순현금이 필요하다. 이것을 금융에서는 DSCR이라고 부른다. 연간 벌어들인 현금이 원리금 상환액을 몇 배 커버하느냐를 보는 지표다.
1이면 간신히 버티는 구조다. 1.2 이상은 되어야 위험을 견딜 수 있다. 그렇다면 순수 농업소득 1천만원 내외의 구조에서 3,000만원 상환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부족한 2천만원은 어디에서 채워야 하는가. (사실 이것도 기초적인 가계지출을 포함할땐 더 커지게 된다.)
배우자의 외부 소득일 수도 있고, 추가적인 농외 활동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대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을 미리 설계하지 않으면 거치 기간이 끝나는 순간 문제가 현실이 된다. 보통 기반이 없는 귀농인들은 땅을 중심으로 한 규모의 경제를 일으키기 어렵기 때문에 하우스나 스마트팜과 같은 시설작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러한 설비에는 초기 투자 비용이 크다. 대출을 일으켜 시설을 설치했을 때, 기대 수익이 단순히 “매출”이 아니라 실제 상환액과 가계지출을 모두 감당할 만큼의 “현금”으로 남는지 계산해보아야 한다.
어쩌면 귀농은 작물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대출 상환 구조와 현금 흐름을 설계하는 문제다. 이 질문을 피한 채 시작하는 귀농은 준비된 선택이라기보다, 유예된 위험에 가깝다.
그렇다면 왜 귀농 사업계획서는 대부분 낙관적으로 작성될 수밖에 없을까.
첫 번째 이유는 구조다.
정책자금을 받기 위해서는 사업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사업계획서는 결국 ‘가능성’을 증명하는 문서다.
수익성이 낮고 위험이 높다는 계획서를 써서 통과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계획서는 자연스럽게 이렇게 흘러간다. 예상 수확량은 평균 이상으로 잡히고, 판매 단가는 현재 시세를 기준으로 계산되며, 판로는 비교적 원활하게 확보된 것으로 가정된다.
하지만 현실의 농업은 평균을 잘 지키지 않는다. 기후는 해마다 다르고, 병해충은 예고 없이 오고,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움직인다. 사업계획서는 “정상적인 해”를 전제로 쓰인다. 그러나 대출 상환은 “변수가 발생한 해”에도 동일하게 진행된다. 여기서 첫 번째 균열이 생긴다.
두 번째 이유는 심리다.
사람은 결정을 먼저 하고, 계산을 나중에 맞추는 경향이 있다.어쩌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귀농을 결심한 상태에서 작성하는 사업계획서는 이미 방향이 정해진 상태에서 만드는 논리 구조다.
“이 작물은 성장성이 있다.”
“스마트팜은 생산성이 높다.”
“직거래를 하면 마진이 좋다.”
이 모든 문장은 틀리지 않다.하지만 그것이 곧 ‘내가 안정적으로 상환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낙관적인 사업 계획서에는 보통 세 가지가 과대평가된다.
수확량
단가
판매 속도
그리고 세 가지는 과소평가된다.
시설 유지비
인건비(본인 노동 포함)
판매 리스크
이 차이가 결국 DSCR을 왜곡시킨다.
세 번째 이유는 시간에 대한 착각이다.
5년 거치라는 구조는 심리적으로 여유를 준다. “5년 안에 자리 잡으면 되겠지.” 하지만 5년은 긴 시간이 아니다. 시설 투자 후 생산 안정화, 판로 확보, 브랜드 구축까지 생각하면 실질적으로 안정화까지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 그 사이 발생하는 현금 부족은 어떻게든 메꿔야 한다. 거치가 끝나는 시점에 DSCR이 1.0 미만이면 그때부터는 농사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상환 일정을 고민하게 된다.
농업은 계절을 따르지만 대출은 달력을 따른다.
이 단순한 사실이 사업계획서에는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다. 그래서 귀농 사업계획서는 본질적으로 낙관적일 수밖에 없다. 낙관적이어야 통과 가능성이 높고, 낙관적이어야 실행 결심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낙관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리스크가 계산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사업계획서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것은 최선의 시나리오가 아니라, 최악의 해에도 DSCR 1.0 이상이 유지되는가에 대한 계산이다. 적어도 제출할 사업계획서 작성 이전에 미리 계산되어야 한다.
평균 작황이 아니라, 수확량 80% 수준에서도 상환이 가능한지. 단가가 10% 하락해도 버틸 수 있는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그 사업계획서는 설득 문서일 수는 있어도 생존 설계도는 아니다.
귀농은 실패할 확률이 높은 산업이기 때문이 아니라, 변수가 많은 산업이기 때문이다. 변수가 많은 산업에서 낙관만으로 시작하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리스크다.
그래서 귀농을 준비한다면 가장 먼저 써야 할 문장은 이것이다.
“이 계획은 최악의 조건에서도 버틸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