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조건에서 버틸 수 있는 작물은 무엇인가?
귀농을 마음먹었다면 중요한 선택이 남는다.
어디로 갈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기를 것인가.
이 두 가지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한 질문 같지만, 막상 현실에 닿으면 이 둘은 서로 강하게 얽혀 있다.
‘어디로 갈 것인가’가 먼저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고향이거나, 여행 중에 유난히 마음에 남았던 곳이거나, 이미 감정이 쌓여 있는 지역이 있기 때문이다. 고향이거나 귀농을 결심하기 전부터 그 지역은 어느 정도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셈이다.
*실제 한조사에 따르면 귀농 농가 대부분은 연고가 있는 지역으로의 귀농이 약 20%로 가장 높았다.
반대로 작물은 대개 나중에 고민하게 된다. 특정 작물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매력을 느껴온 사람이 아니라면, 대부분은 귀농을 결심한 뒤에야 “무엇을 기를 것인가”를 탐색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지역과 작물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우리나라의 농정 구조는 지역 특산물 중심으로 움직인다. 각 지자체는 지역을 대표하는 작물을 정하고, 예산을 투입하고, 브랜드를 키운다. 예를 들어 논산시의 딸기, 성주군의 참외, 문경시의 오미자, 제주특별자치도의 감귤처럼 전국적으로 브랜딩이 된 지역들이 있다.
딸기를 하겠다면 논산이 유리하고, 참외를 하겠다면 성주가 유리하다. 특산품으로 육성되는 작물은 관련 보조사업과 기술 지원, 유통망, 교육 인프라가 비교적 잘 갖춰져 있다. 시작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기반이 작은 차이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큰 도움이 된다.
그렇다고 반드시 특산품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보편적인 귀농인 지원 정책 안에서도 충분히 시작할 수 있다. 다만 농촌의 예산은 결국 ‘밀어주는 작물’에 더 많이 배분된다는 현실은 알고 있어야 한다.
지역과 작물이 강하게 매칭되지 않는 애매한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검색만으로는 부족하다. 시청, 농업기술센터, 귀농귀촌지원센터에 직접 문의해야 한다. 그곳에서도 명확한 답을 얻지 못한다면, 최근 1~3년간의 고시공고를 직접 확인하고 담당 부서에 전화해 물어보는 수고가 필요하다. 생각보다 부서 간 정보는 단절되어 있고, 담당자가 모든 사업을 알고 있는 경우도 많지 않다.
작물 선택은 더 복잡하다.
귀농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유튜브에는 “연매출 ○○억”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넘쳐난다. 하지만 영상은 구조적으로 많은 것을 생략한다. 시간의 제약이 있고, 실패의 과정은 잘 담기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 사람의 조건이 나와 같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래서 감이나 사례가 아니라, 데이터를 한 번은 반드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농촌진흥청이 매년 발행하는 농산물 소득 자료집 또는 임산물인 경우에는 산림임업통계플랫폼 참고해보면 좋다.
이 자료는 작물별 단위면적당 소득, 경영비, 노동시간 등 비교적 구체적인 수치를 담고 있다. 막연히 “이 작물이 잘 된다더라”가 아니라, 실제 평균 경영비가 얼마나 들고, 소득은 어느 정도인지, 노동 투입은 얼마나 필요한지 숫자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 자료 역시 조사 방식에 따른 평균값이다.
나의 토양 조건, 기술 수준, 판로 구조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그러나 최소한 ‘현실의 범위’는 보여준다. 기대를 낮추기 위한 자료가 아니라, 착각을 줄이기 위한 자료라고 보는 편이 맞다. 그리고 온전히 자기자본 투입이 아니라면 농지 구입 또는 시설화에 귀농인 저금리 (1.5~2%) 융자를 받아야 하고, 5년 거치후 분할 상환이라고 했을때 금융비용도 고려 해야 한다. *이 부분은 다음에 자세하게 다루겠다.
부모의 대를 잇는 귀농인이 아니라면 대부분은 농업 기반 자본이 부족한 상태에서 출발한다. 쉽게 말해 땅도 없고, 장비도 없고, 경험도 없다. 이것은 단순한 출발점의 차이가 아니라, 작물 선택을 제한하는 중요한 조건이다.
과수를 선택한다면 묘목을 심고 최소 4~5년은 기다려야 한다. 그 사이의 생활비를 감당할 재정적 여력이 필요하다. 벼나 콩처럼 기계화가 잘된 작물을 선택하더라도, 트랙터와 콤바인 같은 고가 장비, 그리고 수만 평 단위의 경작 규모가 있어야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결국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무엇이 돈이 될까?”가 아니라 “내 조건에서 버틸 수 있는 작물은 무엇인가?”
귀농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지속의 문제다.
지역과 작물은 따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경험·생활비·노동 강도·기다릴 수 있는 시간까지 모두 합쳐 하나의 구조로 고민해야 한다.
처음에는 막막하다. 그러나 이 과정을 건너뛰고 들어간 선택은 나중에 더 큰 비용으로 돌아온다.
어디로 갈 것인가? 무엇을 기를 것인가?
이 두 질문은 사실 하나의 질문이다.
“나는 어떤 조건에서, 어떤 방식으로 농촌에서 살아갈 수 있는가?”
그 질문에 스스로 답해보기 전까지는 지역도, 작물도 선명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한 번 그 질문을 통과하고 나면, 선택은 조금 덜 흔들리게 된다. 귀농은 꿈으로 시작하지만, 숫자를 통과해야 비로소 현실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