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마을에 정착하기

시골 적응은 시간이 필요하다.

by 영태

도시 생활을 하다가 귀농을 하면 우선 약간의 해방감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매번 겪던 교통체증, 꽉 찬 지하철의 답답함에서 벗어난다. 출퇴근 시간에 쫓기지 않아도 되고, 창문을 열면 공기가 다르다. 일상은 분명히 잔잔해진다. 그 잔잔함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곧 새로운 과정에 들어선다. 정착하기로 정한 곳이 작은 시골마을이라면 더 그렇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작은 시골마을은 집성촌 형태가 많다. 마을 자체의 다양성이 높지 않고, 대부분이 평생을 이웃으로 살아온 사람들이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어느 집과 어느 집은 사이가 좋고, 어느 집과는 그렇지 않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시간의 층이 존재한다.

이런 큰 변수 없이 굴러가던 마을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는 것은 마을 입장에서는 작은 사건이 아니다. 어느 정도의 경계심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경계심이 있다고 해서 서운해할 필요는 없다. 마을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변수이고, 내가 새로운 요소다. 서로가 편안해지기까지는 시간과 약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귀농이 힘든 점으로 시골 마을에 정착하는 문제를 많이 이야기한다. 마을마다 사람도 다르고 분위기도 다르기 때문에 정답은 없다. 그럼에도 공통적인 부분은 있다.


이방인인 것을 받아들이기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처음에는 빨리 어울리고 싶어진다. 하지만 나는 이방인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


처음부터 중심이 되려 하지 않아도 된다. 먼저 이해받으려 하기보다, 먼저 이해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원주민의 이방인에 대한 경계심은 당연한 것이다. 그들 입장에선 나에 대한 정보가 1도 없다. 내가 범죄자인지 사기꾼인지 알수 없기 때문이다. 운이 좋게도 이방인에 대해 열려 있는 마을이라 하더라도 마을은 이방인을 위해 빠르게 변하지 않는다. 그 속도에 맞추는 것이 적응의 시작이다.


마을 집집마다 키워 먹는 고추, 가지 같은 작물 말고, 흔하지 않는 작물을 키운다면 판매하기 애매한 상품성이 떨어지는 것을 나눠주는 것도 좋다. 여름엔 마을회관에 할머니들 드시게 아이스크림을 사다드린다던지 막걸리 같은 것을 사드리면 좋아하신다. 사소한 스킨십을 계속 늘려나간다.


그리고 하나 확실한건 있다. 지나가다 마주치면 항상 먼저 인사한다. 그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이고 최고이다.



이해관계에 얽히지 않기


마을 구성원들끼리도 이미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외지인의 눈에는 생각보다 복잡해 보인다. 이 관계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것이 좋다. 특별한 방법은 없다. 그저 듣고, 과하게 동의하지도 반대하지도 않는 태도면 충분하다. 어느 한쪽에 깊이 서는 순간 다른 한쪽과 멀어질 수 있다. 마을에서의 관계는 생각보다 오래 간다.


하지만 인간관계보다 더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재산적인 이해관계다. 예를 들어 집으로 가는 진입로가 구획상 맹지인데 “지금까지 아무 문제 없었다”는 말만 믿고 계약하는 것은 위험하다. 현재는 괜찮을 수 있다. 그러나 세대가 바뀌거나 상황이 달라지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농지 임대도 마찬가지다.
말로만 약속하는 방식은 편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문제가 된다. 정식 계약을 하거나 농어촌공사를 통해 절차를 밟는 것이 결국 서로를 보호하는 길이다. 관계를 해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재산 문제는 더 명확해야 한다.


마을 발전 기금에 대하여


귀농·귀촌인과 원주민 사이의 분쟁 사례로 종종 ‘마을 발전 기금’ 이야기가 등장한다. 나의 경우에는 요구받은 적은 없다. 이 마을에 오기 전 수개월 동안 오가며 많은 고민을 했고, 그 과정에서 이장님과 여러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지만 별다른 요구는 없었고 오히려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사실 마을 발전 기금이라는 개념이 귀농인 때문에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다. 시골 마을회관에 가보면, 회관을 짓기 위해 마을 사람들과 자녀들이 얼마를 냈는지 돌에 새겨져 있는 경우가 많다. 과거에는 도로를 넓히거나 마을에 공동 시설을 만들 때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왔다. 도시의 아파트 관리비에 포함된 수선비와 비슷한 개념이다.


문제는 이것이 특정 집단, 특히 귀농인에게만 일방적으로 요구될 때다. 만약 마을 구성원 모두가 일정 금액을 내는 구조라면 함께 참여할 수 있다. 공동으로 사용할 시설을 만드는 데 십시일반의 동의가 있다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사를 왔다는 이유만으로 갑자기 요구받는다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내면 그만’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다. 시작부터 관계의 균형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준비가 필요하다. 각 지자체에 마련된 ‘귀농인 살아보기’ 주택이나 단기 임대 방식으로 1~2년 정도 먼저 살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집을 계약하기 전 충분히 이장님과 마을 사람들을 만나 분위기를 파악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결국 귀농에서 적응의 문제는 얼마나 준비했는가에 달려 있다. 귀농은 내려오는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때부터 시작된다.


도시에서 벗어난 해방감은 출발점일 뿐이다.
그 이후의 시간은 관계를 배우고, 선을 지키고, 천천히 스며드는 과정이다. 서두르지 않으면 조금씩 자리가 생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새로 온 사람’이 아니라 그냥 ‘마을 사람’으로 불리는 날이 온다고 생각한다. 수십년의 이해관계에서 덜컥 내자리가 생기진 않는다.


느리지만, 그래서 오래 가는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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