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세컨드 - 장예모 감독
두 사람이 있다. 한 남자는 중국의 어느 소도시에 영화를 보기 위해 찾아온다. 그런데 영화가 끝난 한밤중, 어떤 소녀가 필름을 훔치는 것을 목격하고 남자는 소녀를 쫓는다. 그렇게 필름을 가지기 위해 처절히 도망가고 서로 쫓고 쫓긴다.
이야기의 배경은 1960년대 중국 문화혁명 시기다. 이 때는 나라의 번영을 목적으로 철저히 관의 주도하에 사람들이 인력으로 쓰이고, 가족들이 흩어져 지내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대부분 궁핍하게 살아갔으며 원하지 않게 가족들이 흩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한 배경 속 남자와 소녀, 그들을 보자면 특히나 가진 것이 없고 궁핍해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무기력하지 않다. 더 처절히 필름을 쫓는다. 필름이 뭐가 그렇게중요하기에 저렇게 사투를 벌이나 싶다. 처절한 하루하루 속 그들의 몸은 금방 잿더미처럼 흩뿌려질듯 하나 결국은 불을 피워내듯 응집해낸다. 그들의 눈은 피곤하나, 그 가운데에서도 번득인다. 그것은 사랑. 내가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위해 '해주고 싶은' 것이 있기에. 내가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보기' 위하여.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여정에서 그들은 무엇이든 한다.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거짓말도 서슴치 않는다. 그러나 그 거짓말이 등장하는 이야기에는 그들의 뼈아픈 진실들이 섞여있다. 반대로 진실을 말할 때에는 그들의 생존을 위한 거짓말이 그림자처럼 도사린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그 방해물이 되는 서로를 적으로 두고 치열하게 대결한다. 혼자서도 이루기 어려운 일들에 방해꾼이 있으니 그들의 사투는 더욱 어렵고 처절해진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일들 - '자신의 하나뿐인 동생을 위하여 필름으로 등갓을 만드는 것'과 '오래 전 뉴스 필름에 약 1초간 등장하는 딸을 보고자 하는 것' - 이 하찮은 일일지라도, 그들에게는 지금 꼭 해야하는 일이며 사랑하는 이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유일한 길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가장 가슴아픈 면이자 아름다운 부분이라면 결국은 그들이 연대한다는 것이다. 가슴아프기만 하다고 하기에는 아름다우며, 아름답다고만 하기에는 그들의 삶이 너무나 처절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사랑하는 자를 위해 처절해지는 마음을 누구보다 알기에 결국 그들은 서로를 도와주고 서로의 소중한 무엇을 소박하게나마 얻어내고 지켜내준다. 그렇게 연대한다. 서로의 고통을 알기에 같이 싸워준다. 그 고단한 과정 속 괜찮은 척 버텨내다가도 결국은 서로의 곁에서 눈물을 흘린다.
소녀는 남자가 얻어내 준 필름 등갓을 가져갔음에도 그 이후 무탈하고 편안하게 공부하며 살아가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조금 더 큰 소녀가 된 아이는 이전보다 편안한 얼굴로 미래에 희망을 가지고 나아가는 힘이 생긴 듯 하다. 희미한 등갓의 불처럼 위태롭게 살아왔던 자신과 동생을 위하여 싸워주려고 했던 어른이 있었다는 사실이 인생의 큰 부분을 차지했을까.
시간이 흘러 감옥에서 나온 남자의 얼굴도 한결 편안하다. 모든 것이 억울하고 앞이 깜깜하던 시절, 자신의 처절한 싸움에 도움의 손길을 주고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함께 지켜내려 애썼던, 딸 또래의 소녀. 소녀를 보며 자신이 지켜내지 못했던 딸을 생각했을까. 소녀가 지켜내온 것이 남자가 원하던, 남자의 딸의 사진은 아니였다는 것은 허탈한 일이다. 하지만 사진이 없어졌을 그 사막 한가운데에서 그들은 허탈하나 마냥 슬프지만은 않게 웃는다.